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견장일기] 가평전투 현장에서

입력 2021. 02. 18   16:07
업데이트 2021. 02. 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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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육군66사단 땅벌부대 1대대장·중령
김경태 육군66사단 땅벌부대 1대대장·중령

올해는 가평전투 70주년이다. 가평전투는 중공군의 제5차 4월 공세 시 캐나다군, 호주군, 영국군, 뉴질랜드군이 배속된 영연방 제27여단이 가평천 일대에서 자신들보다 5배나 많은 중공군 118사단의 공세를 저지하고 유엔군이 반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주요한 전투다.

매년 4월이 되면 각국의 참전용사들이 방문해 전사한 동료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해 왔는데,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행사 규모를 줄여 진행했다.

행사가 축소되자 캐나다 국방무관은 직접 전투 현장을 둘러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며 우리 부대에 안내를 요청했다. 그분들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안내자료를 작성하고 과거 사진을 수집했다. 또한 현장 지형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 능선과 고지를 넘나들었고, 당시 전투 흔적들을 발견하면 해당 지점을 표시해 두었다.

하지만 70여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탓에 산길은매우 험했고, 경사가 심한 데다 연이은 강설로 길이 미끄러워 지형정찰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고민이 깊어졌다.

안내 당일, 캐나다 무관에게 이러한 제한사항을 설명하며 지형정찰의 어려움에 대해 정중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면서 캐나다 참전용사들이 목숨 바쳐 지켜냈던 곳을 직접 밟아보기를 희망해 예정대로 안내를 진행했다. 캐나다 전적기념비에서 숭고한 넋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본격적으로 지형정찰을 시작했다.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느라 손에 상처가 날 정도였지만, 참전용사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낙엽으로 뒤덮여 있는 진지를 손으로 파내고 직접 들어가 보기도 했다.

고지에 오르니 당시 캐나다군이 수많은 무기와 장비를 험준한 작전지역까지 들고 나르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고, 귓가에 선배 전우들의 함성이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직접 격전지를 밟아 본 소감을 캐나다 무관과 나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들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해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선배 전우들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캐나다 무관은 복귀 후 고국의 선배 전우들이 싸웠던 길을 따라 걸어보는 기회를 마련해 줘 감사하고, 양국 군인들이 함께 묵념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대규모 연합훈련이나 군사적 교류도 국가 간 유대 형성에 중요하지만, 이 같은 ‘작은 만남’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엔군의 희생에 감사하고 작은 감동을 주는 일을 통해 우리가 받은 큰 도움을 조금씩 갚아가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험난한 고지를 오르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용감하게 싸운 수많은 국가의 선배 전우들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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