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군사훈련단에서 교육받던 시절,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해전 등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단지 책 속의 한 페이지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과거의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얼마나 나와 가까운 일인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정훈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아 부대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계룡대근무지원단에서 진행하는 안보견학의 사진 촬영 지원을 위해 해군2함대 서해수호관,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게 됐다.
안보견학 첫 코스로 먼저 서해수호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등 그날의 기록들과 서해를 지키다가 산화한 용사들의 이름 앞에 섰을 때 머릿속에 머물던 기억이 가슴 깊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아들 또는 형이자 친구였던 이들이 전장의 한가운데서 조국을 위해 싸웠고, 어떤 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사명 하나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서해 용사들의 희생은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안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
이후 천안함기념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기념관 외부에 있는 천안함의 절단된 함체가 눈에 들어왔다. 차디찬 철판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과 슬픔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천안함은 평소처럼 경계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북한의 기습적 어뢰 공격으로 함정이 절단됐고 많은 장병이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교육으로만 들었던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니 ‘나라를 지킨다’는 말의 무게를 이보다 더 절실히 느낄 순 없었다.
기념관에서는 유품 하나하나, 유가족이 남긴 손편지 등을 차분히 살펴봤다. 그 안에는 바다를 지키고자 했던 전우 46명의 숭고한 희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자 교훈이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안보를 수호하는 목적임을 되새기게 됐다.
안보견학을 마치고 군복을 입고 있는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저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뜻을 이어 국가를 지키는 한 명의 군인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국방의 최전선은 결코 먼 곳이 아니었다. ‘자기 위치에서 제 임무를 완수하는 것’, 즉 우리가 수행하는 작은 임무 하나하나가 바로 나라를 지키는 첫걸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진다고. 하지만 우리 군과 국민이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다짐한다. “그날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고, 부끄럽지 않은 군인의 자세로 하루를 살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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