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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한 주를 열며] 불한당(不汗黨)에겐 없는 것

기사입력 2020. 01. 31   17:15 입력 2020. 02. 02   11: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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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원 월간 ‘샘터’ 편집장

몇 해 전 작고하신 선친은 평생을 시골 소읍에서 근무하다 면장으로 퇴직한 공무원이었다. 매사에 원리원칙을 앞세우는 고지식한 성품 탓에 40년 가까운 당신의 공직 생활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은퇴 후 들려주셨던 젊은 시절의 일화가 잊히질 않는다.

타지 출신인 선친이 군청 감사과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해 관내에 홍수가 나 적지 않은 이재민과 사망자가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가족에게 나눠줘야 할 수재의연금 일부를 동료 공무원이 몰래 착복한 일이 포착됐다. 


감사 업무를 맡고 있던 선친은 담당 공무원의 비위 행위를 사실대로 보고해 징계를 받게 했는데 그 뒤로 그곳 토박이인 비위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항의와 눈총을 받아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비위 당사자는 내가 어릴 적 우리 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이웃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그만한 일쯤 모른 척 눈 감아 줄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짐짓 떠보는 내게 선친은 끌끌 혀를 차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랏일 하는 사람의 기본은 봉사하는 마음에 있다. 그런데도 공무원이란 사람이 불한당만도 못한 짓을 했는데 못 본 척 눈감아 주는 게 옳은 일이란 말이냐? 하물며 불쌍하게 죽은 이웃들의 관(棺) 값으로 나온 돈을 빼돌린 사람을 말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하물며 공평한 법 집행에 앞장서야 할 공무원이 직업윤리의 기본마저 망각한 채 불한당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으니 가뜩이나 융통성 없는 딸깍발이 공무원의 양심으로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선친이 내게 굳이 그 얘기를 들려주신 속내는 당신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정직과 노력의 가치에 대해 다시 일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우리 집 가훈(家訓)이 또한 ‘정직, 노력, 건강’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모두 정직한 마음과 중단 없는 노력, 건강한 몸으로부터 나온다는 가르침이었다. 


어느덧 나이 오십을 넘기고 보니 그 옛날 고리타분하게만 들리던 당신의 말씀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란 걸 알겠다. 불한당처럼 사는 이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지만, 하루하루 정직하게 노력하며 살아온 이들에겐 언젠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나 역시 직접 겪고, 눈으로 목격하며 살고 있으니까.

노력 없는 결실은 없다. 제 아무리 험한 산봉우리도 한 발 한 발 쉼 없이 오르는 산사람 앞에선 기가 질려 제가 먼저 길을 내준다고 한다. 군복무 중이라 당장은 부질없어 보일지 몰라도 하루하루 정직한 마음, 기본이 바탕이 된 노력을 쌓아가다 보면 우리 장병들도 언젠가 가장 높은 산꼭대기 위에 우뚝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지금 내 삶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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