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가장 높은 곳에서…지키겠다는 의지를 품은 손이 됩니다

입력 2024. 09. 01   15:28
업데이트 2024. 09. 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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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오지 부대를 찾아서
⑥ 추자도 - 해군3함대 해상감시장비운용대

푸른 바다·산 한눈에…

위병소 근무하며 오션뷰 만끽
모노레일 타고 굽이굽이 정상으로

‘서남해역 수호’ 만전
철통같은 전장감시태세 유지
관할구역·책임도서 방어 임무
레이다 등 감시장비 운용하며
함정·선박 움직임 추적·공유

‘섬 속의 섬.’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한 추자도는 제주도와 전라남도 중간 지점에 있는 작은 섬이다. 상추자와 하추자 2개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인근 4개 유인도와 함께 추자면을 구성한다. 전체 인구는 1580명 남짓. 섬에선 벵에돔, 돌돔, 참돔을 비롯한 고급 어종이 많이 잡혀 낚시꾼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 중에서도 추자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은 조기다. 섬 가까이에 조기 어장이 있어 매년 10월이면 굴비 대축제가 열릴 정도다. 섬 가장 높은 곳에는 ‘해군3함대 추자도 해상감시장비운용대’가 자리 잡고 있다. 낭만과 여유가 흐르는 추자도의 푸른 바다, 이곳 장병들은 보물 같은 우리 영해를 지킨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해군3함대 추자도 해상감시장비운용대 정근호 상사가 추자도 가장 높은 곳에서 레이다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운용대는 레이다를 비롯한 감시장비를 통해 책임해역을 지키고 있다.
해군3함대 추자도 해상감시장비운용대 정근호 상사가 추자도 가장 높은 곳에서 레이다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운용대는 레이다를 비롯한 감시장비를 통해 책임해역을 지키고 있다.

 


서울서 진도 지나 뱃길로 40분 


한여름 불볕더위가 한반도를 달구던 지난달 12일, 진도항에서 추자도로 향하는 쾌속선 산타모니카호에 올랐다. 진도에서 추자도까지는 40분 남짓 걸리니, 그동안 다닌 동해 울릉도와 서해 백령도에 비하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이 정도면 다닐 만하네’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5시간 걸렸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승선 전 편의점에서 구매한 삼각김밥을 우걱우걱 먹고 나니 그새 상추자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를 벗어나자 푹푹 찌는 무더위에다 해안가 특유의 염분 섞인 꿉꿉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푸른 바다와 산으로 가득한 절경 덕분에 눈은 시원했다. 가깝게는 상추자도 봉골레산부터 멀게는 하추자도 돈대산과 예초포구까지 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은 제주 올레길 18-1, 18-2 코스 시작점이기도 하다. 제주 올레길이 추자도까지 들어서면서 올레길 종주 목적으로 섬을 찾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정경수(준위) 해상감시장비운용대장을 만나 부대로 향했다. 정 대장은 올해 6월 준사관 임관 후 첫 부임지로 추자도에 왔다고 했다. 언덕길에 있는 부대 위병소는 나름 ‘오션뷰’를 자랑한다. 차량 통행이 드문 도로 너머로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위병소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항구를 바쁘게 오가는 선박들로 향한다. 위병소 근무에 해상감시 임무까지 일석이조다.

부대 건물 안에 들어서니 사무실, 식당, 생활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나름 농구장, 풋살장 시설도 모두 갖추고 있다. 한여름이라 안전 때문에 야외운동은 하지 못하지만 봄·가을이면 바다를 보며 공을 차는 낭만이 있다고 한다.

 

 

위병소 근무자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고 있는 곽우종(맨 오른쪽) 상사.
위병소 근무자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고 있는 곽우종(맨 오른쪽) 상사.

 

장병들이 모노레일에서 점심 도시락을 옮기고 있다.
장병들이 모노레일에서 점심 도시락을 옮기고 있다.

 

어느덧 점심시간. 식당에 ‘도시락 가방’이 등장했다. 그동안 격오지 부대를 몇 차례 다녀와선지 가방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대와 떨어진 작전기계실 근무 장병에게 배송할 용도다. 추자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작전기계실 모습이 궁금해 도시락 가방을 든 정근호 상사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추자도의 추진보급 현장은 상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차량을 이용할 줄 알았는데, 눈앞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해군’ 글자가 박힌 모노레일이었다. 놀이공원에서 볼 법한 장비를 군부대, 그것도 외딴섬에서 만나다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전기계실까지 차도는 없고, 도보로는 20분가량 걸립니다. 요즘 같은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산을 오르내리기에 어려움이 있죠. 그래서 도입한 게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모노레일입니다. 인원 이송과 간단한 짐 운송에 쓰고 있습니다. 한번 타보시죠.”

모노레일은 굽이굽이 산비탈 길을 헤치며 전진했다. 옆으로 보이는 등산로의 경사도를 보니 모노레일의 존재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출발한 지 15분쯤 흘렀을까, 추자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다다랐다. 해안에서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절경이었다. 손에 잡힐 듯한 뭉게구름 아래 푸른빛 산과 바다가 펼쳐졌다. 장병들 말로는 날씨가 좋은 날엔 남쪽 바다 너머로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추자도 해상감시운용대 위병소.
바다가 보이는 추자도 해상감시운용대 위병소.


‘책임해역 감시’

추자도 운용대는 평화로운 이곳 섬과 바다를 굳건히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주요 임무는 전장감시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관할구역 및 책임도서 방어 임무를 완벽 수행하는 것이다. 추자도는 해상교통량이 많은 제주해협에 자리 잡고 있어 임무 중요성이 큰 편이다. 실제로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운용대는 레이다를 비롯한 감시장비를 운용하며 일대를 지나는 함정·선박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함대 지휘통제실에 공유함으로써 경계·탐지를 돕는 역할을 한다. 모든 장병은 대한민국 서남해역을 수호한다는 책임감으로 감시장비 운용·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선 추자도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호국영령이 잠든 추자면 충혼묘지. 1995년 건립된 충혼묘지에는 나라를 구하다 희생된 국군 장병 49명과 공무원 1명이 잠들어 있다. ‘나는 죽었노라, 이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충혼탑 비석에 적힌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평화로운 모습과 달리 추자도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섬에선 일제강점기 때 반복된 수탈로 1926년과 1932년 두 차례 대규모 어민항쟁이 일어났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엔 일제의 결사항전 작전에 따라 섬 곳곳에 갱도 진지가 구축됐다. 그때 지어진 갱도는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1974년 5월 20일에는 북한의 무장 간첩단이 추자도에 침투해 경찰 등 4명이 전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당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추자도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 상추자도 선착장과 인접한 등대산공원엔 간첩사건 희생자의 충혼을 기리기 위한 ‘반공탑’이 우뚝 솟아 있다.

주민과 함께하는 부대

추자도 운용대 장병들은 주민과 함께하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군악대 콘서트 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지역주민을 초청해 축제의 장을 만든다. 주민과 함께 체육활동도 하며 소통하고 있다.

최근 부대에는 추자도 청년회장의 제보가 들어왔다. 부대원 곽우종 상사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고령화로 섬에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곽 상사가 주말을 반납한 채 대민지원에 나섰다는 것. 청년회장은 “솔선수범해 추자도민에게 여러 차례 도움의 손길을 준 곽 상사 덕분에 많은 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곽 상사는 대민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뿐만 아니라 ‘추자콕’이라는 배드민턴 동호회에 해군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주민뿐 아니라 초등학교, 보건소, 면사무소, 수협 등 유관기관이 함께한다. 전체 회원만 50명 이상, 추자도 최대 모임이라고 한다.

곽 상사는 추자도가 두 번째 격오지 근무다. 과거 거문도에서 근무하며 지역주민과 관계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래서 추자도에서도 먼저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그 방법의 하나로 봉사활동과 동호회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작은 섬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선 주민,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감이 필요합니다. 제 고향이 진도인데 추자도와 가까워 주민들께서도 많이 반가워해 주셨습니다. 또 섬 주민 중 해군 출신인 분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자도란 섬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어둠이 내려도, 밝게 빛난다

태양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자 추자도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인적 드문 해안도로엔 가로등 불빛뿐이다. 낮에 왁자지껄하던 선착장 식당·민가도 밤이 깊어지자 하나둘 문을 닫는다. 저 멀리 등대산공원의 반공탑이 등대처럼 환하다. 반대편에는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추자도 운용대가 있다. 오션뷰를 자랑하던 위병소도, 산 정상의 기계실도 어둠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묵묵히 추자도 푸른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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