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고, 한쪽은 듣기만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균형이 맞지 않는 대화다. 주거니 받거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조로운 대화도 있고, 균형이 안 맞는 대화도 있다. 가령 돈을 내고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말을 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는 게 역할이자 진료 과정이다. 그리고 대가를 받는다. 법률 자문을 받으러 간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될 때는 상담에 관한 대안을 얻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친분을 가지고 있는 상대나 가족, 사회적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 싫든 좋든 만나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사이 등은 비용이 필요 없다. 모든 분야에서 대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미국 속담으로 널리 알려진 ‘공짜 점심은 없다’는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프리드먼이 겪은 에피소드다. 어느 경제학자가 그를 점심 자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그가 음식값을 지불했다. 그 학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님도 공짜 점심을 드셨네요.” 그의 오만한 농담에 프리드먼이 답했다. “아니네, 밥값으로 당신의 그 형편 없는 이론을 2시간이나 들어주지 않았나.”
사회심리학에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이 있다. 공정성 또는 형평성의 개념으로 인간관계나 사회적 교류에서 사람은 자신이 투입한 배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투입과 산출의 비율이 같을 때 경제적으로 공정하고 균형이 잘 이뤄졌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게 대화다. 상대방이 늘어놓는 일방적인 얘기는 이기심의 발로다. 당사자는 자기가 말을 많이 하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상대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사이가 무척 좋다거나,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클 때는 그 균형이 깨지더라도 수용되고 넘어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공정을 겪으면 긴장과 불만이 생긴다. 한쪽만 늘 먼저 연락하고 챙기는 감정적 소모에 지친 사람도 그런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런 일방적 대화와 더불어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해서 받아주다 보면 짜증과 실망이 쌓인다.
주로 갑과 을의 관계에서도 갑이 대화를 주도한다. 종속 관계일수록 심하다. 윗사람은 지시하고 지적하고 훈시하지만, 아랫사람은 주로 듣는 서열이다. 소위 지루함의 동의어로 불리는 ‘교장 선생님 말씀’도 그렇다. 부모의 잔소리도 다 구구절절 옳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듣는 사람은 지루하다. 대화의 형평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 늘 벌어지는 현상이다.
대화의 불공정이 나타날 때 드러나는 결과는 관계 균열이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상대에 대한 호감과 미련이 남아 있더라도 소원해지거나 연락을 끊게 된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처지라면 떠날 궁리를 하며 지낸다. 그런 결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현실이 고단하기 짝이 없다.
대화가 잘 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깊다는 것이다. 평화도 대화가 만든다. 국가 간에 대화가 단절되면 단교하거나 전쟁으로 치닫는다. 조직이 발전하고 활기가 넘치는 것도 서로 대화를 통한 소통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개인도 ‘내가 저 사람과 왜 친한가? 왜 좋을까?’ 반문해 보면 주고받는 대화가 균등함을 알 수 있다. 대화에도 경제이론이 적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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