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국굴기를 비판하는 마이클 필스버리의 저서 『백년의 마라톤』은 중국의 전략 중심에 ‘세(勢)’라는 개념이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세를 서양인이 이해하기도, 번역하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세는 ‘노련한 지도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상황이 전개되도록 만들 기회를 포착하고 이용하는 신비한 힘’으로 설명된다.
흥미로운 것은 서양의 전문가들조차 비교적 최근에야 세의 개념을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1983년 로저 에임스 하와이대 교수가 세를 개념적으로 정의했다고 했다. 저자도 1990년대 세의 개념을 처음 접했지만, 당시로선 그 함의를 잘 몰랐다고 한다.
서양과 중국의 교류는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남겼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16세기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는 유교경전에도 통달해 『천주실의』 같은 저서도 남겼다. 급기야 19세기에는 아편전쟁을 통한 전면적인 대결과 접촉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서양이 중국 전략의 핵심 개념에 오랜 세월 무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사례는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30년 넘게 위기가 누적돼 온 북핵 문제는 당사자 간 이해 부족과 소통 실패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렇다. 대표적인 게 2002년 10월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 그는 미 국무부 차관보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시인으로 해석돼 2차 북핵위기를 촉발했지만 한편에선 오역이 부른 참사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어는 ‘고맥락 언어(High-context language)’로 분류된다. 상황과 인간관계 등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호전적 언사가 특징인 북한의 경우는 난도가 더 올라간다. 예컨대 2018년 북한이 미국에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한 것을 우리는 수위가 좀 세구나 정도로 여겼지만, 미국은 달랐다. ‘Gangster-like(깡패 같다)’로 번역된 문구에 미국 조야는 발끈했고,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뻔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연합연습 축소 발언과 관련해 북한의 반응은 우리의 독해력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지난 19일과 20일 잇달아 등판해 특유의 독설 속에 알 듯 말 듯한 메시지를 숨겨 놨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미·북 지도자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고 했다. 마치 계산된 모호성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하려는 북한 나름의 ‘세’ 전략을 보는 것 같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한의 속내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미국도 한국어 구사자를 양성하고 탈북자의 전문적 조력 등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정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이라도 북한의 의중을 한반도적 맥락에서 읽어 내는 데는 한국을 앞서기 힘들다. 좋든 싫든 남북은 수천 년의 역사와 언어를 공유해 왔기에 아 다르고 어 다른 어감 차이까지 잡아 낸다.
미국은 세계 대전략 속에 한반도를 바라본다. 한미 간에도 견해와 지향점이 다를 수 있고 각자도생의 시대에선 더욱 그렇다. 정부가 임기 내를 목표로 추진 중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작권 전환의 마지막 조건은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판단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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