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내전 전장, 물리적 공간 넘어 ‘온라인 확전’

입력 2020. 12. 31   17:35
업데이트 2021. 01. 1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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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획은 육상·해상·공중 그리고 우주와 함께 제5의 전장으로 떠오른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전쟁’의 실제적 위협에 대해 살피고자 마련됐다. 특히 민간 해커들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일으키는 해킹 사건이 아닌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정치·군사적 목적의 사이버 전쟁 사례들을 그 배경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군사적으로 ‘전쟁(War)’과 ‘전(Warfare)’이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목과 내용 모두에 ‘사이버 전쟁(Cyber War)’만을 사용한다. <편집자>


<1회> 코소보: 사이버 전쟁의 서막 (상) 


1차 세계대전 촉발 ‘유럽의 화약고’… 민족·종교·역사적 문제 얽혀
유고의 알바니아 독립운동 과열진압에 美·나토 78일간 공습 나서
인터넷 여론전 치열… 세르비아 해커 조직 ‘블랙핸드’ 이름 떨쳐


세르비아왕국의 비밀결사 ‘블랙핸드’의 인장(seal). 위키피디아
세르비아왕국의 비밀결사 ‘블랙핸드’의 인장(seal). 위키피디아

발칸반도는 유럽 남동부에 위치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발칸반도는 민족·종교·역사적 문제로 인해 유럽의 화약고로 불려왔다. 

제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세르비아 왕국의 육군 장교가 결성한 비밀 결사 조직인 ‘블랙핸드(Black Hand·흑수단) 소속 청년이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전쟁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전력에 걸맞게 이번에는 발칸반도의 코소보가 사이버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알바니아계 주민 독립 추진

대한민국 10분의 1 면적의 코소보는 발칸반도의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14세기 중반까지 슬라브족이 세운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다. 14세기 말부터는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 전체와 함께 이곳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코소보 지역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인들은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터전을 떠났다. 그 지역에는 이슬람을 믿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45년 이후부터는 슬라브족 국가들의 연합인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유고)이 다시 코소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자치권 확보, 더 나아가 독립을 추진했다. 이러한 서로 간의 갈등과 긴장이 1980년부터 서서히 격화되다 실제적인 물리적 충돌로 이어진 것이 1999년 발발한 코소보 전쟁이었다.


발칸반도와 코소보. 사진=구글어스 캡처
발칸반도와 코소보. 사진=구글어스 캡처


알바니아계 분리독립주의자들은 1990년대 중반 무장단체인 코소보 해방군(KLA, Kosovo Liberation Army)을 조직했다. 이 지하조직은 1998년 본격적으로 유고의 군과 경찰 등 주요 목표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많은 무고한 알바니아계 시민들이 유고가 압도적인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KLA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그래서 미국과 나토가 알바니아 측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유고와의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유고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미국과 나토는 유고에 대해 78일간의 공습을 실시했다.

사이버 공간으로의 전이

나토의 공습이 시작되자, 유고슬라비아와 코소보 등지에 사는 일반시민들은 인터넷을 자신들이 겪고 있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세상에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쟁 상황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나 애국주의에 깊게 몰입한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시민들은 온라인에서 코소보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리기 위한 국제여론전을 펼쳤다.


그들에게 사이버공간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악마로 묘사하는 장소, 또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전파하기 위한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코소보 문제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국제적인 웹사이트가 있다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양측의 선전물들로 넘쳐났다. 국제적 비정부기구, 인권단체, 종교시설, 여성단체 등의 웹사이트들도 예외 없이 그들의 온라인 여론 전쟁터가 되었다.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실시간으로 양측 간의 싸움이 빈번히 벌어졌다. 


유고 정부의 여론전

유고 정부 역시 인터넷을 통해 직접 여론전을 펼쳤다. 그들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나토의 공습을 비난하고, 진정한 코소보의 주인이 자신들임을 주장하는 선전물들이 게시됐다. 더욱이 유고 정부는 일반인을 직접적으로 선전 활동에 동원하기도 했다.


일반 세르비아계 유고 시민들이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언론 기관, 민간 회사, 교육 기관,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에게 나토의 폭격을 멈추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친정부적 성향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어설픈 영어로 작성된 이메일에는 나토와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내용, 유고인들의 권리보호, 선전용 카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고에서 날아온 이메일에는 단순 선전용 문구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치명적인 악성 바이러스도 첨부됐다. 이 때문에 런던 주재 IT 기업인 ‘mi2g’는 유고의 이메일 공격이 나토의 군사 지휘 및 통제 네트워크뿐 아니라 서방의 경제 기반시설을 위협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코소보 전쟁 동안 많은 일반 미국인들의 이메일함은 유고에서 온 수천 통이 넘는 스팸 이메일로 넘쳐났다. 얼마나 짜증 났던지 당시 미국인들이 이를 ‘유고 스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해커에 의해 위·변조 공격을 받은 웹사이트. 필자 제공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해커에 의해 위·변조 공격을 받은 웹사이트. 필자 제공


전문적 해커 집단의 전쟁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에 의한 사이버 전쟁도 있었다. 조국 수호의 의무를 느낀 많은 세르비아계 유고 사람들이 적의 공습작전을 무력화 또는 중지시키고자 했다. 재래식 군사력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그들 중 일부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미국과 나토에 대항하기로 했다. 세르비아계 유고 컴퓨터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미국과 나토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작은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나토의 웹사이트와 서버, 그리고 나토에 가입한 국가들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해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해커 조직이 사이버 세르비아 ‘블랙핸드’였다. 한 온라인 해커 조직이 사라예보 사건을 주도한 조직의 명칭을 따라 자신들의 이름을 지었다. 사이버 공격은 1차적으로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 블랙핸드는 알바니아의 웹사이트들에 위협적인 선전 문구를 퍼뜨렸다. 그리고 알바니아인들이 온라인에 써놓은 모든 내용을 거짓으로 규정하고 그것들을 지워나갔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해커에 의해 위·변조 공격을 받은 웹사이트. 필자 제공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해커에 의해 위·변조 공격을 받은 웹사이트. 필자 제공


대표적으로 사이버 블랙핸드는 알바니아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kosova.com’과 ‘zik.com’을 공격해 웹사이트를 마비 및 위·변조시켰다. zik.com의 경우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뉴스 포털 사이트였기에 그 효과가 강력했다. 사이버 블랙핸드는 또한 알바니아계 무장조직인 KLA의 공식 웹사이트에 대해서도 위·변조 공격(defacement attack) 웹사이트에 침투하여 홈페이지의 내용을 훼손하거나 도메인 IP주소 등을 변경하는 행위를 실시해 성공을 거두었다. 


사이버 전쟁의 확전

그런데 사이버 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와 중국 해커들이 유고를 돕기 위해 합류하면서 전통적 대결구도인 미국·나토 대 러시아·중국의 구도가 사이버공간에서도 만들어졌다. (다음 회에 계속)


■ 필자 

    박동휘 (육군소령·육군3사관학교 교수)



박동휘 소령은 육군사관학교 61기로 졸업·임관한 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데 이어 미국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시애틀 소재)에서 사이버전쟁과 전략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수위했다. 현재는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과 학과장으로 역사, 전쟁사, 군사전략 등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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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2021년 1월 11일자

러·중 해커 사이버전 가담, 무방비 美·나토에 타격  ☞ 지면 PDF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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