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도약』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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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13분 시동을 끈다. 지휘관께서는 회의실로 들어가고 나는 보닛이 식어 가는 관용차에 남았다. 회의는 2시간이 될지, 3시간이 될지 알 수 없다. 운전병의 본분은 모시고 가는 일이지만, 그 시간의 절반은 모시러 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다. 기다림은 군대에서 가장 익숙한 동사였다. 진중문고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을 처음 펼친 곳도 바로 그 정차된 차 안이었다.
도야마 시게히코는 학교 교육이 길러 낸 수동적 학습자를 글라이더에 비유한다. 동력 없이 누군가가 끌어 주는 바람에만 의지해 활공하는 존재. 입대 전까지 의대 본과 한가운데 있었다. 해부학 도판 위 수천 개의 라틴어, 생리학 교과서 1500쪽의 곡선들, 시험이 끝나면 다시 펼쳐지는 새 활주로. 꽤 우수한 글라이더였기에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머리는 창고가 아니라 공장이어야 한다”는 한 문장 때문이다. 창고를 가득 채운 채 입대한 내게 군 생활은 한동안 비워지는 시간으로만 느껴졌다. 동기들은 이 시간을 낭비라고 부른다. 책을 덮은 뒤 다른 단어를 골라 보기로 했다. 망각과 숙성. 어쩌면 군 복무란 한 청년의 머리가 통째로 한 번 자고 일어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모시는 분은 회의장 안에서 결정을 만드신다. 결정은 사람의 길을 바꾸고 부대의 형(形)을 바꾼다. 그 결정을 본 적은 없다. 한번은 출장길에 지휘관님께서 책 한 권을 무릎에 펴 두고 펜으로 무언가를 천천히 표시하는 모습을 백미러로 봤다. 별을 단 어깨의 그분도 결국 글을 읽고 생각을 묵혀 두는 한 사람의 독자였다. 그날 비행기란 단지 빠른 기계가 아니라 멈춘 자리에서도 엔진을 계속 돌리는 기계임을 알았다. 정차된 차 안의 그분도, 운전석의 나도 엔진을 끄지 않는 한 어딘가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도야마 시게히코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자리로 구양수의 ‘삼상(三上)’ 말 위, 베개 위, 측간 위를 든다. 21세기 운전병에게 그 첫 자리는 단연 운전석이었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그곳은 ‘이질의 만남’이 일어나는 자리다. 의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가, 차창 밖 위병소의 풍경이, 회의장 안 결정들이 정차된 차의 정적 속에서 서로 부딪혀 새로운 결을 만든다. 다만 저자에게 한 가지 단서를 달고 싶다. 멀리까지 활공해 본 사람만이 엔진이 왜 필요한지 안다. 의대에서의 그 방대한 암기가 없었다면 백미러 너머의 풍경을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글라이더는 폐기될 기체가 아니라 작은 엔진을 단단히 얹어 비행기로 전환돼야 할 기체다.
이제 곧 다시 의대로 돌아간다. 환자를 진단명으로 먼저 부르지 않는 사람, 차트의 한 줄 뒤에 놓인 한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시동을 다시 건다. 누군가 끌어 주는 바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도는 작은 엔진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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