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알아야 대한민국 지킬 수 있어”

입력 2011. 01. 2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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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21'… 육군25사단, 김신조 목사 초빙 정신교육


김신조 목사가 30명의 무장공비와 함께 1·21사태 당시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침투했던 지점에 서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43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의 궁극적 목적은 남한의 공산화입니다.”

 1968년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이 땅을 밟았던 ‘무장공비’ 김신조(70) 서울성락교회 목사는 자신이 침투했던 경로를 돌아보는 동안 함께한 장병들에게 북한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군25사단은 지난 21일 무장공비 31명에 의한 청와대 기습작전이 실패로 끝난 1·21사태 43주년을 맞아 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 김 목사를 초청, 장병 100여 명과 함께 ‘김신조 루트’를 행군하며 안보의식을 함양하는 ‘리멤버(Remember)1·21’ 정신교육을 했다.

 행군에 앞서 이날 오전 열린 안보강연에서 김 목사는 부대 강당에 모인 730명의 장병에게 1·21 청와대 습격 당시 침투준비와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43년 전 나는 여러분의 적”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한 김 목사는 “그때 내가 성공했으면 여러분은 지금의 북한 주민처럼 독재정권에 목숨 바치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침투직전 마지막 훈련으로 북한 노농적위대 건물을 습격해 현장에 있던 북한 주민들을 실제로 사살한 일을 소개하며, 북한 정권의 무자비한 잔인성을 알렸다.

 오후에 이어진 현장답사 행군에서는 공비들이 철조망을 뚫고 들어온 장소를 재연한 ‘1·21침투로 안보견학장’과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 구 ‘석포초소’, 민간인 통제선을 넘어 서울로의 빠른 침투를 시작했던 ‘파평산’ 등을 돌아봤다.

 먼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500m 남쪽에 위치한 안보견학장에 도착한 김 목사는 68년 1월 17일 우리 측 철조망을 통과하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침투 장면을 묘사한 마네킹 앞에 선 그는 “당시 북한은 대한민국의 전방 경계망을 주도면밀하게 연구해 들키지 않고 침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 놓고 있었다”고 말한 뒤 “반면 우리나라는 북한을 잘 몰라서, 특수부대의 이동 능력을 과소평가해 이미 통과한 지역에 차단망을 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김 목사는 장병들에게 “철조망·벙커·지뢰 등의 차단 장비들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며 “제일 중요한 것은 장비를 운용하는 군인의 정신무장”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흰 모포를 덮고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침투한 기슭을 찾은 김 목사는 “20㎏이 넘는 장비를 짊어진 장정들이 얼음이 깨지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12m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 김 목사는 북한군이 특수부대 요원을 선발할 때 1㎞ 밖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를 식별하고, 흔적이 발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변까지도 한동안 참을 수 있는 엄청난 인내력 등 인간 한계를 넘는 조건을 갖춘 인원들만 고른다며 “이러한 능력을 가진 북한 특수부대 20만 명이 여러분의 목숨과 조국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서울까지 한시간에 12㎞씩 고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파평산을 장병들과 함께 걷던 김 목사는 작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됐던 나무꾼 우씨 4형제와의 조우에 대해 “이들을 소리 없이 제거할 수도 있었지만 꽁꽁 언 땅을 파고 묻을 자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왔으며 이제 곧 세상이 바뀌게 되니 우리를 믿고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면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산에서 내려가자마자 이 사람들이 경찰에 알렸다”며 “그들 때문에 작전은 실패했지만 덕분에 나는 자유를 알게 됐고 내 자손들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김 목사와 함께 침투 현장들을 둘러본 25사단 최동규 이병은 “안일한 마음으로 군 복무하면 언제 어떻게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밤이나 낮이나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경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김용하 병장은 “1·21사태로 예비군이 조직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비군이 되더라도 현역 때와 다름없는 조국 수호의 마음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교육훈련을 마련한 25사단은 향후 매년마다 1·21사태를 상기하는 다양한 행사를 할 계획이다. 신동만(소장) 25사단장은 “이 기간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혹한기 전방경계 훈련과 사격대회, 정신교육 등을 실시해 장병들의 정신무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김신조 서울성락교회 목사-“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북한정권이 틀린 증거”

김신조 목사가 1·21 침투로 안보견학장에서 우리 측 철조망을 통과하던 공비
들의 상황을 육군25사단 장병에게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김태형 기자

리멤버 1·21 정신교육을 위해 부대를 찾은 김신조 목사에게 ‘우리나라’는 이미 대한민국이었다. 북한의 독재정권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그를 만나봤다.

 -당시 침투로였던 ‘김신조 루트’는 자주 돌아보는지?

 “전방 보안에 대한 자문을 위해 책임지역에 침투 경로가 포함된 부대를 종종 방문하고 안보공원 조성 준비단계에서 돌아본 일은 있지만 장병들과 함께 침투경로를 살펴보며 설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벌어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의견은?

 “북한의 남한 공산화 전략은 크게 ‘폭력’과 ‘비폭력’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난해 있었던 북한의 군사 도발은 대표적인 폭력전략이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도발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높아졌듯이 폭력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진정 무서운 것은 ‘하나의 민족’이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에 대한 경계를 풀고, 각종 친북 세력을 조성하게 만드는 비폭력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적화하러 왔던 공비가 북한 정권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바로 대한민국이 맞고 북한 정권이 틀렸다는 증거다. 대한민국에서는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의 목을 따기 위해 왔다는 원수의 목숨도 소중히 하는 반면, 북한 정권은 자기 백성인 인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빼앗는다. 개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 주는 나라와 독재자의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을 개만도 못하게 대하는 나라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명백하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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