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6.25전쟁 71주년 특집] 무기의 대결, 또 다른 전쟁이었다

맹수열

입력 2021. 06. 24   16:38
업데이트 2021. 06. 24   17:56
0 댓글


국군 훈련병들이 신병훈련소에서 M1 개런드 소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받고 있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국군 훈련병들이 신병훈련소에서 M1 개런드 소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받고 있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상상해보자. 전략·전술을 배제한 무기만의 싸움…. 무기체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 직한 상황이다.

현대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전쟁이었던 6·25전쟁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진영은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다. 세계 초강대국들이 모두 참여한 만큼 6·25에는 앞선 제1·2차 세계대전에서 검증된 무기는 물론 새로 개발된 무기들이 총동원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6·25전쟁 주요 무기』는 ‘무기의 경연장’이라고 불렸던 당시 두 진영의 무기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 소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책에 담긴 유엔군 114종, 공산군 73종의 무기 가운데 지면의 제약에 따라 소총, 전차, 전투기 등 지상·항공 주요 무기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항공모함을 비롯해 유엔군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한 해상 무기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생략한다. 맹수열 기자


소총
육군 지상전서
주력 개인화기

육군이 중심이 된 지상전에서 거의 모든 장병은 소총을 지급받았다. 이 가운데 M1 개런드 소총과 모신-나강 M1891·1930 소총은 유엔군과 공산군의 주력 개인화기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흔히 ‘M1’으로 불리는 M1 개런드 소총은 1938년 미 육군이 채용한 뒤 500만 정 이상 생산될 만큼 우수한 성능을 자랑했다. 전쟁 당시에는 국군과 미군은 물론 영연방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전국이 개인화기로 사용했다.

M1 개런드 소총은 미 육군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민간 기술자로 근무하던 존 개런드가 개발한 무기다. 최초의 반자동 소총인 M1 개런드 소총은 4.31㎏ 무게에 8발이 들어가는 탄창이 달렸다. 총구에는 M7 총류탄발사기를 장착할 수 있다. 연사속도는 분당 40발이며 유효사거리는 549m였다. M1 개런드 소총은 저격용으로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대검을 장착하면 백병전에서도 탁월한 성능을 보인 전천후 무기였다.

모신-나강 소총은 전쟁 당시 북한군 보병의 제식 소총이었다. 러시아군 세르게이 모신 대위가 설계해 1891년 러시아군이 제식으로 사용한 모신 소총은 이후 총신 길이를 줄이고 탄창 구조를 변경하는 등 개량을 거쳐 M1891·1930이라는 제식명이 붙었다. 특히 1930년에는 벨기에 총기 설계자 레온 나강이 제출한 시제품 요소가 개량에 반영되며 모신-나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 보안대원 복장을 착용하고 모신 소총을 든 한국인 모델. 1948년 4월 미군이 적성장비 교육용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출처  RG111, National Archives
북한 보안대원 복장을 착용하고 모신 소총을 든 한국인 모델. 1948년 4월 미군이 적성장비 교육용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출처 RG111, National Archives

북한군은 보병 등 전투병과에 모신-나강 M1891·1930 소총을 지급하고 통신·의무 등 비전투 병과에는 모신 M1938·1944 소총을 보급했다. 북한군 소총수들은 평균 100발 정도의 탄약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차
2차대전 뒤 개량
각종 전선서 활약

북한군의 T-34-85전차.  출처=RG242, National Archives
북한군의 T-34-85전차. 출처=RG242, National Archives

M46 패튼 전차는 6·25 당시 유엔군이 기갑전력의 우세를 확보할 수 있게 한 강력한 전차였다. M46 전차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기존 M26 퍼싱 전차를 개량한 무기였다. 미 육군은 M26 전차의 고질적인 기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500마력에서 810마력으로 향상하는 등 성능 개량에 나섰다. 1949년 탄생한 M46 전차는 외형은 M26 전차와 비슷했지만 강력한 엔진을 통해 최고 속력과 험지 돌파 능력을 키웠고, 주포 역시 기존 90㎜ M3에 소염기를 추가한 M3A1으로 개량했다. 1950년 8월 8일 부산에 상륙한 미 6전차대대 소속 M46 전차는 미1군단의 반격작전에 참여, 북진을 이어갔다. 같은 해 10월 18일 평양탈환작전 때 국군1사단 12연대에 배속되면서 미 6전차대대는 평양에 최초로 진입한 미군 부대가 됐다. M46 전차의 우수한 신뢰성을 높이 평가한 미군은 1950년 말까지 M46 전차 200대를 전선에 배치했다. 전선이 교착된 뒤에는 M4A3E8 전차와 더불어 미군 전차부대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김화지구 전투에서 공산군 벙커를 공격하는 미 7사단 32전차중대의 M46 패튼 전차. 출처=국사편찬위원회
김화지구 전투에서 공산군 벙커를 공격하는 미 7사단 32전차중대의 M46 패튼 전차. 출처=국사편찬위원회

공산군은 소련이 개발한 T-34-85 전차를 주력으로 활용했다. 1940년부터 양산된 T-34 전차는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의 승리에 기여했었다. 소련은 이후로도 T-34 전차를 개량, 85㎜ 전차포를 탑재한 T-34-85 전차를 운용했다. 북한군은 소련으로부터 도입한 T-34-85 전차를 주력 전차로 운용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낮은 숙련도 등으로 미국 전차들과의 교전에서 일방적인 열세에 놓이는 일이 잦았다. 중공군 역시 다수의 T-34 계열 전차를 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은 돌격하는 보병의 화력 지원 용도로 사용해 큰 활약도, 큰 손실도 없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투기
제트기 공중전 

세계 첫 맞대결

1953년 미 공군 51전투요격비행단의 F-86전투기 편대가 비행하는 모습. 출처=국사편찬위원회
1953년 미 공군 51전투요격비행단의 F-86전투기 편대가 비행하는 모습. 출처=국사편찬위원회

미 공군의 F-86 세이버 전투기와 소련 공군의 Mig-15 전투기는 6·25에서 세계 최초로 제트기 간 공중전을 벌인 라이벌이다.

F-86은 MiG-15 전투기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기종으로 불렸다. 초기 제트기 가운데 최고의 성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F-86은 직선익 날개구조였던 F-80 슈팅스타, F-84 선더제트와 달리 후퇴익(주날개 끝이 뒤를 향하는 것)을 적용했다.

6·25 초기 미군은 F-86A를 투입했다. 하지만 F-86A나 이후 도입된 F-86E가 MiG-15와의 교전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신속히 개량형인 F-86F를 투입했다.

F-86F는 F-86E에 고출력 엔진을 장착해 제트기로서의 성능이 크게 향상된 것이 특징이었다.

F-86F는 최대 상승고도가 1만5100m로 F-86A보다 약 1200m 높고 급강하 시 속도도 마하 1.11까지 낼 수 있는 등 MiG-15를 격추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과시했다.

여기에 2차 대전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미국 베테랑 조종사들의 조종술이 더해지며 MiG-15의 유일한 대항마로 활약했다.

공산군의 주력 전투기인 MiG-15는 소련 미코얀-구레비치 설계국이 제작한 1인승 제트 전투기다.

MiG-15는 유엔군의 북진에 따른 중국과 소련의 항공 작전에 활용됐다.

1950년 말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냈던 MiG-15는 주로 유엔군 공군의 주간 공습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53년 일본 오키나와 미 공군 기지에서 시험 중인 MiG-15 전투기. 출처=RG342, National Archives
1953년 일본 오키나와 미 공군 기지에서 시험 중인 MiG-15 전투기. 출처=RG342, National Archives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