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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7월 17~21일] 1950년 17연대 화령장 전투

신인호

입력 2019. 07. 16   14:28
업데이트 2019. 07. 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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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장비 열세 딛고 잇따라 쾌승
17연대 전 장병, 1계급 특진 신화


북한군은 7월 중순 소백산맥 일대에서 국군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북한군 1사단과 15사단은 보은과 문경 사이의 간격을 통해 소백산맥을 돌파하려 했다. 국군 8사단은 안동 북쪽으로 철수해 북한군의 남하를 대비하고 있는 중에 17연대도 보은 ~ 상주 사이의 25번 도로를 따라 7월 17일 상주 화령장에 도착했다. 17연대가 수도사단에서 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된 데 따른 부대 이동이었다.

선발대로 이동했던 국군 17연대 1대대는 화령장 도착 직후인 17일 아침 주민들로부터 “북한 부대가 상주방면으로 남하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날 11시 무렵,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 중인 북한군 전령을 생포하면서 주민들의 제보가 정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군 1개 대대는 이미 남하했고, 북한군 후속부대도 곧 화령장에 도착할 상황이었던 것. 1대대는 병력을 배치하고 적의 출현을 기다렸다. 마침내 이날 오후 4시쯤 북한군 15사단 48연대 예하 병력이 출현했다. 


마침 북한군은 아군이 배치된 곳의 정면인 송계국민학교와 상곡리 일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국군 17연대 1대대는 이날 19시30분 북한군이 경계병도 제대로 배치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자 기습적인 공격을 시작, 적을 격멸했다. 사살한 적만 700여 명에 달하는 대승이었다. 


18일에는 17연대 수색대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북한군 전령을 또 생포했다. 이들은 북한 15사단장이 48연대에 보내는 전령이었다. 북한군 전령을 통해 북한군 45연대가 뒤이어 이동해 온다는 첩보를 입수한 17연대는 예하 2대대를 투입해 매복에 나섰다.

19일 화령장에서 봉황산 동쪽 능선을 넘어 동관리 일대에 17연대 2대대 예하 중대들이 배치됐다. 이날 17연대 2대대는 우마차로 보급물자를 운반하는 북한군의 보급 수송대를 포착해 섬멸했다. 국군 17연대 지휘부는 아군이 북한군 전령을 여러 차례 생포하고 보급 수송대도 공격한 만큼, 북한군이 작전 노출 가능성을 고려해 공격계획을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생각보다 미련했다. 21일 17연대 2대대 배치 지역에 북한군 15사단 예하 전투부대가 또다시 진입해 왔던 것. 매복 중이던 국군 17연대 2대대는 북한군을 기습 공격해 356명을 사살하고 26명을 생포했다. 소총·박격포·기관총 등 노획한 화기류만 2.5톤 차량 3대에 가득 찰 정도의 대승이었다.


이 전투 결과 북한군은 상주지역으로의 진출이 지연돼 문경지역에서 후퇴 중이던 국군 2군단 퇴로를 차단하려던 최초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으며 국군은 낙동강전선으로 철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17연대는 4일간의 매복작전 간 거의 매일 북한군의 전령이나 포로를 잡아 완벽하게 적의 움직임을 파악한 상태에서 연속적인 매복작전에 성공했다.


이 전투로 아군은 낙동강 방어에 6일이라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됐으며, 17연대 전 장병도 1계급 특진이라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병륜 기자

■ 기사 원문 

국방일보 기획 다시쓰는 6·25전쟁 2010년 7월 14일자 <22> 국군의 지연전

■ 참고기사
국방일보 기획 금주의 전투사,
2009년 7월 13일자 '국군17연대의 완벽한 화령장 매복전'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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