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청춘이여, 너만의 詩를 품어라

입력 2026. 08. 25   15:32
업데이트 2026. 08. 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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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1989년 개봉 동명 영화 무대로
2026년 다시 듣는 “카르페 디엠”
남과 비교하며 정답 찾는 현대인
나만의 길 찾으라는 따뜻한 격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책상은 낮다. 기껏해야 허리춤이다. 여기 올라간다고 세상이 갑자기 광활해지거나 인생의 해답이 머리 위에서 툭 떨어질 리도 없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카르페 디엠이고 뭐고 정형외과부터 찾아야 할 판이다.

그런데 올라가면 분명 달라진다.

교실의 책상과 칠판, 친구들의 머리, 선생의 얼굴이 조금씩 낯설어진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이 학생들을 책상 위로 올려세운 이유다. 인생의 높은 곳에 올라가라는 뜻이 아니다. 늘 보던 것을 다른 자리에서 한 번 보라는 것이다.

처음엔 선생이 시켰지만 나중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올라간다. 이 차이가 정말 좋았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영화 각본을 쓴 톰 슐만이 직접 희곡으로 고쳤고, 2016년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세계 초연을 했다. 이번 한국 초연에선 조광화 연출이 지휘봉을 잡았다. 다음 달 1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공연한다.

배경은 1959년 미국의 명문 기숙학교 웰튼아카데미다. 전통, 명예, 규율, 일류를 내세운 학교에서 학생들은 명문대와 사회적 성공을 향해 달린다. 그곳에 새 영어교사 키팅이 부임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교과서를 찢고, 책상에 올라가게 하고, 각자 자기 걸음으로 걸으라고 주문한다. 학생들은 키팅이 학창 시절 활동했던 비밀모임 ‘죽은 시인회’를 되살려 동굴에서 시를 읽기 시작한다. 그중 모범생 닐 페리는 연극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발견한다. 하지만 의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끝내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학교는 책임을 키팅에게 돌린다. 무거운 이야기다.

키팅의 수업은 꽤 유쾌하다. 시를 수학 공식처럼 다루는 교육에 딴지를 걸고, 학생들에게 제각기 다른 걸음으로 걸어 보라고 한다. 웰튼 교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요주의 인물이다. 그가 학생들에게 건네는 가장 유명한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이다. 이 작품의 가장 두툼한 주제다.

2026년에 재회한 카르페 디엠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현재를 네 것으로 살아라’. 지금은 훨씬 자유로운 시대다. 삶의 모양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답’은 더 많아졌다. 어느 대학이 좋은지,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언제 집을 사고 결혼해야 하는지, 심지어 잘 쉬는 방법까지 손만 뻗으면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 준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남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내 삶에 자를 댄다. 남의 연봉, 남의 집, 남의 여행, 남의 자녀 성적까지 보고 나면 멀쩡히 살던 인생이 갑자기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웰튼의 교장 놀란은 그런 정답을 대표한다. 키팅은 반대편에 선다. 놀란은 답을 가르친다. 키팅은 묻는 법을 교육한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지금 믿고 있는 게 정말 네 생각인가. 남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고 너까지 그래야 하는가.

질문은 귀찮다. 답은 편하다. 그래서 질문하는 삶은 종종 평탄한 길을 굽게 만든다. 닐 페리가 그랬다. 그에게는 이미 훌륭한 미래가 준비돼 있었다. 의사가 되는 길. 아버지가 깔아 놓은 길은 탄탄하고 안전해 보인다. 문제는 그가 그 길을 고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닐 페리가 키팅을 만나 처음으로 자기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연극을 발견한다. 무대에 선 그는 생전 처음 자기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빛난다. 닐 페리에게 미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아버지가 준비한 미래, 학교가 약속한 미래, 사회가 칭찬할 미래.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오늘’이 없었다. 자기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오늘.

이 작품의 카르페 디엠은 가볍지 않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구호도 아니다.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감당하라는 말에 더 가깝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모습.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오만석의 키팅은 장난스럽게 다가갔다가 불쑥 날카로운 말을 잽처럼 툭 던지고, 학생들이 자기 힘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슬쩍 물러선다. 실제 오만석도 배우의 길을 택했을 때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몰래 아르바이트해 연기학원에 다녔고, 그곳에서 남경읍을 만났다. 그는 남경읍을 답을 알려 주기보다 좋은 질문을 많이 던진 스승으로 기억했다.

묘한 인연이다. 이날 남경읍은 키팅의 대극점에 선 놀란 교장을 연기했다.

결국 키팅이 떠난다. 학교는 닐 페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키팅에게 돌렸다. 교장은 학생들에게 앉으라고 명령한다. 그때 토드 앤더슨이 일어섰다. 소심하고 늘 자기 목소리를 숨기던 아이다. 그가 가장 먼저 책상 위로 올라선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처음 책상 위에 섰을 때 학생들은 키팅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교장의 명령을 거슬러 자기 발로 올라간다.

겉으로 보면 키팅은 실패한 교사다. 토드 앤더슨이 책상에 올라서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아이들은 이제 빌려 온 목소리가 아닌 자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36년 전 한국 관객을 설레게 했던 카르페 디엠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철없는 청춘의 구호가 아니라 살면서 몇 번쯤 길을 잃어 본 사람들을 위한 간절한 조언으로 들린다. 남의 정답을 좇느라 당신의 오늘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세상이 너무 익숙해졌다면 한 번쯤 책상 위에 올라가 볼 일이다. 늘 보던 세상이 낯설어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높이가 필요하지 않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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