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자주적 억제력 키우고 미·일과 협력 제도화 중·러와 대화공간 유지

입력 2025. 09. 16   16:25
업데이트 2025. 09. 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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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35. 미국 신국방전략과 북방 삼각, 기로에 선 한국 국방

바이든 행정부 국방정책 ‘통합억제’
트럼프 2기 ‘힘을 통한 평화’로 변경
미, 원거리서 동맹에 필요 역량 제공
한국 대북억제 주체로 나서기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가운데) 국방장관.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전략은 ‘억제’에서 ‘전쟁 수행’으로 기울며 동맹국에 전방 방어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가운데) 국방장관.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전략은 ‘억제’에서 ‘전쟁 수행’으로 기울며 동맹국에 전방 방어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전략(NDS)은 억제에서 전쟁 수행으로 기울며 동맹국에 전방 방어를 요구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전사정신, 엘브리지 콜비 정책차관의 전략 공식, 새뮤얼 퍼파로(해군대장)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작전개념, 댄 콜드웰 전 국방장관 수석고문의 군 배치 구상은 모두 미국이 원거리에서 필요한 역량을 제공하고 한국이 대북억제의 주체가 되는 구도를 보여 준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북·중·러 정상은 결속을 과시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신냉전 블록화 우려를 일축했지만, 실제론 북한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 기로에 선 한국의 국방전략은 보복·응징·억제 능력 강화와 한·미·일 협력, 중국·러시아와의 위기관리 사이 균형을 잡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리=윤병노 기자 
지난 3일 천안문 망루에 북·중·러 정상이 함께 선 순간, 싱가포르에선 2개의 회의가 개최되고 있었다. 이때 열린 국방정보공유회의(DIS)와 동북아협력대화(NEACD)는 비공식 채널이지만 남북한을 포함해 미·중·일·러가 동북아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드문 장이다. 북한은 2016년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회의에 나머지 5개국은 모두 참석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정책 변화와 한반도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미국의 전략 공식은 달라졌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국방정책은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였다. 다영역 군사력과 비군사적 수단, 유럽과 인도·태평양지역, 복수의 정부 조직, 여러 분쟁 스펙트럼, 동맹국 역량까지 모두 연결하는 글로벌 운영체계였다. 그러나 트럼프 2기는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명하며 전쟁 수행력에 기초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내세운다.

트럼프 2기에서 국방부를 이끄는 헤그세스 장관은 이러한 전략 방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그는 지난 5월 샹그릴라 대화에서 ‘전사정신(warrior ethos)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토 방위와 인도·태평양 전구를 최우선에 두고 미사일방어, 장거리 타격 능력 강화를 역설했다. 이는 억제보다 실전에 대비한 전투 준비가 중심에 놓였음을 의미한다.

헤그세스 장관의 기조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인물이 콜비 정책차관이다. 그는 트럼프 2기 국방전략 초안을 작성 중인데, 핵심 전제는 분명하다. 미국이 2개의 대규모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기에 한정된 자원을 세계 부와 생산력이 집중된 아시아에 투입해 중국이 패권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구상 속에서 일본과 대만은 전방 방어를 맡고, 한국은 북한 억제 책임을 떠안게 된다.

이 전략을 실제 작전 구상으로 옮기는 인물이 퍼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이다. 그는 중국의 대만 주변 군사활동을 ‘침공 리허설’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미군은 '타이폰' 미사일, 미 해군·해병대가 운용하는 원정함정차단체계(NMESIS), B-21 스텔스 폭격기 같은 장거리 전력을 활용해 중국의 접근거부/지역거부(A2/AD) 방어망 밖에서 전투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군이 직접 전방에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안전한 거리에서 중국의 행동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헤그세스 장관의 전 수석고문이자 콜비와 함께 미국의 신국방전략서를 함께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콜드웰의 제안은 더 급진적이다. 주한미군 병력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한국군이 전방 방어를 책임지며, 미군은 제2도련선으로 물러나 생존성과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그세스의 전사정신, 콜비의 전략 공식, 퍼파로의 작전개념, 콜드웰의 군 배치 구상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미국은 원거리에서 동맹에 필요한 역량을 제공하면서 주력을 보존하고, 동맹국에 전방 방어의 부담을 넘기는 구상이다.

주한미군의 현대화는 이 맥락 위에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병력 숫자가 아니라 실제 전투 효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영역효과대대(Multi-Domain Effects Battalion), 5세대 전투기, 통합방공미사일방어(IAMD), 생존 가능한 지휘통제가 그것이다. 주한미군은 연합전력이 전개할 수 있는 허브로 자리 잡고, 정보감시정찰(ISR)·장거리 타격·핵·재래식 통합 역량을 제공하는 반면 한국은 대북억제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그림이다.

이런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선 북·중·러가 연대를 과시했다. DIS와 NEACD 회의장에서는 신냉전 개막 우려를 과장된 시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북방 삼각의 실체는 사진 한 장에 불과하지만 한·미·일 연대는 다영역 군사훈련으로 매우 공고해졌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참가자들은 동북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지역이라며 냉전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핵화 목표의 비현실성, 북한 핵국가 인정과 군비통제 필요성, 한미 연합훈련의 공세성, 대화 조건 마련을 위한 훈련 자제 요구 등이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동북아 질서는 섬세한 억제 균형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북한의 대한민국 ‘괴멸’ 위협과 한미동맹의 김정은 ‘정권 종말’ 대응이 공포의 균형을 만든다. 만약 러시아가 자국의 조약 동맹국(treaty alliance)인 북한 정권의 생존을 담보한다면 이러한 균형에 균열이 생긴다. 중국이 글로벌안보구상(GSI)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모든 국가가 절대 안보가 아닌 공동 안보를 추구해야 한다면 현재 한국과 일본이 느끼는 실존적 위협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속 시원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북·러 동맹과 북·중 협력으로 국제 대북제재 및 비확산 공조는 약화하고 있다. 미국은 전방 방어를 동맹에 맡기고, 제1도련선 밖 제2도련선에 핵심 역량을 분산 배치하면서 동맹국에는 다영역 역량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전환 중이다.

한국의 국방정책은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인공지능(AI) 방위산업 육성, 3축체계의 방어적 전환과 남북 평화 공존을 추진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필요한 과제이지만 미국 전략 변화에 따른 한미동맹 현대화는 지금 당장 풀어야 할 과제임을 잊어선 안 된다.

현재 한반도 억제 신뢰성의 중추를 담당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의 핵심은 김정은 정권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응징 능력에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신기술 협력, 상호운용성 강화로 동맹의 작전 능력을 높이면서 자주적 억제력도 키워야 한다. 또한 북·중·러 결속에 대응해 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하되 북한과 달리 신냉전 고착을 꺼리는 중국·러시아와는 위기관리 및 대화공간을 유지해야 한다.

다가오는 태풍 앞에서 새로운 국방전략 수립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양규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김양규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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