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금주의전투사

<27>국군17연대의 완벽한 화령장 매복전

입력 2009. 07. 1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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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냥꾼들에게나 군인들에게나 싸움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사냥감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리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적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은밀히 설치해 놓고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이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길목에 그물을 치는 것이 중요하다.
    국군 제17연대는 6·25전쟁 내내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소방수’ 역할을 해낸 부대로 유명하다. 제17연대의 용맹성과 명성의 기초가 단단해지는 데는 화령장에서의 승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제17연대는 1950년 7월 17일과 21일 두 번에 걸쳐 화령장 주변의 상곡리와 동관리 부근에서 약 3개 대대의 적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7월 17일 제17연대장 김희준 중령은 지금까지 소속됐던 제1군단으로부터 배속해제돼 제2군단 예비로 배속됨과 동시에 화령장으로의 적의 진출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군단은 지역주민과 피란민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적 대부대가 괴산으로부터 상주 쪽으로 진출 중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17연대의 선두부대로서 화령장에 먼저 도착한 제1대대장 이관수 소령은 지역주민들과 지서장으로부터 적이 화령장 쪽이 아니라 상주 쪽으로 진출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매복으로 타격하고자 했다. 대대장은 연대 주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즉각 매복에 적합한 진지를 구축함으로써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했다.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제1대대의 3개 중대는 괴산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977번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일자로 된 진지선을 마련하고 위장에 힘썼다. 대대원들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을 때 북한군 제15사단 제48연대의 선두 행군대열은 7월 17일 16시쯤에 송계국민학교와 그 부근까지 와서 휴식에 들어가는 한편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 수색도 없이 총을 송계국민학교 운동장에 사총시킨 뒤 일부 병력은 낮잠을 자고, 일부는 이안천에서 옷을 벗고 목욕하는 한편 취사병들은 취사준비에 들어갔다.390고지의 대대관측소에서 인내심 있게 이 모든 정황을 주시하고 있던 이관수 소령은 해질 무렵인 19시 30분에 적의 긴장이 가장 풀어진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전 중대에 사격개시 명령을 내렸다.

    제1대대 병사 400여 명은 일제히 소총·기관총·박격포 사격을 퍼부었다. 이 사격으로 적은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져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곤경을 모면하고자 했다. 일부 적병들은 냇가에서 옷도 입지 못한 채 사격을 받았다. 이 한번의 매복 공격으로 제1대대는 적 사살 250명·포로 30명의 전과를 올렸고, 박격포 20문·대전차포 7문·소총 1200정·무선장비·군수품 다수를 노획하는 성과를 얻었다.

    다음 날 제17연대는 북한군 제15사단장 박성철이 예하 제48연대장에게 보내는 전문을 소지한 적 전령을 포로로 생포함으로써 또 한번 매복공격할 기회를 잡았다.7월 18일 괴산 쪽에서 상주로 가는 갈령고개를 통과하는 적 전령 두 명을 생포한 아군은 노획한 적 문서를 통해 적이 전날 전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과, 제48연대를 후속해 곧 제49연대가 화령장 북쪽을 통과해 상주로 진출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제17연대 제2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화령장 정북쪽 동관리와 그 동쪽 산기슭에 또 하나의 매복작전을 위한 그물을 쳤다. 그는 3개 중대를 도로 남쪽에 일렬로 나란히 배치하고 참호를 파도록 했다. 적 포로 생포 후 이틀이 지나도록 적이 나타나지 않자 초조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침내 7월 21일 새벽녘에 적의 대부대가 행군해 오는 것이 목격됐다.

    대대장은 21일 오전 6시 30분에 적의 행군대열이 완전히 매복진지 전면에 들어와 있음을 확인한 후 병사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사격명령을 내렸다. 아군의 기습사격에 적은 혼비백산해 도망가고자 발버둥이 쳤다. 이번에도 전과는 화려했다. 소탕작전 후 확인한 결과 적 사살 356명·포로 26명이었고, 노획물은 박격포 16문·반전차포 2문·기관총 53정·소총 186정과 기타 통신장비들이었다.

    아측 손실은 전사 4명, 부상 30명에 불과했다. 두 번의 승리로 제17연대는 적 제15사단의 상주 공격을 좌절시켰다.육군본부는 며칠 전 동락리에서 승리한 제6사단 7연대에 이어 두 번째로 제17연대장 김희준 중령 이하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부여했다. 이관수·송호성 소령의 대담한 작전 구상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던 제17연대가 받을 만한 트로피였다. 이것은 ‘무적불패 제17연대’ 신화의 출발이었다.
    사진설명:북한군의 남침에 맞서 금강 소백산맥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국군(1950. 7). 자료 사진

    <김광수 육군사관학교 전쟁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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