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생도들에게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부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당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2.6명이었는데, 2024년도에는 29.1명이다.
아무리 1등을 좋아하는 나라라지만 이렇게 불명예를 오래 유지한다는 건 우리나라 자살 예방정책에 오류가 있는 게 아닐까? 자살 문제가 심각한데, 그 흔한 지하철역에서도 “자살 금지”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자살 사망자 유족 보호를 위해 금기의 말을 할 수 없고, 무엇보다 이 단어를 입에 담는 걸 어려워하다 보니 자살 담론이 이중 금기로 묶여 있다. 그간 많은 노력에도 여전히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의 접근방식을 낯설게 바라봐야 할 시점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관계 중심의 집단주의 문화다. 개인주의 문화로 변했다고 해도 우리 삶의 많은 맥락은 관계 중심으로 돌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고 개인 내면의 갈등은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관계 중심 문화에선 심리적인 문제 개입도 관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개인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개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자살 예방정책은 “당신의 불안과 우울을 이야기하세요” “우리 사회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같은 식의 개인주의 문화권에 적합한 자살 예방 모델에 기반한다.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특히 군대와 같은 위계적 조직에서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세요”라는 개인의 자발적 노력을 촉구하는 메시지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부정적 정서는 개인주의 문화권의 부정적 정서인 우울·불안과는 조금 다르다. 억울함, 체면의 상처, 후회, 상대적 박탈감 등 관계의 손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개입 역시 ‘감정의 표현’보다 ‘관계의 회복과 도덕적 책임감’을 중심에 둬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의 규범과 도덕적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적 토대를 갖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하게 제시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개인의 선택을 넘어 공동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인다. “많이 힘드신가요? 당신을 이해합니다” 같은 공감 중심 메시지보다 “자살은 끝이 아닌 새로운 고통의 시작입니다” “자살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살아서 함께 이겨 냅시다” 등 생명 존중과 회복 중심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한다.
우리 군은 자살 예방을 위해 처절히 노력하고 있지만, 화장실 칸마다 보안 포스터는 있어도 자살 예방 포스터 한 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공간력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우리는 “자살”이라는 말을 정확히 입에 담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자살할 것 같은 전우를 봐도 회피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다. 물어봐야 예방이 가능한데, 그걸 못한다. 전우의 자살 생각을 환기할 수 있도록 “혹시 자살하려 하세요?”라는 ‘살리는 질문’을 공간의 힘을 빌려 물어야 한다.
우리는 ‘해선 안 되는 일’과 ‘반드시 지켜야 할 일’에 대한 공동체적 감각을 살려야 한다. 자살 예방 역시 문화적 토대 위에서 다시 설계될 필요가 있다.
“혹시 자살을 생각하나요? 우리 생명만은 지킵시다.” 이 말을 연습하고 주변 전우에게 건네 보자.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