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넷플릭스 광장서 피 칠갑 액션 보여준 소지섭
원작 웹툰보다 더 강해진 액션
무협지 닮은 전설의 영웅 서사
의외로 필모엔 멜로 더 많지만
핏빛 복수극 제 옷 입은듯 어울려
‘존 윅’ 키아누 리브스 못지않은
글로벌 액션 캐릭터 탄생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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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과연 가능할까? 최근 액션물을 보다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장면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이 등장한 이후 주먹 한 방에 상대방이 날아가 버리는 리액션은 이제 액션물의 ‘기본’이 됐다.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홀로 수십 명(거의 100명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을 상대하는 일당백 액션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이후 이 같은 피 칠갑 액션은 한국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됐고, 이제 할리우드 감독들이 우리의 액션을 오마주하는 경우도 심심찮다. 예를 들어 ‘존 윅’ 시리즈를 만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악녀’나 ‘카터’ 같은 한국형 액션물의 전형을 만든 정병길 감독에게 그 액션 장면을 오마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실제로 그렇게 찍기도 했다.
이처럼 액션물이 갈수록 상상 그 이상의 장면들로 채워지는 추세에 중요해지는 건 배우의 존재감이다.
‘범죄도시’의 황당할 정도의 타격감을 보여주는 영상들은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때문에 그럴듯해 보인다. 그라면 그 정도의 타격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 최근에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나왔던 드웨인 존슨 같은 액션 스타들이 보기만 해도 터질 듯한 근육을 애써 만들고 유지해왔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이미지가 더 많은 도파민이 돋는 액션 장면들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은 온전히 소지섭이라는 배우에게 기대는 면이 큰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사실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소간지’라는 별칭을 얻은 이후에도 어디서건 등장만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여왔던 소지섭이 그간 생각보다 본격 액션물을 많이 찍지 않았다는 것이 이례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소지섭은 물론 그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하는 작품마다 액션 장면이 빠지지 않았지만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본격 액션물보다 멜로물을 더 많이 찍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그랬고, ‘주군의 태양’ ‘맨도롱 또?’ ‘오 마이 비너스’ 같은 드라마가 그랬다. 심지어 ‘내 뒤에 테리우스’처럼 스파이물의 외형을 지닌 작품에서조차 그는 멜로의 남자주인공이었다. 이렇게 된 건 영화에 비해 우리네 드라마 신이 그만큼 본격 액션물을 많이 선보이지 않았던 데서 나온 결과이긴 하다. 그래서 ‘광장’은 소지섭에게는 각별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확연히 그의 이미지를 액션 히어로의 면면으로까지 끄집어 올린 작품이니 말이다.
웹툰 원작을 가져온 ‘광장’은 훨씬 더 액션에 포인트를 줬다.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의 서사 같다. 10년 전 주운파와 봉산파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고 이 세계를 떠난 남기준(소지섭)이 동생 남기석(이준혁)이 살해당하자 돌아와 핏빛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10년 사이 주운파와 봉산파는 주운그룹과 봉산그룹이라는 외형을 띠게 됐지만, 여전히 폭력 조직의 색깔을 갖고 있다. 봉산그룹 회장 구봉산(안길강)의 아들 구준모(공명) 사주에 의해 동생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기준이 봉산그룹과 일당백의 복수혈전을 치르면서 그 이면에 깔린 음모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후반부에 이르러 몇몇 반전이 등장하지만, 서사는 강호를 등지고 떠난 과거의 전설적인 영웅이 돌아와 다시 무림을 평정하는 무협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그래서 복수의 도파민을 올려주는 액션 그 자체다. 아킬레스건을 끊어 다리를 질질 끌며 걸을 수밖에 없는 남기준이지만, 그럼에도 이 인물의 펀치는 가공할 만하다. 마치 ‘원펀맨’의 그것을 보는 듯, 한 방 날릴 때마다 엄청난 타격감을 선보인다. ‘광장’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액션 신은 집단을 상대로 홀로 싸우는 장면이다. PC방에서 떼로 몰려드는 깡패들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차례차례 때려눕히는 장면이 앞으로 펼쳐질 액션의 서막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좁은 밀집된 공간에서 특수하게 제작된 쇠몽둥이로 수십 명을 상대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조차 몸에 힘이 들어가는 액션의 결집체다. 후반부에 이르면 ‘존 윅’에서나 나왔을 법한 상상초월의 액션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러니 시청자는 단순한 서사 속에서도 속절없이 그 액션 장면에 빠져드는 자신을 어쩔 수가 없다.
소지섭의 액션이 저게 가능할까 싶은 액션조차 납득시키고 빠져들게 만드는 건 운동으로 다져진 멋진 신체 비율 때문이다. 그가 소간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어떤 옷을 입어도 멋있다고 평가받게 된 건 데뷔 전 수영·수구 선수로 국가대표까지 발탁된 전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스포츠 유망주였지만 생계를 이유로 선수 생활을 접고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청바지 모델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신인 때는 ‘남자셋 여자셋’ 같은 시트콤에서 밝은 역할을 했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로 ‘미사 폐인’을 만들어내면서 그의 이미지는 사뭇 무거워졌다. 그렇게 굳어지는 이미지가 부담이었는지 소지섭은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드러냈고, ‘주군의 태양’ ‘내 뒤에 테리우스’ 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보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카리스마에서부터 인간미를 오가는 멜로의 주인공을 두루 섭렵한 그는 ‘광장’을 통해 액션 히어로로서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작품인 만큼 그가 보여줄 강력한 액션들은 이제 세계가 주목할 캐릭터로 각인될 기회를 얻었다. 먼 길을 다양한 역할을 거치며 걸어왔지만,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새롭게 열릴 액션 배우 소지섭을 기대하게 된다. ‘광장’ 정도의 액션이라면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나 ‘테이큰’의 리암 니슨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소지섭이라는 배우의 향후 행보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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