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지혜…이해를 넘어 겸손으로

입력 2026. 08. 25   15:38
업데이트 2026. 08. 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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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상 대위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목사
조은상 대위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목사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많은 경우 특정 종교를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 태어나 자란 가정이나 사회적 문화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종교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하고, 미래의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과 현재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 평안을 얻고자 스스로 종교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종교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도덕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행위에는 선과 악의 개념, 질서가 있다.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올바른 것인지 삶의 방향과 규범을 제시한다. 나아가 종교는 세상에 인과응보적 원리나 초월적 개입이 존재함을 설파함으로써 그 도덕적 기준과 규범의 당위성을 보장한다.

이런 이유로 종교를 갖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신앙이 제시하는 가르침과 교훈, 규범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종교가 제시하는 길을 충실히 따르면 우리가 바라는 완전하고 행복한 삶이 보장될까? 현실을 둘러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리 종교적으로 열성을 다하고 세상의 눈에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풍파를 비켜 가지는 못한다. 뜻밖의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경제적 시련에 처하기도 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관계의 고통과 고민 속에 밤을 지새기도 한다. 무엇보다 신앙의 유무나 깊이와 상관없이 죽음이라는 치명적 인간의 한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종교적 인과응보라는 정교한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이 우리 삶에 늘 실존한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종교는 단지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기도하면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식의 기복적인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유익은 ‘내가 세상을 다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겸손의 지혜일 것이다. 종교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신의 생각과 상식, 판단력의 범주를 벗어나 거대한 차원의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위나 재산이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성직자라 할지라도 초월적 존재나 우주의 거대한 질서 앞에서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한다고 해도 세상은 오롯이 내 뜻과 계산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종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감히 만물을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깊이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종교가 가리키는 궁극적 지점은 완벽한 삶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지혜로운 겸손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 앞에 오만을 내려놓으며, 불완전한 서로를 보듬어 안는 태도야말로 종교가 인류에게 건네는 가장 숭고한 유산이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삶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수많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 한계의 끝에서 자신을 낮추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겸손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우리 삶에 선물하는 가장 깊은 위로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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