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 - 냉전이 강요한 선택-홋타 요시에, 『광장의 고독』
한 신문사 직원 통해 본 전후 일본 풍경
패전 5년 만에 6·25전쟁 맞닥뜨린 상황
적이었던 미국 편들고 좌·우익 나뉘고
거부도, 도피도 할 수 없는 혼란과 절망
침략의 과오 반성 목소리 높인 작가들
신냉전 시대에 되돌아보는 그들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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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한·일 관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은 즉각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를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면에는 동북아에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신냉전의 질서가 작동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중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을 수립하고 대만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중국은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만약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는다면 즉시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이 동원되고, 한반도 역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유지하면서 직접적인 군사 동맹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폭적인 양보에도 일본 정부는 아직 별다른 화답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두 국가는 과거의 상처를 함께 응시하며 화해에 이를 수 있을까. 외교 무대에서 각 국가는 사소한 표현까지 조절하며 ‘국익’을 저울질한다. 이것은 정치와 외교의 영역일 것이다. 반면 문학의 영역은 다르다. 현재 신냉전 전개를 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을 생각한다. ‘기가키’라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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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1918~1998)의 소설 『광장의 고독』(논형, 2023)의 주인공이다. 올해 국내에 출간된 이 소설은 개인의 운명이 국제정치에 맞물린 현실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은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가 됐고, 8월에는 맥아더의 지령으로 ‘경찰예비대(후에 보안대·자위대로 재편)’가 설치되면서 ‘재군비’라는 ‘역코스’를 걷게 된다.
냉전 상황을 맞아 미국은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광장의 고독』은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로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일본 청년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기가키’는 한 신문사의 임시 직원이다. 영어에 능통한 기가키는 번역 업무를 맡고 있었다. 1950년 여름, 기가키는 긴급으로 타전된 통신을 접수한다. “적(enemy)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진하고 있다”는 통신문을 번역하던 기가키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일본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오키나와가 점령되고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았다. 광기 어린 ‘1억 옥쇄’를 외치면서 본토 결전을 불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5년이 지나자 일본 신문사는 미국의 적을 일본의 ‘적’으로 표기하는 기사를 송출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기가키는 혼란에 빠진다.
기가키는 미국인 기자 헌트와 대화하면서 줄곧 “일본은 누구의 편도 아님”을 얘기하지만, 헌트는 오히려 그런 기가키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헌트는 한국에서 부상당한 미군 병사를 후송하는 구급차를 가리키면서 “이래도?”라고 반문한다. 기가키는 도시에 가득한 영어 간판과 항구에 가득한 수송선을 보면서 그 풍경 이면에 아시아 민중들의 고통이 은폐되었다고 생각한다.
활기 가득한 항구에서는 굶주린 일본인들이 ‘전쟁 중 홍콩에서, 상하이에서, 사이공에서, 싱가포르에서 일본인의 차와 구두를 닦고 있던 소년들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은 태평양전쟁 시기 다른 아시아인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동료 하라구치는 정계와 재계의 인사들에게 해외정보를 넘기는 일을 하다가 재창설된 경찰보안대에 들어가고, 좌·우익으로 나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분주하게 움직인다. 동료 도이는 미국에서 성장한 교포 2세지만, 태평양전쟁 때 일본으로 돌아와 포로들을 영어로 심문하는 일을 한 것이 들통나서 미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다른 동료 미쿠니와 윤전기를 담당하는 다치카와는 공산당 활동을 하면서 기가키에게 입당을 권유한다. 오스트리아의 몰락한 귀족 출신인 ‘틸피츠’라는 남작은 계급·국가·사회를 부정하고, 오직 돈과 향락만을 추구한다.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돈이 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가키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인 입장을 관철하려 하지만, 전쟁을 지지하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이상, 그 자신도 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개인’으로 남으려고 해도 특정한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한 기가키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할 것을 고민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자각한 기가키는 망명을 포기한다. 냉전이 강요한 선택으로 방황하는 기가키의 모습은 전후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남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도 겹친다.
태평양전쟁 중 게이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제문화진흥회’에 취직한 홋타 요시에는 중국 문학가 루쉰의 글을 접하고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을 겪은 홋타 요시에는 국제문화진흥회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리고 국민당계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그는 점령자의 입장에서 갑자기 피점령자의 위치로 전락하는 현장을 직접 겪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광장의 고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소설의 인물 기가키는 바로 홋타 요시에의 페르소나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홋타 요시에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사를 거론하면서 일본이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과오를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홋타 요시에의 작품들은 전쟁을 기억하는 전후 일본의 비판적인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정치적 수사가 난무하는 지금, 가해와 피해의 기억을 동시에 앓았던 전후 일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는다. 두 국가의 교집합은, ‘광장’과 ‘밀실’에서 고통을 겪었던 무수한 ‘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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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던 중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가 지난 3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는 모임을 결성한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
강제징용으로 고통받았던 분들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들도 계속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소멸하기 전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이윤을 계산하는 정치의 언어가 아닌 고통을 담은 문학의 언어가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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