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현실이고, 미국도 결국 현실을 인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는 국제정치의 주요 특징이나 역사적 맥락을 경시한 오류가 적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먼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다는 주장을 점검해 보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을 ‘핵 강국(nuclear power)’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NPT가 규정하는 ‘핵보유국(nuclear-weapon State)’과 다르다. 개념 정의에서도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나 핵폭발장치를 제조하고 폭발시킨 국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트럼프 발언은 북한의 국제법적 지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현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기 위해 핵보유국 인정을 선물로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NPT상 합법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면 NPT 근본 원칙을 바꿔야 한다. 그런 무리수를 둔다고 해도 국제규범을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버티면 결국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드는 셈이 된다. 한국을 포함해 안보 불안을 느끼는 나라들이 비핵국가로 남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NPT 체제 근간이 흔들리고, 5개 핵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도 약화된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는 북한을 예외로 인정해 특권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불법적 핵무장국으로 규정하고 국제 제재를 이어가는 것이 유리하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핵군축 협상을 주장한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핵보유국이라는 전제에서 협상을 시작하면 북한이 주장해온 핵보유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핵무기 보유 현실을 관리하기 위한 핵위험 감소 협상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핵군축 협상은 구별해야 한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사례를 거론하면서 지도자의 강한 의지만 있으면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결기가 있어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드골은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독자적 핵억지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NPT가 존재하지 않았고 비핵보유국에 적용되는 핵무기 금지 의무도 없었다. NPT 체제 성립 이후 국제사회 핵질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제는 드골의 질문을 북한이나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 핵보유국 인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며, 미국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용어와 제도, 역사적 맥락을 구별하는 것이 북한 핵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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