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입력 2025. 05. 13   15:18
업데이트 2025. 05. 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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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환 상사 육군32보병사단 군사경찰대
유수환 상사 육군32보병사단 군사경찰대

 


‘행복한 삶의 밑거름’ ‘사람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인간성’…. 3일간 인성교육을 마친 뒤 병사들이 ‘인성이란 무엇인가요?’ 설문지 문항에 적어 낸 답변들이다. 설문지는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가득했다. 마치 ‘인성’이 그들에게 보물인 듯 정성스럽게 쓴 모습이 대견했다. 문득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군인은 전투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군대에서 이런 교육이 왜 필요하지?’ 이관섭 인성교관님을 만나기 전까지 가졌던 생각이다.

2024년 11월, 오랜만에 군복과 업무에서 벗어나 인성교육에 참여했다. 입교 전 교관님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36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인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교관님의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답을 찾기 위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내가 어떤 사람 같아?”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랄까?” “그건 네가 코다(CODA)라서 그럴 거야.” 코다는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비농인 자녀를 뜻하는 단어다.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다. 말을 배우기 전 부모님의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이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다. 아니, 외면했다. 군인이 된 지 15년이 흘렀다. 어느새 상대의 표정, 분위기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이 능력이 철저히 독립했다고 믿었던 가정환경 덕분이었다니. 관련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외면했던 과거와 마주했다.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이었다. 많이 울고 나니 후련했고, 나 자신을 인정하게 됐다. 발표 차례가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고백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마지막엔 수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했다. 그 순간 교관님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음의 문이 열리는 미세한 떨림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마음의 울림이라고 부른다.

2025년 2월, 집중인성교육주간 때 병사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먼저 나 자신을 보여 줬다. 그리고 하루하루 변화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느꼈다. 1일 차, 신중하게 질문을 적어 내려가던 병사들. 2일 차, ‘아 그렇구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 3일 차,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길 바라는 모습. 한 병사가 “힘든 시기였는데 활동을 하다 보니 군 생활 중 마음의 ‘쉼’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때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인성교육이란 결국 나와 너, 우리의 마음을 알아보고 서로에게 쉼을 주는 게 아닐까? 강연이 끝난 뒤 장병들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인성교육은 택배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문 앞에 인성교육이라는 택배를 둘 뿐,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이에게 택배를 배달하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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