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사랑한,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한국인’

입력 2024. 05. 07   15:41
업데이트 2024. 05. 07   15:46
0 댓글

이영미의 스포츠in - 돌아온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 

2011년 KBO 진출 8시즌 동안 활약
역대 외국인 투수 중 유일한 ‘V100 +α’
포수 양의지와 ‘영혼의 배터리’ 우애
한국서 결혼·출산 ‘제2의 고향’ 애정
야구 예능 ‘최강야구’로 마운드 컴백
1997일 만의 등판 구속 148㎞ 찍어

 

더스틴 니퍼트. 필자 제공
더스틴 니퍼트. 필자 제공



1998년 KBO리그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더스틴 니퍼트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선수이자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니퍼트는 2011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첫선을 보인 후 무려 8시즌을 한국 야구와 동고동락했다. 7시즌은 두산, 1시즌은 kt wiz 선수로 뛰었다. 8시즌 동안 니퍼트는 통산 214경기에 나와 102승(51패), 1082탈삼진, 평균자책점 3.59를 기록했다. 수많은 KBO 외국인 투수 가운데 100승 이상을 달성한 건 니퍼트가 유일하다.

2017시즌 이후 두산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2018년 kt 유니폼을 입게 됐을 때 일부 두산 팬들은 돈을 모아 니퍼트를 위한 신문 광고를 게재하며 ‘야구를 통해 즐거움과 희망을 주던 당신은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고 뜨거운 애정을 담아냈다.

그런 그가 2018시즌을 마치고 다시 무적(無籍) 신분이 됐다. KT와의 재계약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니퍼트는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여전히 한국, KBO리그를 사랑했던 니퍼트는 스스로 은퇴를 발표하지 않고 다른 팀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더스틴 니퍼트는 2002년 신인드래프트 15라운드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다 2004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니퍼트는 미국의 유명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뽑는 유망주 톱100에 자주 이름을 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빅리그 데뷔 후에는 기대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애리조나에서 주로 패전 처리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2008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듬해인 2009년에 선발로만 10경기에 등판, 5승3패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텍사스 구단이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하면서 팀을 나오게 된다. 이후 니퍼트는 다른 리그를 알아봤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최종 계약까지 갔다가 막판에 결렬되는 바람에 2011년 두산 베어스와 인연을 맺었다.

니퍼트는 두산에서 보낸 7시즌 동안 94승(43패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첫해 15승을 포함해 4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렸고, 2016년에는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2017시즌도 14승 8패 평균자책점 4.06의 성적을 올렸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두산은 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니퍼트는 이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두산을 나올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최강 몬스터즈’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한 더스틴 니퍼트. 사진=jtbc ‘최강야구’
‘최강 몬스터즈’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한 더스틴 니퍼트. 사진=jtbc ‘최강야구’



“어느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 두산과의 계약 관계도 그랬다. 언젠가는 팀을 떠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2017시즌 이후가 될지는 몰랐다. 사실 두산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일본 프로팀들이 지속적으로 오퍼를 보냈다. 두산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두산을 떠나기 싫어 거절하곤 했었다. 난 두산 선수들, 팬들을 사랑했다.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정말 괴로웠다.”

니퍼트가 두산을 떠나기 싫어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던 포수 양의지 때문이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양의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KBO가 처음이었고, 양의지도 프로 커리어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즌이 중반 정도 됐을 때 우리는 상대를 완벽히 파악했고 같은 선상에 존재했다. 마운드에 섰을 때 양의지가 사인을 내면 거의 고개를 흔들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고 내가 원하는 구종을 던졌을 때 거의 안타를 허용했었다. 양의지는 항상 옳았다. 그는 나보다 내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포수였다. 그런 점에서 양의지는 KBO 최고의 포수다.”

니퍼트가 2018시즌 kt에서의 한 시즌을 마치고 팀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해 겨울 양의지(당시 NC)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최다 득표의 영예를 안고 시상식 무대에 올라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두산 베어스 구단과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영혼의 배터리’를 이뤘던 니퍼트를 떠올리며 “니퍼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니퍼트는 내 마음속의 영원한 1선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니퍼트와 7년 동안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내가 야구를 못할 때부터 모든 걸 공유했던 선수다. 나 역시 니퍼트 덕분에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는 팀과의 계약이 끝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리그로 옮긴다. 그러나 니퍼트는 2018년 이후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고 혹시나 자신을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 싶어 지속적으로 몸을 만들었다. 물론 한국에서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태어난 터라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니퍼트는 야구 좋아하는 한국 아이들을 위해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제2의 고향’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

그리고 최근 니퍼트는 JTBC ‘최강야구’ 시즌3 트라이아웃을 통해 ‘최강 몬스터즈’ 팀에 합류해 1997일 만에 등판했다. 

트라이아웃에서 니퍼트는 김성근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 구속 144㎞를 찍었고, 첫 방송에서는 최고 구속 148㎞를 선보여 43세의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했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야구를 존중하는 더스틴 니퍼트. 2018년 이후 6년 만에 유니폼을 입고 다시 공을 던지고 있는 그는 또 다른 감사와 감동으로 팬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 이영미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다. 추신수, 류현진의 MLB일기 등 주로 치열하고 냉정한 스포츠 세상, 그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