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는 대한민국 남성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단순히 정해진 기간 군복을 입고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나 역시 군 생활 중 육군통신학교에서 ‘마이크로웨이브 운용병’ 주특기 교육을 받으며 소리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원리와 대량 전송의 구조를 배웠다. 그때의 학습은 교재 속 지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제 단말 근무를 하면서 이론과 실무가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전역 이후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할 때 큰 밑거름이 됐다. 훗날 카카오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이 경험은 사고 및 문제 해결방식에 깊은 영향을 줬다.
군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한국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를 꺼낸다. 이는 군 생활이 개인의 사고방식, 인간관계, 사회적 태도에 남긴 흔적이 그만큼 강렬하고 오래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군 경험이 한국 남성의 심리와 사회적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군 생활은 약 18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경험이 집약되는 과정이다. 이 경험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로 남는지, 사회에서 자산이 될지 짐이 될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긍정적 효과를 강화하고, 부정적 요소를 줄이는 방향을 마련할 수 있다.
군에서의 경험이 부정적이었던 사람은 전역 이후에도 군에 부정적 시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군을 비판하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대개 지금의 군대가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과거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 그만큼 군 생활의 기억은 뿌리 깊게 남아 대한민국 군대의 호감과 비호감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의 군 생활은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경험도 컸다. 특히 ‘이론과 실무의 연결’은 성취감을 줬고, 이후 사회 진출에도 큰 힘이 됐다. 만약 모든 병사가 복무기간 중 자신만의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한다면 군 복무는 단순한 의무를 넘어 값진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불합리한 경험이나 불필요한 소모가 반복된다면 이는 부정적 기억으로 각인돼 사회 적응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군 경험을 면밀히 연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일은 병영문화 개선의 출발점이 된다.
군 복무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이지만, 동시에 삶의 중요한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개인적 회상이나 단편적 경험담에 머무르지 않고, 학문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 경험이 갖는 무게와 파급력을 고려할 때 지금이야말로 군 생활과 관련한 체계적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티브 잡스가 미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언급한 ‘점들을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처럼 현재 경험은 반드시 미래의 어느 순간과 반드시 이어진다. 군 생활이라는 젊은 날의 시간이 미래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는 병사와 간부 모두에게 중요한 화두다. 그들의 시간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의미 있는 자산으로 남기 위해 군 경험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 설계가 정교할수록 군을 향한 국민의 인식도 더욱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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