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을 말하다] ② 한미연합 야학 봉사

입력 2023. 02. 03   16:52
업데이트 2023. 08. 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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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한미동맹을 말하다
② 한미연합 야학 봉사…시누크 헬기 조종사가 영어회화 하는 특별한 수업

평택 캠프 험프리스 인근 교회서 교육봉사 

소외 아이들 위한 재능기부 ‘한마음 한뜻’
주한미군·카투사 장병들 선생님으로 변신
지하 공부방에서 첫 시작…6년째 이어져

 
한미 함께하니 성적 향상…입소문 자자
목사 “소외 아이들에게 배움 기회 제공”
장병 “멘토 역할 하며 오히려 많이 배워”
학생 “어려운 사람들 도와 보답하고파”

 

길위의교회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야학 봉사활동이 펼쳐진다. 6년째 교회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현재 군이 미 2사단 앤더슨 소령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모습과 카투사 장병이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수학 수업을 하는 모습.
길위의교회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야학 봉사활동이 펼쳐진다. 6년째 교회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현재 군이 미 2사단 앤더슨 소령에게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모습과 카투사 장병이 초등학생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수학 수업을 하는 모습.

 

곧 6학년이 되는 초등학생이 카투사와 함께 5학년 수학 ‘평균과 가능성’ 단원을 복습하고 있다.
곧 6학년이 되는 초등학생이 카투사와 함께 5학년 수학 ‘평균과 가능성’ 단원을 복습하고 있다.

 

카투사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모의고사 풀이를 해 주고 있다.
카투사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모의고사 풀이를 해 주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미군부대 근처 대로변에는 작은 교회가 있다. 예배당도, 십자가도 없는 이곳은 교회보다는 ‘잘 가르치는 공부방’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매일 저녁 요일별로 미군이 가르치는 영어회화와 카투사(KATUSA·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사)의 일대일 맞춤 과외가 이뤄지면서다. 하지만 야학(夜學) 교실엔 아무나 올 수 없다. 상대적으로 학습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만 열려 있다. 연중기획 ‘한미동맹을 말하다’ 두 번째 주인공은 6년째 이어오고 있는 한미연합 야학 봉사활동이다. 글=김해령/사진=조종원 기자 

초등생부터 수험생까지 체계적 학습

평택 캠프 험프리스 여러 출입구 중 ‘K6 사거리’ 쪽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50m를 걸어가면 컨테이너 여러 개를 쌓아 개조해 만든 ‘길위의교회’가 나온다. 간판조차 없는 교회지만, 평일 저녁이면 불이 환하게 켜진다. 일대일 과외가 예정된 오후 5시 30분,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자를 반겼다. 아이들은 미군과 카투사 장병들이 오기 전 저녁식사가 한창이었다. 이날 식사는 미 2사단 2항공여단 3일반항공지원대대 군종참모(목사) 조의석 대위가 준비했다. 한국계 미군인 조 대위는 부대 목사지만, 길위의교회를 오가며 여러 활동을 돕고 있다.

잠시 후 황토색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카투사 15명이 도착했다. 장병들은 간단히 요기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은 1 대 1, 초등학생은 2 대 1로 수업이 진행됐다. 가장 고학년인 김소정 양과 이현재 군은 올해 고3이 된다. 둘 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길위의교회 수업을 들었고, 수험생이 됐다. 제일 중요한 시기인 이들의 멘토는 공교롭게도 장병 중 제일 막내인 권순용 일병과 최선임인 민재성 병장이 맡고 있다. 권 일병은 입대 전 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민 병장은 1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쌓은 노하우를 현재 군에게 쏟아붓고 있다. 

소정 양이 이날 공부한 내용은 생명과학Ⅰ 과목 중 ‘골격근의 수축과정’. 권 일병은 이와 관련된 대학수학능력시험 기출문제를 능숙하게 풀이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권 일병은 “이왕 도와줄 거 학생도 배움에 뜻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열정이 뜨거워 놀랐다”며 “소정이와 여러 학생의 성적 향상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교육에 임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알파벳도 몰랐는데 이젠 전교 4등으로

현재 군은 수학 기본 개념인 ‘확률과 통계’를 공부했다. 시간을 쪼개 영어회화를 배우기도 한다. 현재 군을 위한 원어민 선생님도 등장했다. 3일반항공지원대대 CH-47 시누크 헬기 조종사 앤더슨 소령이 주인공이다. 그는 주로 화요일에 교회를 찾는다.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 탁구 등 간단한 레저활동과 놀이를 하며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앤더슨 소령은 “징병된 병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할애해 남을 돕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나 역시 한국에 단순히 머무는 게 아닌 돕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야학 봉사에 동참한 계기를 설명했다.

현재 군은 길위의교회를 세간에 널리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알파벳도 읽지 못했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중학교 3학년 땐 전교 4등에 올랐고, 교육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장래 희망이 특수학교 교사라는 현재 군은 “목사님께 ‘흘려보낸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받은 도움을 흘려보내 다른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쓰라는 말”이라며 “선생님이 전해 주는 지식을 교육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 전해 줘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군이 언급한 목사는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다. 한미연합 야학 봉사활동은 현재 군의 사연이 알려지며 한때 자신의 자녀를 받아 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교회에 헌금 또는 기부금을 낼 테니 과외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 목사는 모든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순수한 목적의 봉사활동이 퇴색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 지원금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길위의교회 운영자금은 정 목사가 낮에 캠프 험프리스에서 청소를 하며 받는 보수로 충당하고 있다.

정 목사는 “카투사 후배 장병 6명과 함께 지하에서 시작한 공부방이 나름 2층짜리 건물로 커졌다”며 “돈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공부를 가르쳐 주면 가난을 끊을 수 있다’는 신념에 어긋날 것 같아 소외계층 아이들만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한편에선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한글수업이 진행됐다. 이들의 선생님 김윤현 병장은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다녀 한국의 입시 과외보다는 기초학습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한다. “하은이가 오늘 읽은 책 내용을 준희에게 설명해 줘. 준희는 이것을 짧은 글로 요약해 써 보는 거야.” 김 병장은 다문화가정의 아베니르 하은 양과 놀이를 하듯 수업했다. 하은 양은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수업이 재밌다”며 “받아쓰기로 칭찬도 받았다”며 늘어난 한글 실력을 자랑했다.

배움 끊이지 않도록…‘멘토 대물림’

길위의교회 선생님들은 주로 카투사여서 자주 바뀌는 편이다. 미군 장병들도 일정 기간 이후 한국을 떠나기 마련이다. 이에 장병들은 야학 봉사활동이 중단되지 않게 ‘작업’을 벌인다. 전역을 앞둔 카투사 병사가 있으면, 전역 전 새 구성원을 뽑아 인수인계하는 방식이다. 미군들은 새로 한국에 전입 온 장병들에게 교회 방문을 추천한다. 아이들의 배움이 끊이지 않도록 멘토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전역을 약 2개월 앞둔 민 병장은 권 일병에게 ‘고3 수업’을 맡길 방침이다. 민 병장은 “길위의교회에서의 활동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배울 점이 참 많다”며 “후임들도 야학 봉사뿐만 아니라 홀몸 어르신 위문 등에 참여,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오는 4월 전역하는 김 병장은 “선임을 따라 이곳에 처음 왔을 땐 (카투사가) 3~4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문화처럼 바뀌어 15명까지 늘어났다. 이 같은 전통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희망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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