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 전쟁박물관 입구엔 폭탄 줄지어 서 있어

입력 2023. 03. 15   16:42
업데이트 2023. 03. 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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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 라오스 2 

중국자본으로 세운 고속철 최근 완공
10시간 걸리던 거리 2시간이면 도착

공산화 전 왕정 수도였던 루앙프라방
세계 문화유산 지정된 인기 관광지
한적한 전쟁박물관에 불발탄 처리반도
완료까지 200년…전쟁 후유증 보여줘

루앙프라방 전쟁박물관의 야외전시장 전경.
루앙프라방 전쟁박물관의 야외전시장 전경.

 

불발탄으로 수거된 집속탄과 알맹이 모습.
불발탄으로 수거된 집속탄과 알맹이 모습.

 

국립박물관 내의 불교 황금 사원 전경.
국립박물관 내의 불교 황금 사원 전경.

 

라오스 고속열차 내의 ‘미니 바’ 전경.
라오스 고속열차 내의 ‘미니 바’ 전경.



루앙프라방 시내의 다인승 택시 모습.
루앙프라방 시내의 다인승 택시 모습.



최근 완공된 라오스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관광명소인 루앙프라방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과거에는 열악한 도로 여건으로 자동차로 거의 10시간씩 걸렸던 구간이다. 열차표를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하려니 이미 매진이다. 새벽 일찍 비엔티안역에 가면 현장에서 기차표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행안내소 직원이 말한다. 라오스 내전 역사 자료를 볼 수 있는 루앙프라방 전쟁박물관을 놓칠 수는 없다. 다소 불투명하지만, 일단은 현장에 가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라오스의 한류 열풍을 전하는 호텔 직원

비엔티안 호텔 직원 방(Vang)은 2024년 한국 입국을 준비하는 청년이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을 통과했고, 영어·중국어·태국어도 유창하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는 능숙했다.

중국 자본으로 건설한 고속열차 회사에서 근무하다 이 호텔로 직장을 옮겼단다. 그는 루앙프라방의 전쟁박물관 정보까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비엔티안의 한국식당 위치, 주요 식단과 가격까지 정통하다. ‘꿈의 나라’ 한국에서의 생활에 벌써 들떠있다. 라오스의 생필품은 대부분 중국산이 차지한다. 그러나 다소 비싸지만, 한국 제품은 품질이 좋다며 현지인 소비성향도 서서히 한국산 구매로 변해가고 있단다. 특히 라오스 신세대의 K팝(Pop)과 한국 드라마에 관한 관심은 뜨겁다. 심지어 한국 TV 시청을 하면서 한국어까지 배운 젊은이들을 시내에서 가끔 만나기도 했다.


‘루앙프라방’행 고속열차와 라오스 변화

비엔티안 교외로 새벽에 달리는 ‘툭툭이(삼륜차)’ 뒷좌석으로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온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시릴 정도다. 고속철 역사는 시내 중심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40여 분을 툭툭이가 달린 후, 허허벌판에 웅장한 역 청사가 보였다. 대형 건물 벽에는 ‘방상(方象)’이라는 한문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불필요할 정도로 넓은 광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매표소 안은 여행객으로 초만원이다.

다행히 오전 9시 20분 출발 열차의 루앙프라방 좌석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차표 구매는 현지 화폐만 가능하고, 카드 및 외화 결제는 불가하단다. 환전을 위해 다시 바깥으로 나가면, 열차표가 매진될 것 같아 난감했다. 마침 옆에서 지켜보던 청년이 약간의 외화를 바꿔줬다.

역 청사 내부구조는 극히 단순했다. 널찍한 승객대기실, 귀빈실, 화장실, 매점 외 편의시설은 전혀 없다. 고속열차에 탑승하니 객실은 깔끔하고 편리했다. 5열 형 좌석에 앞뒤 간격도 여유롭다. 중국·유럽인과 현지인 승객들이 많았고, 한국인 단체 여행객도 가끔 보였다.

열차 중간 미니 바(Mini Bar)의 판매원은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있다. 철도건설 능력이 없었던 라오스 정부는 고속철의 운영권 자체를 중국 회사에 전부 넘긴 듯이 보였다. 라오스를 관통하는 고속철도는 획기적인 인적·물적 교류로 현지인의 의식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세계문화유산 도시의 왕궁박물관

고속열차가 방비엥(VangVieng)을 지나면서 험준한 산악지형이 나타났다. 거의 2시간을 달린 열차는 루앙프라방역에 도착했다. 다인승 택시로 시내까지 30분 걸렸지만, 택시비는 한화 2500원 수준.

루앙프라방은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기 직전까지 왕정 수도의 면면을 이어온 고도(古都)이다. 199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 옆에는 메콩강이 흘러 자연경관까지 수려하다. 2008년 관광객 대상 설문 조사에서 루앙프라방은 세계 615개 관광지 중 가장 인기 있는 10대 명소로 뽑히기도 했다.

프랑스 식민지 초기인 1904년에 건설된 왕궁이 현재는 국립박물관이다. 이곳에는 라오스 역사 유물과 왕정 시절의 보물·가구·의상·선물 등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정원에는 1560년 라오스 건축기법으로 건립했다는 황금 사원 ‘왓 시엥 통’이 있다. 건물 벽은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지붕은 날아갈 듯한 형상이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내전의 상흔을 알려주는 전쟁박물관은 관광객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라오스 국가사업 ‘불발탄’ 제거 작업

루앙프라방 전쟁박물관 입구에는 대형 폭탄이 줄지어 서 있다. 엄청난 관광객이 시내 도로에 넘쳐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라오스 불발탄 처리반도 같은 건물에 있었다. 한때 미국·영국·호주 등 다양한 국가의 자원봉사자들이 불발탄 제거 작업에 동참했지만, 현재는 라오스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단다.

전시관에는 이 사업을 지원한 나라들의 국기가 붙어 있다. 수십 개국의 깃발 중 당당하게 태극기가 가장 중앙에 있었다. 전시실은 내전 발발, 호치민 통로, 미군 폭격, 불발탄 분포지역 등 20여 년의 라오스 전쟁이 시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또한, 불발탄 위험성에 노출된 시골 아이들의 끔찍한 사고 영상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여덟 살 타오는 마을 대나무숲에서 야구공 형태의 금속 물체를 발견했다. 신기한 이 공은 아이들의 좋은 장난감이었다. 미군 전투기에서 떨어졌던 집속탄 알맹이를 아이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불발탄 폭발로 그 자리에서 친구 두 명이 숨지고 타오는 오른쪽 눈과 팔을 잃었다.”

자기 손으로 글씨를 쓰고 싶다는 이 아이의 증언은 라오스의 전쟁 후유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발탄 작업이 라오스에서 완료되기까지는 2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단다.


전쟁에 얽힌 슬픈 운명의 소수민족 ‘몽’족

루앙프라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수민족 ‘몽’족 마을이 있다. 해발 1000m의 고지대에 사는 이들은 베트남전쟁 중 미국 편에 섰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은 몽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만 명의 몽족이 미 중앙정보국(CIA) 지원 아래 라오스 왕정군 편에 서서 싸웠다. 추락한 미군 항공기의 조종사 구출, 적 정보 수집 및 물자 파괴, 폭격 유도, 적 보급로 차단 등 그들의 역할은 실로 눈부셨다.

이 전쟁에서 몽족은 1만8000명의 군인과 5만 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과 관계없이 1975년 12월, 라오스는 공산화됐다. 미군이 철수하자, 몽족은 대량학살 위기에 처해 졌다. 당시 약 30만 명의 왕정파가 인접국 태국과 외국으로 탈출했는데, 15만 명이 몽족이었다. 억척스러운 이 민족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공산군을 상대로 혈투를 벌였고, 한동안 이 게릴라군은 라오스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다.

현재 이 민족은 중국·베트남·라오스·미국 등 전 세계에 700만 정도 흩어져 있다. 전쟁이 끝나고 50여 년이 흐른 지금, 몽족은 옛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라오스 소수민족으로 오늘날까지도 주로 산악지역에서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필자 신종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6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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