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 잔잔하게 밝은 두 세계를 가진 배우 조이현
학생-무당 오가는 ‘이중생활’ 연기
전작부터 이어져 온 양면적 이미지
상반된 성격 품은 본모습과 비슷해
특유의 잔잔함, 역할 신뢰도 높이고
해사한 미소는 주변 밝히는 에너지
오컬트 세계 맞서는 MZ무당 발랄함
위로와 응원 전하는 선한 ‘인간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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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이 뭐야? 원래는 별 볼일 없는 종이 쪼가리 아니야? 근데 걔가 다른 쪼가리 나부랭이랑 다른 게 뭐야? 부적에는 마음이 담겼어.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잘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액운을 떨치고 사람을 지키는 거야. 만약에 종이 대신 사람이 가면 어찌 되겠어? 사람은 힘이 세. 따뜻하잖니? 인간 부적. 이건 사람이 부적으로 가는 방법이야.”
tvN 월·화 드라마 ‘견우와 선녀’에서 무당 박성아(조이현 분)의 신어머니(김미경 분)는 배견우(추영우 분)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 부적’을 쓰는 방법을 알려 준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 오옥순(길해연 분)이 죽자 의지할 데 없게 된 견우는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러잖아도 삶 자체에 액운이 끼어 안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견우였다. 한눈에 반한 성아는 견우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에게 ‘자살귀’가 붙은 걸 보고 신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인간 부적이 되라는 조언을 들은 것이다. 종이 대신 자기 몸에 부적의 글귀를 새기고, 견우 옆에 달라붙어 체온을 나눠 주면 액운은 도망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성아는 반색한다. “최고의 방법이에요, 어머니!”
‘견우와 선녀’의 무당 박성아라는 캐릭터를 보면 조이현이 그간 해 왔던 작품의 면면이 겹쳐 보인다. 낮엔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밤이 되면 ‘선녀’로 불리며 무당 생활을 하는 그 이중적인 면은, 그가 출연한 전작 드라마 ‘혼례대첩’의 정순덕이란 인물과 유사하다. 정순덕은 5년 차 청상과부인 좌상댁 며느리이지만 집 밖에선 방물장수로 위장해 여주댁으로 불리는 ‘중매의 신’이다. 집에선 조신하기 이를 데 없지만, 집 밖으로 나오면 활발한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조신함과 활발함.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상반된 면면이 겹치면서 조이현이란 배우가 가진 독특한 매력의 페르소나가 만들어진다. 조신함이 어떤 일이나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진지함을 드러낸다면, 활발함은 그걸 표현하는 데 마치 아이 같은 해맑음을 꺼내 놓는다. 조이현이 연기하는 이중적 성격의 인물을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진심이 느껴지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밝음이 겹쳐 있어서다.
“밝은 성격이에요. 그런데 ‘잔잔하게 밝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이런 상반된 면의 겹침과 관련해 조이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잔잔하게 밝다’는 표현을 쓴 바 있다. 그 표현처럼 조이현 특유의 잔잔함은 다소 어두운 캐릭터에 깊이와 설득력을 부여하고, 밝은 캐릭터엔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런 이중적 면면은 초창기 조이현이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두 작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윤복과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반장 최남라란 상반된 인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윤복이 어리바리한 매력의 쌍둥이 홍도(배현성 분)와 달리 밝고 귀여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의대생이었다면, 최남라는 그와 상반된 시크하고 다크한 절비(절반만 좀비) 캐릭터였다. 초창기 조이현이란 배우가 쌓아 온 스펙트럼은 바로 그가 가진 양면적 이미지들의 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혼례대첩’ ‘견우와 선녀’로 아예 낮과 밤이 다른 이중적 이미지의 인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역할을 연기하게 된 게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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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밝은’ 조이현이 보여 주는 에너지는 그 힘이 누군가를 구원하려는 마음에 닿아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좀비가 아닌 ‘절비’가 되는 건 친한 친구들을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그 시크함에는 절절한 이 인물의 마음이 숨겨져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혼례대첩’의 정순덕이란 ‘중매의 신’은 수절하며 지내는 자신과 달리 외로운 이들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서로 사랑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견우와 선녀’의 성아는 액운이 끼어 힘겹게 버티는 견우와 삶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그건 액운을 물리치고 사람을 살게 만드는 무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평범한 여고생의 마음을 사로잡는 ‘첫사랑’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모습에도 천명을 받은 이의 진지함(잔잔함)과 더불어 여고생 특유의 밝음이 더해져 있다. ‘인간 부적’이란 기발한 아이디어 역시 조이현이라는 배우가 더해짐으로써 ‘견우와 선녀’ 작품에 따뜻함과 발랄함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진지함과 발랄함을 넘나드는 조이현의 면면은 그가 퓨전화된 장르에도 잘 맞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가진 학원물과 좀비물의 결합은 여고생과 절비 사이를 오가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혼례대첩’의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 역시 그의 이런 양면이 더해져 설득되는 면이 있다. ‘견우와 선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무당이 등장하는 K오컬트 장르를 가져와 한국 특유의 로맨스물로 재해석했다. 악령과 갖가지 귀신이 등장하는 K오컬트의 오싹함이 들어 있지만, 그 속에서 악령과 맞서는 성아는 톡톡 튀는 여고생으로 ‘MZ 무당’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발랄함을 보여 준다. 그 잔잔한 밝음이 어둡고 칙칙한 오컬트의 세계와 맞서고 있다고나 할까.
우리는 마치 마음속 밝음과 어둠이 나눠져 있고, 그 양자가 서로 싸우고 대결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어쩌면 서로 다른 얼굴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어둠은 물리치거나 대결해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 그저 밝음으로 그 그림자를 지워야 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견우와 선녀’의 성아가 보여 주는 ‘인간 부적’이 가진 힘은 어둠과 싸우는 전투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자체의 밝고 맑은 마음에서 발현된다. 조이현의 잔잔하게 밝은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응원이 되는 진짜 ‘인간 부적’의 힘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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