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이 선택한 길보다 시대가 맡겨 준 길을 걷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2023년 5월 1일이 그런 날이었다. 30여 년간 육군 정훈장교로 복무하고 중령으로 예편한 뒤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됐다.
모든 것은 박충암 회장님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내가 죽으면 자유를 지킨 한국 최초 유격군 3만2000명의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 그 말씀은 평생 조국을 위해 싸워 온 한 노병의 호소였다.
그 질문을 마음에 깊게 품고 업무를 시작했다.
얼마 후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행정사로 일하던 당시 한 의뢰인이 33년 전 세상을 떠난 장인의 군번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6·25전쟁 당시 동키부대에서 복무했던 고인은 “내가 죽으면 현충원에 묻어 다오”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군번을 찾지 못해 유족은 오랫동안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기관에서도 찾지 못했던 기록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사무실의 오래된 자료에서 발견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이름 하나가 한 사람의 삶과 전쟁의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깨달았다. 전쟁의 기억은 저절로 보존되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면 이름이 사라지고, 이름이 사라지면 역사도 희미해진다.
6·25전쟁엔 전선에서 싸운 군인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던 시기 북한 지역의 젊은이들은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 8240부대 유격군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적 후방에서 정찰·첩보·기습·교란 등 4445회의 작전을 수행하며 국군과 유엔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정전협정 이후에도 1만8994명은 8250부대로 재편돼 대한민국 국군의 일원으로 3년을 더 복무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은 아직 우리 전쟁사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생존한 유격군은 대부분 90세 중후반 초고령분이다.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면서 귀중한 증언과 자료도 같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생존 전우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흩어진 자료를 발굴하며, 그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8240부대 유격군의 역사는 특정 단체만의 역사가 아니다. 고향을 잃고도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 낸 사람들의 역사이며 수많은 실향민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 후손들이 그 기록을 펼쳐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왜 싸웠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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