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립 이후 국군조직법에 따라 ‘탄생’

입력 2018. 03. 28   17:28
업데이트 2018. 03. 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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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한민국 육군본부 창설과 변천


휴전되고 계엄사령부 해체되자 민사부가 육군본부 정식부서로

최초 용산 삼각지에서 전황 따라 시흥보병학교 등 거쳐 대구 이전

초대 이응준 장군 등 총 44명 총장 배출… 육사 출신 29명 최다

이세호 장군 3년 10개월 재직 최장수… 백선엽 장군은 32세 때 총장

1989년 용산→ 현재 계룡대로 옮겨가 ‘3군본부 계룡대 시대’ 개막

 

 

육군본부는 1989년 계룡대로 이전하면서 3군본부 계룡대 시대를 열었다. 계룡대=한재호 기자

 


대한민국 육군본부는 ‘50만 대군’의 육군을 관장하는 최고의 군사기관이다. 그 정점에는 육군 총수인 대장 계급의 육군참모총장이 버티고 서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육군본부는 국군조직법과 국방부직제령에 의해 탄생했다.
창설 초기 육군본부 직제는 매우 단순했다. 육군총장 밑에 참모차장 격인 작전참모부장과 행정참모부장이 있고, 그 아래에 국장과 실장이 책임자로 있는 국(局)·실(室)이 있었다. 이때 작전참모부장은 주로 일반참모부에 해당하는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분야를 통제했고, 행정참모부장은 특별참모부에 해당하는 재무, 법무, 감찰, 정훈, 의무, 병기, 병참, 통신, 헌병 분야를 총괄했다. 이후에는 총장-차장-참모부장-처장 체제로 완성됐다.

6·25전쟁이 터지고 육군총장이 계엄사령관을 겸하면서 계엄사령부를 별도 편성하게 됐고, 여기에 계엄 업무를 담당하는 민사부가 설치됐다. 이때 육군본부도 1명의 육군참모차장을 두게 됐고, 참모차장이 작전참모부장과 행정참모부장을 지휘 통제하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러다 휴전이 되면서 계엄사령부가 해체되자 민사부가 육군본부의 정식부서로 발족하면서 육군본부는 참모차장 밑에 민사부·행정참모부·기획참모부의 3부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무렵 들쑥날쑥하던 육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그때가 휴전 직후인 1953년 10월 17일 상황이다.

창설 초기 육군총장은 직접 예하부대 최고 작전부대인 사단을 지휘 통제했다. 당시 육군의 야전 최고 단위부대는 사단이었다. 그렇다보니 육군 총장의 지휘 폭은 매우 넓었다. 6·25전쟁 초기 미8군사령부가 고급제대 사령부인 군단 없이 직접 사단을 지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육군본부도 6·25전쟁 이후 중간제대 고급사령부인 군단을 창설함으로써 비로소 육군총장의 지휘에 융통성이 발휘되게 됐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육군은 1군단, 2군단, 3군단을 갖추게 됐다.

6·25전쟁 발발 후 육군본부는 전황에 따라 각지를 전전했다. 최초에 있었던 서울 용산 삼각지에서 시흥보병학교, 수원 농업시험소, 대전의 충남도청을 거쳐 대구로 이전했다. 육군본부는 그곳에서 미8군사령부와 함께 작전을 지도하며 6·25전쟁을 수행했다. 휴전 후 육군본부는 서울 용산으로 올라왔다가 1980년대 후반 현재의 계룡대에 정착하게 됐다. 이른바 3군 본부의 계룡대 시대 개막이었다.

 

1989년 7월 22일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본부  현판식 모습. 국방일보 DB

 


육군총장의 명칭은 다양했다. 미 군정기의 남조선국방경비대총사령관을 시작으로 조선경비대총사령관으로 불렀다가, 정부 수립 후에는 육군총사령관과 육군총참모장, 그리고 최종적으로 육군참모총장으로 바뀌었다. 그때가 1954년 6월 1일이었다. 초대 육군총장인 이응준 장군은 4대 육군총사령관으로 있다가 국군조직법과 국방부직제령이 공포되면서 초대 육군총참모장이 됨으로써 같은 직책을 수행하면서 두 개의 직함을 갖게 됐다.

창설 초기 육군본부는 군정과 군령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합참이 군령권을 전격적으로 행사하게 되면서, 육군본부는 국방부로부터 위임된 일부 군정권과 양병(養兵) 및 군수지원 분야만 담당하게 됐다. 그만큼 권한이 축소된 셈이다. 그럼에도 육군본부는 여전히 육·해·공군 3군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갖고 있는 육군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휘하는 육군간부에 대한 진급과 보직이 포함된 막강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육군총장은 초대 이응준 장군부터 2018년 현재 47대 김용우 대장에 이르기까지 44명이 배출됐다. 채병덕 장군(2·4대)과 정일권 장군(5·8대) 그리고 백선엽 장군(7·10대)은 총장을 두 번씩 지냈다. 그중에서 정일권 장군은 총장을 마치고 나서 미국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한 후 육군중장 계급을 달고 사단장에 보임되면서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때 중공군은 총장 출신의 사단장을 망신 줄 목적으로 국군2사단이 맡고 있던 저격능선 지역을 집중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초대 이응준 장군은 최초 대령에서 총장이 됐다가 준장으로 진급하고 총장 퇴임할 때는 소장으로 나오는 특이한 기록을 세웠다.

육군총장 44명 중 최장수 총장은 3년10개월을 재직한 21대 이세호 장군이다. 반면 최단임 총장은 4대 채병덕 장군으로 2개월이다. 그는 6·25전쟁 책임을 지고 2개월 만에 해임됐다. 총장 임명 시 가장 젊은 총장은 32세의 백선엽 장군이었고, 가장 많은 나이로 총장에 임명된 사람은 3대 총장을 지낸 58세의 신태영 장군이다. 백선엽 장군은 준장 진급 2년7개월 만에 대장으로 진급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총장에 임명될 당시의 연령도 점차 고령화됐다. 대체로 이승만 정부하에서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은 30대에 총장이 됐으나, 박정희 정부에서는 40대 초반에 총장이 됐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1960년대 후반에 총장이 됐다. 육사의 첫 번째 총장은 1기생인 서종철 대장이다. 그는 19대 총장을 지냈다. 이때부터 육군사관학교 총장 시대가 열렸다. 그때가 1969년이다. 총장의 나이도 50대로 껑충 뛰었다. 그러다 32대 도일규 총장부터 50대 후반으로 확 올라갔다. 그때부터 총장 취임의 평균 연령은 57세였다.

총장의 임관 출신별로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29명으로 가장 많고, 창군 원로들을 배출한 군사영어학교가 13명으로 그다음이다. 이외에 특별임관(特別任官) 2명이 있다. 3대 신태영 장군과 6대 이종찬 장군이다. 그들은 이범석 국방부 장관의 배려로 사관학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임관했다. 그야말로 특별임관이다. 그렇게 볼 때 3명의 합참의장을 배출한 갑종장교는 물론이고, 합참의장을 1명씩 배출한 학생군사교육단(ROTC)이나 육군3사관학교에서는 아직 육군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앞으로 ROTC 출신의 총장과 육군3사관학교 출신의 총장을 기대해본다. 육군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방개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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