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을 말하다] ⑭ 김형수(예·육군준장)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

입력 2023. 08. 11   16:04
업데이트 2023. 08. 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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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앨범처럼 … 한미동맹 위한 23년…최일선에서 맹활약, 미 공로훈장 받기도 
순간이 모여 … 워싱턴 추모의 벽 모금운동·주한미군전우회 재방한 등 앞장 
오늘의 동맹 채웠다 … 한미동맹의 날 제정 제안…양국 친선·신뢰 강화 위해 주력

김형수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이 선문대 아산캠퍼스 내 안보협의회 사무실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액자에는 그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국제협력실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사진들이 담겨 있다.
김형수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이 선문대 아산캠퍼스 내 안보협의회 사무실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액자에는 그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국제협력실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사진들이 담겨 있다.

 

김 위원이 미국을 비롯한 74개국 국기가 게양된 선문대 아산캠퍼스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문대에는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74개국에서 온 1661명의 유학생이 재학 중이다.
김 위원이 미국을 비롯한 74개국 국기가 게양된 선문대 아산캠퍼스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문대에는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74개국에서 온 1661명의 유학생이 재학 중이다.



김형수 예비역 육군준장의 ‘인생 타임라인’ 곳곳에는 한미동맹이 있다. 현역 시절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 연합작전처장,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작전협조단장 등을 역임한 그는 예편 뒤에도 국방부 합동분석실장(1급), 연합사 연합훈련평가단 선임분석관,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국제협력실장 등을 맡아 동맹 강화에 일조했다. 지난 4월에는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돼 국제 분야의 정책적 제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양한 위치에서 국방안보 현안을 두루 경험한 그가 느낀 한미동맹의 가치는 무엇일까. ‘한미동맹을 말하다’ 열네 번째 주인공으로 김 위원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 봤다. 글=이원준/사진=한재호 기자


“양국 결속력 강화…한미동맹의 날 제정해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가슴이 벅찹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보의 핵심 축이며,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실체입니다. 지난 70년간 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안정,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값진 피와 땀을 흘렸습니다.”

김 위원은 미국 전문가로 꼽힌다. 임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군사영어를 익혔고, 영관장교 시절엔 미 육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는 한미동맹 최일선에 있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 군을 대표해 미 중부사령부 다국적군사령부에서 근무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사령부에는 이라크전쟁과 관련해 65개국 동맹국 대표가 파견돼 있었다.

“동맹국 작전협조단장들과 매일 작전평가회의를 했습니다. 중부사령관 오른쪽에 영국군 대표가 앉고, 나머지는 알파벳 순으로 좌석이 배치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간쯤 배치됐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으니 그 규모에 따라 자리를 배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주한 미 7공군사령관을 지낸 랜스 스미스 부사령관이 한국군 대표 제안이 타당하다고 거든 덕분에 사령관 좌측에 앉은 일화가 있습니다(웃음).”

김 위원은 다국적군사령부 임무를 마친 뒤 동맹 강화에 일조한 공로로 한국군 작전협조단장으로는 최초로 미 정부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있다. 이는 외국군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김 위원은 현역으로 37년, 예비역으로 10년까지 총 47년 중 절반에 가까운 23년을 미군 또는 주한미군과 함께 일했다. 이러한 경력과 전문성을 살려 그는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국방안보 전문가로 구성된 국방정책자문위원회는 국방정책 입안·시행에 앞서 국민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적 제언을 한다. 군에 대한 신뢰·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국방부와 국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주력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인 올해 국방안보 분야에서 김 위원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선언’이다. 그는 북핵 위협에 강력한 대응의지를 표명한 워싱턴선언은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과도 같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선 지난 4월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고, 날로 고도화하는 북핵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 워싱턴선언을 문서로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핵무기 운용과 관련해 한미 정상이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워싱턴선언으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또 행동하는 동맹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선언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 친선을 강화하고 신뢰를 더욱 증진해야 합니다. 부부가 종이문서로만 동행하는 관계가 아니듯, 한미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호신뢰가 바탕이 돼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 위원은 최근 열린 국방정책자문위원회에서 ‘한미동맹의 날’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미국에서는 주한미군전우회(KDVA)를 중심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인 10월 1일을 ‘한미동맹의 날’로 제정·기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미동맹의 날이 제정되면 모든 국민이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한미동맹의 역사와 발전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 연방 상·하원과 우리 국회에서도 관련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한미동맹의 날을 만들어 동맹의 의미를 되새기고, 양국의 결속력을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미 워싱턴 ‘추모의 벽’ 모금운동 첫 제안 

김 위원이 ‘친선과 신뢰’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그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다. 향군 국제협력실장 재임 때 미 워싱턴DC ‘추모의 벽’ 건립에 깊숙이 관여한 것. 6·25전쟁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은 지난해 완공됐지만 실제로 조성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예산이었다. 김 위원은 5년 전 향군회장단 일원으로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 만난 윌리엄 웨버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아직도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고 했다.

“2018년 8월 미국 향군 100차 총회 참석차 방미했을 때였습니다. 웨버 회장이 우리 향군회장단을 워싱턴DC 한식당에 초대해 만찬을 제공하면서 추모의 벽 건립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모금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났는데, 금액이 부족하다며 도와달라고 간곡히 요청해 우리 향군이 1억 원의 성금을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귀국길 항공편에서 제가 ‘향군 회원뿐만 아니라 민간 모금운동을 전개하자’고 건의했고, 이것이 국민적 모금의 신호탄이 됐습니다.”

실제로 향군은 이때 국내에 추모의 벽 사업을 처음 알리고 모금운동을 벌였다.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여 많은 국민의 참여를 끌어냈다. 400개가 넘는 국내외 단체, 22개 기업도 호응했다. 그 결과 53만2000달러를 모금해 미국 측 단체에 전달할 수 있었다. 김 위원이 한미동맹의 굳건한 친선과 신뢰를 몸소 체감한 순간이었다.

“향군의 대국민 모금운동 소식이 알려지며 많은 기업과 단체가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향군의 활동은 성금 전달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홍보 활동으로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기관에 지원을 지속 요청한 끝에 2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았습니다. 한때 좌초 위기에 처했던 추모의 벽 건립사업에 향군이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모금운동에 참여한 1000만 향군 회원과 국민께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워싱턴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 건립된 추모의 벽에는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 위원도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추모의 벽을 바라보며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준공식을 비롯해 여러 차례 추모의 벽을 찾았습니다. 추모의 벽에 새겨진 할아버지 이름을 후손들이 탁본을 떠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와 미국은 함께 피 흘리면서 자유를 지킨 혈맹이란 사실을 다시금 체감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로 준 자유의 여신상이 100년 넘게 미국과 우의를 과시하는 기념물이 된 것처럼 추모의 벽도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평화의 기념물로 후세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김 위원은 향군에 근무할 때 추진한 주한미군전우회 재방한 사업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이 사업은 6·25전쟁에서 활약한 유엔 참전용사들이 고령화로 한국 방문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1953년 이후 한국에서 복무한 주한미군의 헌신을 기억하고,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기획된 이 사업은 2021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열리고 있다.

“주한미군전우회 재방한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연기된 끝에 2021년 12월 처음 진행됐습니다.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문화 체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투어, 캠프 케이시 방문, 전쟁기념관 견학 등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 흐뭇했습니다. 앞으로는 사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국군 파트너를 연결해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듯 한미 장병이 함께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학에서도 동맹 강화·공공외교 활동

김 위원은 2014년부터 선문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미동맹의 가치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교육하기 위해 대학에 안보협의회도 조직했다.

“학생들에게 국제정세나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해 안보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 안보협의회는 저와 같은 예비역이 주축이 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군 생활을 30년 이상 한 예비역이 15명 있습니다. 따로 행동하면 힘이 미약하지만,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노력을 통합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에는 미국·일본 등 74개국에서 온 1661명의 유학생이 있는데,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미동맹 등 국제협력에 관한 안보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안보협의회는 선문대 학군단(ROTC) 후보생이 장차 초급간부로서 리더십을 배양하는 데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일반 학생을 위한 병무상담소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자기적성과 전공을 살려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받는다. 이런 활동 덕분에 선문대는 2016년 국방부 학군단 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대학에 선정됐다.

김 위원이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공공외교’다. 공공외교란 외국 국민과 직접 소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전통·가치·정책·비전 등의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하는 것이다.

“최근 외교는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활동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안보협의회 활동도 공공외교의 하나입니다.”

김 위원은 공공외교의 핵심 대상은 한국에 주둔하는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을 거쳐 가는 수많은 미군 장병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 이들이 가까운 미래에 든든한 ‘지지세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 우리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공공외교를 펼쳐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2000명이 넘는 주한미군 예비역, 전직 외교관 등이 체류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들을 네트워크화해 관리하면 대미 공공외교 플랫폼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미군 장병은 우리와 늘 가까이 있습니다. 한미동맹의 실체인 주한미군의 친한화(親韓化)가 연합방위태세와 동맹 강화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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