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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가파른 능선 위 천혜의 요새

기사입력 2021. 04. 12   17:19 입력 2021. 04. 13   07: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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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의 가장 큰 규모의 3대 산성 중 하나


전라남도 담양의 금성산성은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금성산성은 깊은 절벽과 바위 등 자연의 산세를 활용해 쌓은 곳이 많아 천혜의 요새로 부족함이 없다.


금성산성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흔한 ‘포곡식’ 산성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계단식으로 쌓아 올라간 성벽이 있는가 하면 S자 형으로 구성된 특이한 옹성 형태, 두 개의 남문 등 기존 산성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흥미를 자아낸다. 금성면의 너른 평야와 담양호가 또렷하게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금성산성의 성곽길. 주말 등산의 산행코스로 추천한다. ■ 편집 = 이경하 기자


금성산성의 남문인 충용문에서 외남문인 보국문이 내려다 보인다. 적군의 공격 상황이 한눈에 보여 천혜의 요새 같은 느낌이다.


■ 남문과 북문 등 3곳 누각까지 복원


금성산성은 연대봉, 운대봉, 시루봉, 노적봉,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내성과 외성으로 성벽을 쌓은, 길이 7,345m의 포곡식 산성이다. 산행으로 한 바퀴 도는 데만 4~5시간이 걸린다. 이 중 내성은 859m로 주 출입문인 남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성곽의 높이는 3~5m 이내로 그리 높지 않지만, 경사면이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 거대한 바위 등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곳이 많아 상당히 높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금성산성이 축조된 것은 언제일까. 산성 초입에 세워진 푯말에서는 “1895년에 제작된 금성진도(金城鎭圖)를 보면 내성에는 동헌, 대장청, 내아 등 관청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며 “산성의 축조 시기는 고려 우왕 6년(1380)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주변이 절벽이라 접근이 어려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혈전이 벌어져 각종 시설이 불타고 동·서·남·북문의 터만 남아 있다”며 “6·25전쟁 시에는 성 안에 있던 보국사(輔國寺)가 불에 타 현재는 주춧돌만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알리듯 금성산성 내에는 동학농민혁명군 전적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며 1908년 호남창의회맹소 본진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전투를 치른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푯말도 볼 수 있다. 터만 남아 있던 금성산성에 대한 복원은 1995년부터 시작, 동·서·남·북 모든 문과 허물어진 성곽 등 많은 부분을 복원했다.

이 중 외남문인 보국문(輔國門)과 남문인 충용문(忠勇門), 북문 등 3곳은 누각까지 복원했다.

금성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북문. 밑으로 계단식 성벽을 지나 내려가면 서문과 이어진다.
금성산성의 외성에는 4개소의 문루가 있었는데, 이곳은 북문이 있던 자리이다. 북쪽에 치성이 있고 운대봉과 연대봉을 지나 동문과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서문과 연결되는데,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고 급경사를 이뤄 성곽을 단이 지게 쌓았다.


■ 각종 건물이 있었던 내성


금성산성은 외남문이자 주 출입문으로 쓰이고 있는 보국문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금성산성 입구 주차장에서 40분 정도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보국문은 금성산성의 남문인 충용문에서 길게 뻗어 나와 있어 출입문과 망루, 전초기지와 치성을 겸하는 복합적인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세를 잘 활용한 이 같은 모습은 다른 산성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이어 보국문을 지나 조금만 오르면 본격적인 성으로 진입하는 충용문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보국문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여 그 옛날 치열했던 격전의 당시 전투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충용문 또한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문루까지 잘 복원돼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이 일품이어서 금성산성을 대표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곳 충용문에서 성 안쪽으로 가다 왼쪽 산길로 오르다 보면 내성을 만날 수 있다. 내성은 동쪽 외곽성과 붙어 축조돼 있는데 이곳에는 조선 후기 당시의 문헌에 동헌과 관사인 내아, 화약고 등 각종 건물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건물들은 1900년도 초 일본군에 의해 모두 불타고 없어져 터만 남아 있다.

북문지와 서문지 사이의 성곽. 멀리 아래로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담양호가 보인다.


■ 서문지, 이국적이고 독특한 성곽 모습 감탄


내성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동문지를 만날 수 있다. 복원된 동문은 길고 좁게 휘어진 옹성뿐만 아니라 몇 개의 단으로 쌓인 보축성벽 등 독특한 성문 형태를 갖췄다.

옹성 끝부분에는 긴 네모꼴의 망대를 갖추고 있는데 다른 문지의 성벽에 비해 높은 편이다. 문루까지 복원된 북문지는 금성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급한 경사길인 성문의 좌우는 유사시 성 내부의 관군 퇴로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문은 서문과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급경사가 심해 오르내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서문은 금성산성의 서쪽 계곡 바로 옆에 있는데 주변 경관이 흡사 남미의 오래된 성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이곳 축단 위쪽에 주초석이 일부 드러나 있어 다른 문과 같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문 쪽에서 가장 산행하기 힘들고 어려운 쪽에 위치해 산행하며 접하기 힘들지만, 이국적이고 독특하며 멋진 형태의 성곽을 감상하고 싶다면 꼭 들리기를 권한다.

이와 함께 충용문에서 노적봉과 철마봉을 지나 서문에 이르는 성곽길도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4대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던 서문






이경하 기자 < kyung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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