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9 <2회> 번개사업 모방개발 바탕 독자개발 자신감

입력 2022. 02. 17   15:40
업데이트 2022. 02. 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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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155mm 자주포 천둥 

<2> 번개사업 모방개발 바탕 독자개발 자신감 


국방과학연구소를 상징하는 휘호석인 ‘국방의 초석’과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연구동. 국방일보DB.
국방과학연구소를 상징하는 휘호석인 ‘국방의 초석’과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연구동. 국방일보DB.

“거스 히딩크의 성공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대표팀의 역대 감독들이 한 역할이 히딩크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우리 팀이 보여준 놀라운 체력도 국력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강한 국력을 만들어 낸 기성세대의 피와 눈물과 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체력과 선전이 가능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역임한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서정욱(徐廷旭) 박사가 2003년 6월 22일 무역협회가 주최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프로젝트’ 토론회에 참석, 당시 화두로 꼽히던 히딩크의 성공 사례와 관련해 일침(一針)을 가하듯 한 말이다.

서 박사는 어떤 한 개인의 핵심적·주도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기에 앞서 현재의 훌륭한 결실이 가능하게끔 과거로부터 쌓고 다져 온 역량과 기반을 강조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 없는 결과 또한 없는 것이고 보면 오늘 우리가 ‘업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근원을 뒤돌아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K9 자주포 역시 마찬가지. K9은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국방과학기술이 10여 년에 걸쳐 빚어낸 주요 업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K9 사업에 참여한 현재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인력과 그들만의 과학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비록 ADD 주도의 개발사업이었다 할지라도 100여 개의 시제(試製)·협력업체, 그리고 대학 등의 연구소 인력이 K9 개발을 위해 힘을 모았다. 또한 1970년대 박격포 등을 모방 개발한 시기까지 더한다면 K9이 탄생하기까지에는 10년이 아닌 30여 년의 세월과 노력이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볼 때 우리나라 무기체계 역사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으로 ‘화포’를 빼놓을 수 없다. 고려 말 최무선이 흑색화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1377년에는 국가 공인 화약 ·화기 제조기구로 화통도감을 설치, 화포시대를 열었다. 특히 1555년에는 구경 130㎜, 무게 300㎏의 천자총통을 제조하는 등 오랜 화포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에 와서는 1970년대까지 우리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 낸 총포류는 하나도 없었다. 창군 이후 우리 군은 105㎜ M3 곡사포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155㎜ 곡사포·평사포, 8인치 자주·견인 곡사포, 175㎜ 무포탑형 자주곡사포 등으로 무장해 전투 종심을 증가시킬 수 있는 포병 화력을 구비했으나 대부분 미국의 군사원조(군원) 또는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인수한 것들이었다.

국산 화포가 등장한 것은 ADD 창설 이후이다. 1971년 11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추진된 ‘번개사업’에 의해 소총, 기관총, 60mm 박격포를 국산화했다. 이어 1972년 4월 을지연습 때 후방사단의 화력장비를 보강하기 위해 4.2인치 박격포, 105mm 견인곡사포 국산화가 지시되었다.

당시 105mm 곡사포 개발은 우리 기술력의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ADD는 포가 부분의 도면은 경북 왜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에서 획득했으나 그 외 구성품의 도면은 구할 수 없었다. 견본 장비를 획득한 후 포신, 주퇴복좌기를 포함한 600여 부품을 역설계하거나 기술자료(TDP·Technical Data Package)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해 도면을 설계했다.


국산화한 M114A2 견인포를 야전포병부대에 수여, 배치하는 행사가 1978년 1월 31일 육군6781부대에서 열렸다. 국방일보 DB
국산화한 M114A2 견인포를 야전포병부대에 수여, 배치하는 행사가 1978년 1월 31일 육군6781부대에서 열렸다. 국방일보 DB


1971년부터 추진된 ‘번개사업’에 의해 개발한 60㎜ 박격포(M19), 81㎜ 박격포(M29)가 시초를 이루며 4.2인치 박격포·105㎜ 견인곡사포가 그 뒤를 잇는다. 물론 견본 장비를 획득한 후 이를 역설계하거나 장비의 기술자료(TDP)를 미국으로부터 도입, 한국화해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전형적인 모방 개발 방식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ADD는 이때 미국 무기체계의 도면을 소화해 설계·제작할 수 있는 연구인력·기술력·개발 경험, 그리고 ‘독자적으로 무기체계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다.

1970년대 말 우리 군은 북한에 비해 현저히 열세에 놓여 있던 포병 능력을 보강하고자 사거리 20~30㎞ 급의 화포를 갈망하고 있었다. ADD는 여기에 발맞춰 M114A2 155㎜ 견인곡사포를 국내 모방 개발하는 한편 설계에서 양산까지 독자적인 105·155㎜ 곡사포 개발에 돌입한다. 이것이 KH178·KH179 개발사업으로 국산 화포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2> ‘번개사업 후 국내 개발 자신감’ 2002년 8월 14일자 3면


■ 용어 설명
▶ 기술 자료묶음

Technical Data Package

장비 및 체계의 개발, 생산 시험, 사용, 정비, 비 군사화, 제독 및 폐기 시 이용되는 규격, 표준, 기술 도면, 업무 분석 지침, 자료 항목 기술서, 보고서, 정비 교범, 군수 지원 분석 기록서, 전산 S/W 문서 및 시험 결과 등의 자료. 종합 군수 지원 업무의 설계 및 수행에 이용된다.
 출처 =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2017년, 국방기술품질원

▶ 역설계
Reverse Engineering

 
제품을 설계한 원본 자료가 없거나 부족할 때 현품(現品)을 분해하는 등으로 정밀 측정하거나 이화학 시험을 실시해 치수와 재질 등을 파악, 기술자료묶음을 생성하는 일.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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