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을 말하다] ⑩ 코리아휠 최훈 회장 

입력 2023. 06. 16   16:39
업데이트 2023. 08. 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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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말 한마디로 시작된 특별한 인연
“램로 씨에게 큰 선물 받았습니다”

6·25전쟁 미 참전용사 램로 씨와 최훈 회장
몬태나주 지역 휴게소에서 우연한 만남
15년간 전화·이메일 주고받으며 연락 이어오다
작고 전 소장 슬라이드 필름 원본 110장 전달 받아

2021년 6월 ㈜풀무원푸드앤컬처에 사진 기증
부산엑스더스카이서 ‘듀이 램로의 시선 사진전’도

최훈 회장이 사진 속 듀이 램로 씨를 가리키며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훈 회장이 사진 속 듀이 램로 씨를 가리키며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힘들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쓰러져 있을 때 무릎을 꿇어 일으켜 주거나 가지고 있는 물건을 나눠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줬는지 기억하지 않죠. 저는 친구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네요.”
여기 두 친구가 있다. 둘은 한국인과 6·25전쟁 미 참전용사로 만났다. 이들의 우정으로 70년간 서랍 한편에 있던 사진들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됐다. 이는 두 사람에게 ‘한국과 미국’이라는 교집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나라의 우정이 더 끈끈해지는 데 일조한 코리아휠㈜ 최훈(71) 회장을 충남 보령시 본사에서 만났다. 글=조아미/사진=조용학 기자


한국의 발전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듀이 램로 씨가 최훈 회장에게 우편으로 전달한 슬라이드 필름들이 최 회장 사무실에 놓여 있다.
듀이 램로 씨가 최훈 회장에게 우편으로 전달한 슬라이드 필름들이 최 회장 사무실에 놓여 있다.


최 회장은 1978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시애틀로 건너갔다. 정비소 일을 하면서 자동차 휠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휠 사업을 확장하던 2001년 9월. 그는 출장차 아이오와주(州) 디모인스에 갔다. 당시 9·11 테러로 하늘길이 막히자 그는 디모인스에서 렌터카를 이용해 시애틀에 있는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최 회장은 몬태나주 지역의 한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듀이 램로(Dewey Ramlo)라는 6·25전쟁 미 참전용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아챈 램로 씨는 최 회장에게 자신이 6·25 참전 군인이라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을 반가워해 줘서 참 고맙더라고요.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강했고요. 램로 씨는 자신이 6·25전쟁 당시 카메라로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사진이 궁금해서 현상만 하고 필름은 다시 돌려줬습니다.”

슬라이드 필름은 환등기에 넣어 영사할 수 있게 만든 포지티브 필름(Positive film)으로 정확한 색채와 명암이 장점이다.

그 뒤로 최 회장은 참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램로 씨에게 한국 기념품 등을 보내며 안부를 전했고, 전화·이메일을 주고받으며 15년간 연락을 이어갔다.

“1950년대 한국은 대부분 논과 밭이 있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만 상상하던 그에게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 모습을 보여주니 ‘어메이징’이라고 감탄하더라고요. 정말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냐면서 기뻐했죠. 자신과 전우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니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요. 기회가 되면 꼭 한국 땅을 밟아 보게 하고 싶었는데….”

이후 램로 씨는 최 회장에게 믿음이 갔는지 2015년 자신이 소장한 슬라이드 필름 원본 110장을 우편으로 전달했다. 최 회장은 “램로 씨는 나에게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다. 이 필름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네가 한국을 위해 의미 있는 곳에 써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컬러사진이 없던 시절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들은 우리의 역사 그 자체였다. 필름을 받은 두 손을 바라보며 무거운 책임감과 감사한 마음을 동시에 가졌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연로한 램로 씨는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통화도 제대로 못했고, 뒤늦게서야 램로 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시간이 그를 놔두지 않더라고요. ”


부산 육군 수송부대서 복무하며 사람·풍경 등 촬영

듀이 램로 씨가 1952~1953년 미 육군 8074수송부대원들을 촬영한 사진과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선명한 사진이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듀이 램로 씨가 1952~1953년 미 육군 8074수송부대원들을 촬영한 사진과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선명한 사진이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램로 씨는 6·25전쟁 때 부산의 육군 수송부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1952년부터 1953년까지 부산에서 근무하면서 사람·풍경 등 ‘피란 수도’ 부산의 생활상과 경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정사각형 슬라이드 필름 한 장 한 장에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 일일이 메모했다. ‘교복(School dress)’ ‘식료품 시장(grocery market)’….

젊은 미군의 눈에 당시 대한민국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인화된 사진들은 최근에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고 밝았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램로 씨의 부대 생활과 전우들, 해맑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빨래하는 아낙네들, 화재로 타버린 부산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최 회장은 “램로 씨는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도 남겼지만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동차 정비교육도 해주며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탠 것 같다”고 설명했다.

110장의 사진 가운데 최 회장이 꼽은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총탄이 뚫고 간 군용차량’과 ‘부산 달맞이고개’ 사진이다.

“부산 달맞이고개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해운대 인근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섰어요. 같은 장소 모습이 대조되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할 수 있죠. 총탄으로 차 앞 유리가 깨진 군 차량을 보면 참혹한 전장을 마주한 것 같았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2021년 6월 ㈜풀무원푸드앤컬처에 사진을 기증했다.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엑스더스카이에서 ‘듀이 램로의 시선 사진전’을 개최해 사진 일부를 최초로 대중에 공개했다. 램로 씨의 달맞이고개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전시회를 의미 있게 연 것.


끈끈한 우정·따뜻한 마음으로 굳건한 동맹관계 다지길…

듀이 램로 씨가 1952~1953년 미 육군 8074수송부대원들을 촬영한 사진과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선명한 사진이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듀이 램로 씨가 1952~1953년 미 육군 8074수송부대원들을 촬영한 사진과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선명한 사진이 당시 우리나라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또 비슷한 일을 겪었다. 부부 동반으로 미국 알래스카를 여행하던 중 또 다른 미국인과 대화할 일이 생겼다. 그 미국인은 6·25 참전용사의 아들이었다. 

“제가 한국인의 평범한 얼굴인가 봐요. 이번에도 한국인이냐며 물었고, 자신의 아버지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참전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말을 건넸습니다.”

참전용사의 자녀는 최 회장에게 당시 인천의 병원선에서 근무한 아버지 사진과 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이메일로 보냈다.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기념비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미군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보이지 않는 끈끈한 우정과 따뜻한 마음이 모여 더욱 굳건한 동맹관계를 다지길 기원합니다.”

한편, 최 회장은 심승섭 전(前) 해군참모총장이 회장으로 있는 글로벌국방연구포럼 후원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일 “글로벌국방연구포럼이 국가안보 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써달라”며 1억 원을 쾌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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