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이끄는 중국군이 지난 3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도 베이징 한복판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계기는 우리에게 ‘전승절’로 알려진 ‘중국 인민 항일전쟁과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1853년 미 해군 매슈 페리 제독이 이끄는 4척의 함대가 도쿄만의 외항 요코스카항에 나타나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자 이웃 청(淸)이나 조선과 달리 적극 수용해 미국과 통상조약과 화친조약을 맺었다. 이는 일본의 마지막 사무라이 정권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정권이 많은 금을 축적하고 있어 서양에 무역 개방을 할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은 유럽에서 근대화가 가장 늦었던 독일을 배우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대표로 하는 학습단을 파견해 적극적인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을 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제국은 부국강병 정책의 성공으로 청일전쟁(1894~1895)에서 승리,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병합한 뒤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만주를 침공해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 중국은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이 주도하는 중화민국(中華民國) 시대였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내전을 치르던 중 1924년 국공합작(國共合作)에 합의해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1945년까지 전쟁을 벌였다.
1945년 9월 3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군함 미주리 함상에서 진행된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주관으로 이뤄졌고, 중국 측 참석자는 중화민국 대표 쉬융창(徐永昌) 중장이었다. 하지만 국민당과 벌인 내전에서 1949년 최종 승리한 중국공산당 군은 항일전쟁의 승리를 “중국 인민들이 벌인 전쟁의 승리”라고 정리했다. 그 뒤에 붙는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이란 미국·영국·프랑스군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스가 주도한 독일과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이 주도한 이탈리아와 맞서 싸운 전쟁이었다.
80년 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군이 벌인 군사 퍼레이드는 ‘중국 인민해방군’ 장병과 장비를 총동원해 중국군의 실력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열병과 분열을 주도한 총지휘관은 중앙군사위 주석 시진핑이었다. 시진핑은 열병과 분열이 진행되기 전 천안문 망루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포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에서 “오늘 인류는 전쟁이냐 평화냐, 대화냐 대항이냐, 윈윈이냐 제로섬 게임이냐를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연설했다.
이어 벌어진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사정거리가 2만㎞가 넘어 전 세계가 공격 범위 내에 있다고 알려진 둥펑(東風·DF) 61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했다. DF-61에는 8~12개의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구축함이나 공군 폭격기에서 발사 가능한 신형 대함미사일 잉지(鷹擊·YJ) 21도 선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관세전쟁으로 국제정치 역학구도가 흐트러진 가운데 시진핑의 중국이 과시한 군사력 퍼레이드를 본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수호를 위해 더욱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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