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파고 ‘병영공감’으로 막는다
① ‘강 대 강’ 정면 질주하는 ‘세대 충돌’
② 무엇이 세대를 싸우게 만드나
③ ‘공감으로 전투력 레벨업’ 병영현장을 가다
④ 전문가 인터뷰
저성장·고령화 사회적 대전환이 부른 갈등
‘정년연장 vs 청년고용’처럼 이해충돌 초래
같은 세대 안에서 경제상황 차이는 가려져
대결 구도 아닌 사회제도 설계의 전환 필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대 균열’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안보 위기 속에서 집단적 희생과 위계를 우선시해 온 기성세대와 합리성과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세대 갈등’은 일시적 현상이 아닙니다. 서로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국방일보는 8월 31일부터 4일간 ‘세대 갈등’의 엄중한 현주소를 진단하고,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짚어봅니다.
세대마다 성장한 환경과 경험이 다른 만큼 일과 조직, 가족, 소비 등을 바라보는 가치관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생각과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세대갈등의 심각성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치관 차이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마찰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일자리·연금·주거·자산처럼 실제 자원의 배분과 연결된 문제는 각 세대의 생계와 미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인식의 차이가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여기에 미디어·SNS가 세대별 차이를 ‘청년 대 기성세대’라는 대립구도로 단순화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이 세대갈등을 어느 한 세대의 태도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구조와 이를 둘러싼 담론 형성 과정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세대 간 ‘가치관 차이’는 정서적 거리감
가치관의 차이는 시간 흐름에 따라 서서히 쌓이는 정서적 거리감이다. 예전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들이 지금은 수용되지 않는다. 문제 인식에 대한 시각 차이는 당연히 처방과 해법의 간극으로 귀결된다. ‘그때는 그랬었다’고 강조하고 고집하는 순간 세대 간 충돌이 발생한다.
조직에 대한 인식에서 특히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고도성장기와 장기고용 관행을 경험한 세대와 저성장·수시채용 시대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는 회사와 일에 기대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 대기업과 공공부문 등을 중심으로 장기근속과 연공형 임금체계가 작동할 때는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임금과 승진 측면에서 보상받을 가능성이 컸다. 조직에 대한 헌신과 장기근속을 중시하는 문화도 이런 고용구조와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노동시장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연구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 확대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노동자 측의 평생직장 개념 약화를 꼽았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경력을 쌓아 이동하는 방식이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층이 직무 역량과 경력 관리, 일과 삶의 균형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현상 역시 이런 노동시장 변화와 분리해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고용 안정성과 장기적인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경력과 생활을 우선하는 선택이 늘어나는 것은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조직에 충성하고 청년세대는 개인주의적이다’라는 식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지적이다.
일자리 앞에선 ‘인식 차이’가 ‘이해 충돌’로
갈등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바뀌는 지점은 일자리와 소득이다. 청년층이 체감하는 첫 번째 벽은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부터 나타난다.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신입 정기공채에서 경력직·수시채용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들이 경력을 쌓을 기회도 줄어드는 양상이다.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질수록 이후 임금과 고용 형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상흔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돼 왔다.
문제는 청년층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장년층은 노동시장 퇴장 이후 소득 공백이라는 또 다른 벽과 맞닥뜨린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평균 연령은 53세 안팎인데,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63~65세로 그 사이에 최소 10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이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5060세대는 노동시장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65세 계속고용’ 논의는 세대 간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대표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올해 안에 ‘세대 상생형 정년연장’을 법제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법정 정년 자체를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높이는 방안과 퇴직 뒤 재고용하는 방식 등이 함께 논의되고 있다.
결국 관건은 법정 정년을 몇 세로 정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늘어난 고용 기간을 임금·인사제도가 어떻게 뒷받침하고, 청년 신규채용 위축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빠진 채 정년연장과 청년고용이 맞붙을 경우 노동시장은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제로섬 게임’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연금·주거도 생존과 직결
제도적 부담을 둘러싼 세대별 인식 차이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올해 9.5%로 오른 뒤 매년 0.5%포인트씩 인상돼 2033년 13%에 도달한다. 지난해 연금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은 올해부터 43%로 조정됐고, 국가의 연금 지급보장 의무도 법에 명문화됐다.
보험료 부담은 늘어나는데 정작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금액과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청년층의 불안과, 고령화 시대에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는 고령층의 요구가 같은 제도를 놓고 다른 방향을 향한다.
주거 문제도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 보고서에서 청년층의 주거비 상승이 자산 형성과 인적자본 축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거비가 1% 상승할 때 청년층 총자산이 0.04%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청년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을 시작해 자산을 축적해야 할 시기에 상당한 소득을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높은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근로소득만으로 자산 격차를 좁히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디어·SNS가 갈등 증폭
여기에 세대갈등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정치와 미디어가 꼽힌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의 39%는 ‘미디어와 정치권의 세대갈등 부추김’을 갈등의 원인으로 꼽았다. 62%는 세대갈등이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경제·사회적 문제는 고용 형태와 소득, 자산, 지역, 성별 등에 따라 복잡하게 나타나지만 정치적 논쟁이나 온라인 공간에서는 종종 ‘청년 대 기성세대’라는 단순한 구도로 압축된다. SNS에서는 갈등을 자극하는 짧고 강한 표현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특정 세대의 일부 사례가 세대 전체의 특성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구도가 반복될수록 실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제도와 경제구조는 뒤로 밀리고 ‘어느 세대가 더 많은 혜택을 받았느냐’ ‘어느 세대가 더 이기적이냐’는 식의 책임 공방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
‘세대 간 격차’ 뒤에 가려진 ‘세대 내 격차’
특히 세대라는 기준만으로 사회경제적 격차를 설명하면 같은 세대 안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놓칠 수 있다. 청년층만 보더라도 부모로부터 자산을 이전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출발점은 크게 달라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5년 ‘자산 격차 요인 분석과 정책 과제’ 연구에서 상속·증여, 부동산 보유, 부채와 소득계층 등 다양한 요인이 자산 격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상속·증여를 받거나 청년기에 부동산을 확보한 집단이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자산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같은 ‘청년세대’라도 노동소득과 가족 배경, 자산 보유 여부에 따라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장년층 역시 안정적인 일자리와 충분한 자산을 확보한 집단이 있는 반면 퇴직 이후 저임금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노후 준비가 부족한 집단도 존재한다. 세대 간 격차만 강조할 경우 실제 불평등을 가르는 계층과 자산의 차이가 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대 탓’을 넘어 ‘제도와 패러다임 전환’으로
전문가들은 세대갈등을 어느 한쪽의 이기심이나 무례함의 문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사회적 대전환 속에서 각 세대가 처한 불안이 서로 부딪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년연장과 청년고용, 연금과 주거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라는 제도 설계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년연장과 청년고용 문제는 고령층의 소득 공백을 줄이면서도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기회를 훼손하지 않는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의 문제다. 연금 역시 노후소득을 보장하면서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나누는 방안이 핵심이다. 주거 문제에서는 청년들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에 쓰지 않고 자산과 인적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미디어가 복잡한 사회경제 문제를 세대 간 대결 구도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세대마다 다른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한정된 기회와 자원을 둘러싼 불안을 ‘세대 탓’으로 돌릴 때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금이나 정년연장처럼 미래세대와 기성세대의 이해관계가 실제로 충돌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며 “연금·조세·정년연장 등 국가 정책이나 기업의 제도를 바꿀 때는 미래세대의 관점을 보다 면밀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계급에 가려진 세대갈등…“이해하고 포용하는 분위기 필요”
중견간부·신세대 장병 ‘소통의 벽’
계급 관계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병영 내에도 세대갈등은 존재한다. 과거 집단생활과 위계질서에 익숙한 중견간부들과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장병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군 조직 특유의 계급질서에 세대별로 다른 소통방식까지 겹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입영 후에도 이어지는 SNS 중심의 청소년기 ‘또래문화’의 영향력도 병영 내 소통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중견간부들은 특정 관심사 중심으로 형성된 MZ세대들만의 강한 결속력과 문화에 공감대 형성을 어려워한다.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 역시 그 긍정적 효과와 별개로 병영 내 세대 풍속도를 바꿔놓은 대표적 사례다. 각자 침상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시청하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등 사생활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지만 그만큼 상호 소통은 감소했다. 여기에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상담과 대화로 풀어가던 방식 이외에 SNS나 인공지능의 조언에 의존하기도 한다.
육군 모 부대의 한 간부는 “예전에는 병사들이나 초급간부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면 요즘은 중견간부들이 먼저 움직이면 따라나서는 추세”라며 “요즘 병사들은 지금 일과나 임무를 하는 이유를 꼼꼼히 설명해주길 원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대대 군 간부들은 최근 입대한 장병들이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개인의 합리성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며 “간부로서 지휘하고 이끌려면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분위기가 군대에서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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