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는 시작일 뿐...하나를 뺏기면 백을 잃는다

입력 2024. 09. 06   16:28
업데이트 2024. 09. 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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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정보전 ‘무너진 외양간’ 고쳐야 할 때 

정보원 활용 ‘휴민트’ 은밀한 활동 장점인 반면 면책특권 없어 위험 부담
미 CIA 중국 내 공작원 발각 10명 처형…공작기반 복원 10년 이상 걸려
이중스파이 7년 정보사 군무원이 유출한 정보보다 연계 피해 더욱 우려

 

최고의 간첩은 반간(反間) 

중국의 손자는 이미 2500년 전 병법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에 간첩을 활용한 정보전의 원리와 원칙을 명쾌하게 설명해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 정보기관에서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가장 잘 알려진 말이지만, 간첩을 운용하는 방법을 서술한 용간(用間) 편에 간첩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 놓은 것은 지금 기준으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향간(鄕間: 적국 내 고정간첩), 내간(內間: 적의 군이나 정부 내 간첩), 생간(生間: 살아 돌아와 보고하는 간첩), 사간(死間: 적을 속이기 위해 버리는 카드로 활용되는 간첩), 반간(反間: 적의 간첩을 내 편으로 만들어 역용하는 간첩)이 그것인데, 손자는 그중 ‘반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 정보전에서도 적의 스파이를 우리 편으로 전향시켜 적의 우리에 대한 정보활동을 알아내고, 적의 신뢰를 기반으로 기만 정보를 전달해 오판을 유도하는 이중스파이(Double Agent) 공작은 최고의 정보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체포된 후 포섭된 이중스파이

국방부 검찰단과 국군방첩사령부는 지난달 27일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을 군형법상 일반이적죄, 뇌물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2017년 중국 내 정보원 접촉을 위해 연길에 갔다가 공항에서 중국정보기관 요원들에게 체포됐는데, 자신의 안전과 가족에 대한 협박에 포섭돼 그해 11월부터 2·3급 비밀을 전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9년 이후 전달한 것만 30건으로 문서나 컴퓨터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후 여러 파일로 나눠 압축하고, 암호를 걸어 중국에 서버가 있는 클라우드에 올린 다음, 암호는 게임 앱의 음성메시지 기능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유출된 비밀에는 정보사의 임무와 조직편성,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활동하는 흑색요원 명단, 활동기법, 공작계획 등 핵심 정보가 포함돼 있다. 2017~2018년엔 중국 방문 시 현금을 받았다. 2019년 5월 이후에는 차명계좌로 1억6000만 원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협박으로 포섭됐는지 모르지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수차례 제안한 사실이 밝혀진 것으로 봐 스스로 적극적인 스파이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시간이 걸려도 철저히 조사해야

정보사는 주로 북한을 대상으로 인간을 활용한 정보활동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를 수행하다 보니 북한인들의 방문이 많고 북한을 출입하는 조선족도 많아 활용 가능 인적자원이 풍부한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신분 가장도 외교관 등 공직 가장이 아니라 사업가, 상사원 등 일반인 신분의 흑색 활동을 주로 한다. 흑색 요원은 주재국 방첩기관에 상시 노출되는 외교관 신분의 요원들과 달리 감시 범위에서 벗어나 은밀하게 활동할 수 있다. 외교관처럼 정해진 임기도 없어 장기간 심도 있는 활동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면책특권이 없어 체포되면 간첩 혐의로 처벌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반간첩법은 제3국에 대한 간첩활동도 처벌하는 등 매우 엄격해 북한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우리 정보요원들에게 중국은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 지역이다. 주재국 방첩기관 입장에서 흑색 스파이는 찾아내기 어렵지만, 일단 누가 흑색 요원인지 알게 되면 그들에 대한 미행감시와 통신감청 등을 통해 정보수집 목표가 무엇이고, 활용하는 정보원은 누구이며, 어떤 기법을 사용하는지 등 중요한 방첩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보요원(Case Officer)과 이들이 포섭해 활용하는 공작원(Agent)이라는 휴민트의 기본 구조를 통해 자국민 스파이를 색출할 수 있다. 이번 사례처럼 흑색 요원을 비밀리에 체포해 간첩 혐의로 처벌하겠다고 협박해 포섭, 장기간 이중스파이로 활용하며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을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다.

해당 군무원이 7년이나 이중스파이로 활동해 왔다면 피해 규모는 유출된 정보 자체뿐만 아니라 연계된 정보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노출된 흑색 요원들보다 그들이 포섭한 북한인이나 중국인들의 목숨이 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위장 사업체 등 오랫동안 구축된 공작 기반이 상실되고, 활동기법 노출, 잠재적 협력자 유실 등으로 향후 중국 내 정보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다. 미국 CIA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 내 공작원 20명이 체포되고, 10여 명이 처형되는 등 공작 기반이 완전히 붕괴됐다.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이제 거의 복원했다”고 선언한 것은 2023년 7월이었다.

붕괴된 휴민트 공작망을 복원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고장 난 신호정보 수집 장치나 첩보위성 등 장비를 수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보이지 않는 더 큰 잠재적 피해는 색출한 정보요원을 협박하거나 회유해 또 다른 이중스파이를 포섭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추가적 스파이 물색 및 포섭은 이중스파이 공작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광범위하고 철저한 방첩 조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도 한·미·일 군사정보 협력이 강화된 시기에 발생한 이번 사건에 주목하며 특히 미국과는 위성, 사이버, 휴민트 정보를 상호 교류하고 있는 점을 들어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총체적 방첩 강화 조치 필요

정보전에서는 빼앗는 것보다 빼앗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보수집 활동보다 방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게 되더라도 적이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흘려 우리를 기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해외 근무 후 복귀하는 요원들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 등 내부에 존재하는 적 스파이인 두더지(Mole)를 찾아내는 방첩에 집착하는 이유다. 내부 스파이는 출입통제, 방화벽 등 외부 침입에 대비한 모든 조치를 무력화시킨다. 미국은 2011년 10월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정보업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장(DNI)과 법무부 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내부자위협태스크포스(NITTF·National Insider Threat Task Force)를 만들어 정보기관뿐 아니라 비밀을 취급하는 모든 연방기관에 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내부자 위협을 색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토록 하고 있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무너진 방첩전선을 복구해야 한다.

명백한 간첩 행위인 이번 사건에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한 것은 ‘적국을 위해’로만 한정해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현행 형법상 간첩죄의 문제점 때문이다. 모든 나라에서 스파이 색출의 핵심 수단이 되는 휴대전화 감청도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자국에 유리하게 여론을 조작하는 영향력 공작을 차단하기 위한 외국대리인등록법(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미리 신고토록 하는 제도)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정보요원, 비밀취급인가자, 해외 공관 근무자 등의 신원조사를 강화하고, 범정부적인 내부자 위협 대응 프로그램 마련 등 총체적인 방첩강화 조치가 필요하다.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가 간 첩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 소를 잃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말고 외양간부터 고쳐야 할 때다.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지는 법이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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