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왕중추의 『디테일의 힘』이 큰 인기를 끌었다. 작은 차이, 즉 디테일이 조직과 개인의 성패를 가른다는 내용이다. 그가 말한 디테일은 일하는 태도와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디테일은 일에만 통하는 원리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김대수 KAIST 교수는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에서 ‘안다는 것’을 일종의 느낌으로 설명한다. 뇌는 충분한 정보가 없어도 ‘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최소한의 데이터만으로 신속히 판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보 최소량의 법칙’이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를 떠올려 보자. 음식 재료의 유통과정이나 원산지, 식당 주인의 성향까지 따지지는 않는다. 전날 음주를 했다면 해장국을 떠올리고, 가용시간과 맛을 고려해 한 곳을 고른다. 최소한의 정보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다르지 않다.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접관이 지원자를 판단하는 데는 길어야 15초가 걸린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 말의 내용이나 논리성뿐만 아니라 말투와 표정, 옷차림 같은 비언어적 디테일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한 지인은 배우자가 식당에서 수저를 가지런히 놓는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부부 관계를 40년 넘게 연구한 심리학자 존 가트맨은 이 점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그는 부부가 대화하는 단 몇 분의 영상만 보고도 이혼 여부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했다. 결정적 단서는 큰 싸움이 아니라 상대의 사소한 말과 몸짓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였다.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쌓이는 작은 순간이라는 뜻이다.
한 번 형성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판단과정에는 여러 인지적 편향이 작용한다. 결국 사람 관계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동이다.
사람 관계에서 디테일은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정성껏 가꾸려는 태도다. 기술은 배우면 익힐 수 있지만, 태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오래간다. 그 바탕에는 진정성, 공감, 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은 상대에게 거짓 없이 대하는 마음이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이를 지키고, 요청에 성의 있게 답하는 데서 드러난다. 상대방을 향한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공감은 상대가 왜 그런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됐는지 헤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은 맥락을 중시한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성은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 헤아리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결국 진정성은 상대를 대하는 마음의 출발점이고,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며, 정성은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그 행동에서 드러나는 작은 차이가 곧 디테일이다.
『사기』의 ‘이장군열전’에 나오는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꽃과 열매가 좋아 사람이 모여들고,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좋은 관계도 말로 광고하듯이 만드는 게 아니다. 작은 디테일이 꾸준히 쌓여야만 비로소 만들어진다.
군대는 나이와 학력, 지역과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생활하는 곳이다. 그만큼 군 복무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다. 계급과 병과가 달라도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의 작은 습관과 배려를 알아가게 된다. 인공지능(AI) 시대 AI가 쉽게 대신하기 어려운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군 복무기간을 사람을 존중하고 관계를 가꾸는 디테일을 배우는 시간으로 삼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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