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사람들
김동해 비전케어 이사장
2001년 9·11테러 계기 해외봉사 결심
체계적 봉사 위해 국제구호기구 설립
백내장 수술·안과 검진·의료진 교육
40개국서 100만 건 이상 의료 지원
안과의사 포함 자원봉사자 5000여 명
개인 지원 넘어 참전국 전체 확대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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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하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돕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온 군인들이 있었다. 이들의 희생·헌신 덕분에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났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유일의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은 세계 곳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75년 전 이 땅을 밟았던 참전용사와 후손 중 실명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보은 의술’을 펼치는 사단법인 비전케어 김동해 이사장도 그중 하나다.
‘평범한 안과의사’였던 김 이사장은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해외봉사를 결심했다.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문득 이슬람 국가를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듬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김 이사장은 많은 이가 병원 앞에 장사진을 친 것을 봤다. 문화는 달랐지만, 백내장 등 각종 안과질환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본인이 지닌 의료지식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각국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힘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2002년 9월 10여 명의 의료진을 이끌고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의료봉사(1차 파키스탄 비전아이캠프)를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머물며 주민 70여 명에게 백내장 수술과 안과 진료를 했다. 김 이사장은 귀국 후 체계적인 의료봉사를 위해 국제실명구호기구 비전케어를 설립했다.
비전케어를 통한 지원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40개국에서 100만 건 이상을 지원했다. 백내장 수술, 안과 검진, 현지 약품 지원 및 의료진 교육 등 내용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비전케어를 거친 자원봉사자 수도 안과의사 250여 명을 포함해 5000여 명에 이른다. 비전케어의 헌신은 올해 초 ‘제35회 삼성호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6·25 참전용사, 군복 입고 감사인사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후손과의 만남도 운명처럼 다가왔다. 아프리카 한인총연합회에서 어려운 현지 사정을 들은 김 이사장은 2007년 스와질란드(현 에스와티니)로 향했다. 아프리카 지원을 확대하던 2010년에는 에티오피아를 찾았다. 환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내가 6·25전쟁 참전용사다. 춘천지구전투에 참전했었다”고 말했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일주일간 참전용사 백내장 수술만 30여 건을 완료했다. 의료봉사 마지막 날, 참전용사들이 현역 시절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일렬로 선 참전용사들은 김 이사장 일행에게 경례하고 “한국인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을 줄 몰랐다” “한국에서 또 전쟁이 나면 주저하지 않고 도우러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 의료진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에티오피아 의료봉사를 연 3~4회 하는 동안 참전용사와 후손들은 계속 도움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2011년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손잡고 현지 시립병원 안과시설을 보강하고, 의료진 교육을 병행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가 지원한 아디스아바바 라스데스타 시립병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에티오피아인에게 양질의 의료 지원을 하는 곳이 됐다”며 “교육받은 의사들이 주변국 의료진을 가르칠 만큼 실력이 향상돼 영속성 있는 지원체계를 갖췄다”고 말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후손들은 비전케어가 지원한 병원과 의료진에게 계속 도움을 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올 7~8월 두 달 일정으로 계획한 아프리카 지원 활동의 마지막 나라도 에티오피아”라며 “그곳에서 열리는 동아프리카 안과학회에도 참석해 협력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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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출신 참전용사 딸 백내장 수술도
김 이사장의 6·25전쟁 참전용사와 후손 돕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됐다. 지난해 모로코 출신 참전용사 후손에게 백내장 수술을 한 게 대표적이다. 정기용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주모로코 대한민국 대사 시절 찾은 무함마드 알라스리 참전용사 딸(프테탐 알라스리)의 두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다.
김 이사장은 “백내장 수술을 받은 참전용사 딸이 자녀들과 기뻐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올해 다시 모로코를 찾았을 때 눈 상태가 잘 유지되는 것도 확인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정기 지원사업을 위한 물품 통관, 수술 대상자 인솔 등에서 박장근 영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들의 노고가 크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대한민국 높아진 위상도 확인
비전케어 관계자들은 활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도 확인하고 있다. 김 이사장과 뜻을 같이하며 에티오피아에서 2년간 의료봉사를 했던 이승재 명동성모안과 원장은 “진료 때 환자와 대화 내용을 통역해 준 참전용사 후손들이 있었다”며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현지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를 보며 말을 배웠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이사장을 비롯한 비전케어의 실명 구호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와 관련, 김 이사장은 6·25전쟁 참전용사와 후손에게 한정한 지원사업은 지양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70여 년 전 유엔군의 일원으로 이 땅을 찾은 군인들도 국가의 부름에 응한 것이었지 특정 개인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경제력이 어느 정도 오른 만큼 참전국 지원사업 과정에서도 나라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참전용사들의 뜻일 것이다.” 최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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