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 육군 예비역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유해 발굴이 재개된다는 기사를 읽었다며, 이에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DMZ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고 사촌은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해 이 사업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발급받은 면허증과 등록된 차를 가지고 있어서 교통편 및 식사 모두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부분에선 어떤 결의마저 느껴졌다. 아쉽게도 직접 발굴 작업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세월과 국경을 넘은 전우애에 경의를 표한다는 답장으로 나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달 중순, 2020년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사업이 종료됐다. 올해 군은 이 일대에서 143구로 추정되는 유해 330점과 유품 1만800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6명은 국군 전사자로 신원이 확인됐다고 한다. 당초 DMZ 유해발굴은 남북한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지만, 북측이 호응하지 않아 2년째 우리 단독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국방부는 북한의 호응이 없더라도 발굴 작업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며, 내년 작업은 3월쯤 재개될 예정이다.
붓으로 조심스럽게 유골에서 흙을 털어내는 병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잊힌 듯 지내온 시간이 70여 년.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봉송될 때마다 공개되는 흑백사진에는 늘 앳되고 맑은 청년이 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빠, 남편, 또 동료였을 이들은 그간 멀지 않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함께 발견되는 유품들은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총알 자국으로 보이는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철모, 총탄으로 너덜너덜해진 수통, 녹슨 숟가락. 언제가 생의 마지막일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신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전사자가 거기 남아 있다. 휴전 직전까지 격렬한 고지전이 전개됐던 화살머리고지, 그 전투에 참여했던 우리 군과 미군, 프랑스군 300여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DMZ 전역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전사자 유해 1만여 구가 묻혀 있는 걸로 추정된다.
어릴 때 고무줄 놀이를 하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문득 떠올라 찾아 보니 어린아이들이 즐겨 불렀다고 하기에는 가사가 너무나 참혹했다. ‘전우여 잘자라’라는 이 곡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가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수십 년 전 그때는 뜻 모를 노래를 참 씩씩하게도 부르며 뛰고 또 뛰었다. 성인이 됐지만 오늘의 나는 과연 그 통렬한 아픔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전쟁과 평화의 이면에 있는 정치·이념의 거대 담론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다시는 그 누구도 역사 속에서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DMZ 유해발굴 작업을 멀리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적막이 흐르는 가파른 산비탈에서 무거운 방탄복을 입은 채 지뢰를 제거하고 유해를 발굴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될 것 같았다. 올해는 코로나19와 긴 장마, 태풍 등으로 그 작업은 한층 더 어려웠을 것이다. 마지막 한 분까지 조국의 품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군의 다짐, 장병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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