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인간을 뛰어넘는 드론 조종사, AI
우주선용으로 개발한 ‘딥러닝 신경망’
드론 경주서 A I가 인간 이긴 핵심 기술
초고속 반응·정밀한 계산·즉각적 실행
이스라엘, 하마스 로켓 90% 자동 요격
윤리적 판단 영역 등 ‘A I 조종사’ 한계
사람의 지혜·기계 계산력 결합이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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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드론 레이싱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A2RL 드론 챔피언십에서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이 개발한 인공지능(AI) 드론이 인간 드론 레이싱 챔피언 3명을 연달아 이기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작은 드론은 단 하나의 카메라만을 사용해 시속 95.8㎞ 속도로 복잡한 경주로를 누비며, 드론 챔피언스 리그(DCL) 전 세계 챔피언들을 제압했다. 국제 드론 레이싱 대회에서 AI가 인간 조종사를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단순한 경주 게임의 승리가 아니다. 바둑이나 체스 같은 가상 환경에서의 AI 승리와 달리 이번 성과는 물리적 현실 세계에서 이뤄졌다. 드론이 실제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장애물을 피하고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며 인간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 것이다.
델프트 공대 팀을 이끈 크리스토퍼 데 바흐터 교수는 “AI가 언제 실제 경기에서 인간 드론 조종사와 경쟁할 수 있을지 늘 궁금했는데, 올해 그것을 실현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자율 드론 레이싱은 고효율의 견고한 AI를 개발하고 실증하는 이상적인 테스트 케이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드론을 더 빨리 날리는 기술은 혈액 표본이나 심장 제세동기를 제때 배송하거나, 자연재해 현장에서 사람을 찾는 등 경제적·사회적 응용에 중요할 것”이라고 이번 성과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AI 드론의 핵심 기술은 ‘가이던스 앤드 컨트롤 네트(Guidance and Control Nets)’라 불리는 딥러닝 신경망이다. 유럽우주청(ESA)에서 원래 우주선 제어용으로 개발된 이 기술은 기존 드론들이 인간이 설계한 복잡한 제어 알고리즘을 거쳐 모터를 조종했던 것과 달리 카메라로 본 영상을 직접 모터 제어 신호로 변환한다. 마치 인간 조종사가 눈으로 보고 즉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AI가 보고 즉시 반응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기존 알고리즘보다 수십 배 빠른 처리 속도를 자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AI가 강화학습으로 스스로 비행법을 익혔다는 점이다.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드론의 물리적 한계에 근접한 기동을 해낼 수 있게 됐다. 인간 조종사가 수년간의 훈련을 통해 체득해야 할 감각을 AI는 시뮬레이션으로 압축 학습한 것이다. 실제로 경기에서 이 드론은 인간으로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정확도로 좁은 게이트를 통과하며 최단 경로를 찾아갔다.
인간과 AI의 반응 속도 차이는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시각적 자극에 대한 반응시간은 200~300밀리초 수준이며, 훈련받은 운동선수와 조종사들도 이를 크게 단축시키기는 어렵다. 반면 AI 시스템은 센서 입력부터 모터 제어까지 수십 밀리초 이내에 처리할 수 있어 훨씬 빠른 판단과 대응이 가능하다. 델프트공대의 AI 드론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빠른 반응이 아니라 복잡한 3차원 공간에서의 정밀한 궤적 계산과 즉각적인 실행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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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도 이미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방공 시스템은 2021년 5월 하마스가 발사한 4300여 발의 로켓 중 인구 밀집 지역으로 향하는 로켓의 90%를 자동으로 요격했다. 인간 조종사라면 로켓을 발견하고 위협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겠지만, AI는 탐지와 동시에 요격 여부를 판단하고 즉시 대응했다. 한 번의 요격에 드는 비용이 4만~5만 달러에 달하지만 AI의 정확한 판단으로 불필요한 요격을 피하고 진짜 위협만 골라 막아낼 수 있었다.
터키의 바이라크타르 TB2 드론도 AI 기술 활용의 실전 사례다. 이 드론은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을 통해 표적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추적한다. 조종사가 대략적인 임무만 지시하면 AI가 구체적인 표적 탐지와 경로 계획을 지원한다. 시리아, 리비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이 드론들이 보여준 정확한 타격 능력은 현대 공중전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도 AI 조종사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 공군의 ‘스카이보그’ 프로그램은 기존 전투기에 탑재돼 인간 조종사를 보조하거나, 무인기에 장착돼 완전 자율 비행을 수행할 수 있는 AI 시스템이다. 록히드마틴, 보잉, 제너럴 아토믹스 등 주요 방산업체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차세대 AI 조종사를 개발하고 있다. 2021년 스카이보그의 자율제어시스템은 서로 다른 제조사의 드론에서 성공적으로 비행했으며, 이는 AI 시스템의 이식성과 범용성을 입증했다.
집단 지성의 구현도 AI만의 독특한 장점이다. 한 AI가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면 이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AI 시스템에 즉시 공유될 수 있다. 인간 조종사들이 회의실에서 며칠에 걸쳐 토론하고 매뉴얼을 업데이트해야 할 내용을 AI는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는 여러 조종사의 경험과 지식이 빠르게 통합되는 효과를 낸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는 2028년까지 반자율 AI 파일럿 ‘K-AILOT’를 탑재한 다목적 무인기(AAP)를 실전 배치하고, 2030년대 초에는 완전자율 무인전투기 전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의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다 기술과 LIG넥스원의 전자전 시스템 등 국내 방산업체들의 기술이 결합돼 독자적인 AI 기반 방공 시스템 구축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역시 이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무인전투기 프로토타입과 스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유·무인 복합 전투 개념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AI 시스템의 성능과 운용 수준에 대해서는 공개된 정보가 제한적이다.
하지만 AI 조종사에게도 한계가 있다. 전례 없는 상황이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순간에는 여전히 인간이 우월할 수 있다. 또한 윤리적 판단도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는 ‘효율성’과 ‘성공률’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이 공격이 과연 정당한가?”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공격해야 하는가?” 같은 복잡한 윤리적 고민은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AI 조종사 시스템은 ‘인간-AI 협업’ 모델로 설계되고 있다.
사이버 보안도 새로운 과제다. AI 조종사 시스템이 해킹당하면 아군 무기가 적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 보안 시스템과 AI 자체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아부다비에서 벌어진 역사적 승리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다. AI가 인간의 직관과 경험을 보완하고 때로는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조종 능력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미래의 공중전은 AI와 인간이 협력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중심이 될 것이며,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AI를 보유한 쪽이 우위를 점할 것이다. 완전 자율이 아닌, 인간의 지혜와 AI의 계산 능력이 결합된 형태가 당분간은 최적의 해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계의 정밀함과 인간의 판단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미래 항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드론이 단지 나는 기계가 아니라면, 적의 눈을 피하는 ‘하늘의 카멜레온’이 된다면 어떨까? 다음 회에서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 모습을 바꾸는 ‘적응형 스텔스 드론’의 미래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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