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적 사이… 최악의 수송작전 사선을 돌파하다

입력 2026. 08. 25   15:36
업데이트 2026. 08. 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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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아틱 콘보이 (2023)

PQ-17 수송선단 실화…獨 전함·U보트 지배하는 북극해 돌파
호위망 무너지고 24척 침몰…항로 바꾼 낡은 상선의 선택 담아

 

감독 : 헨리크 마르틴 달스바켄 
출연 : 토비아스 산텔만(뫼르크), 안데르스 바스모 크리스티안센(스카르), 헤이디 루드 엘링센(라그닐), 아담 룬드그렌(요한), 욘 라네스(시구르) 

“바닷속의 인간에게 기름은 악마와 같은 물체다. 기름은 팔다리의 움직임을 구속하고 눈을 태우며, 폐를 눌어붙게 하고 끝도 없는 구토의 발작으로 위를 찢어발긴다. 불이 붙은 기름은 훨씬 더한 지옥이며, 고문이다. 더구나 뼈까지 얼리는 북극 바다에서조차도 얼어 죽는 은총을 앗아간다.” 『여왕폐하 율리시즈호』, 알리스테어 매클린 지음, 동서문화사 펴냄

 

영화 ‘아틱 콘보이’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북극해를 항해하는 노르웨이 상선. 호위함이 철수한 뒤 민간 선원들은 무르만스크로 계속 갈 것인지, 아이슬란드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진=Fantefilm 제공
영화 ‘아틱 콘보이’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북극해를 항해하는 노르웨이 상선. 호위함이 철수한 뒤 민간 선원들은 무르만스크로 계속 갈 것인지, 아이슬란드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사진=Fantefilm 제공



소련으로 가는 가장 짧고 위험한 길

윈스턴 처칠은 PQ-17 참사를 “(2차 세계대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침통한 해군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PQ-17은 북극해를 건너 소련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연합군 수송 선단이었다. 이 선단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처칠은 이처럼 무거운 말을 남겼을까. 비극의 출발점은 1년 전 독일의 소련 침공이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독일군 약 300만 명이 동부전선으로 밀려들었고, 소련군은 개전 첫 주에만 항공기 약 4000대를 잃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외부의 무기와 물자가 필요했다.

영국과 미국이 연 보급로 가운데 가장 짧은 길은 아이슬란드에서 노르웨이 북쪽을 돌아 소련의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로 향하는 북극항로였다. 그러나 항로 옆에는 독일이 점령한 노르웨이가 있었다. 피오르에는 독일 전함이 숨어 있었고, 바닷속에서는 U보트가 기다렸다. 독일 항공기와 기뢰, 유빙과 폭풍도 상선들을 위협했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 때문에 배를 숨기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1941년부터 1945년까지 78개 수송 선단이 북극항로를 오갔다. 1942년 6월 27일에는 아이슬란드에서 PQ-17이 출항했다. 상선 35척에는 전차 594대와 항공기 297대, 차량 4246대 등 막대한 군수물자가 실렸다.

영국 해군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노르웨이에 배치된 독일 전함 티르피츠였다. 비스마르크급 거함이 느린 상선들 사이로 돌진하면 근접 호위함만으로 막기 어려웠다. 영국 해군은 티르피츠가 출격을 준비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7월 4일, 제1해군경 더들리 파운드 제독은 순양함 엄호부대와 구축함 주력에 철수를 명령했다. 이어 상선단에도 한 단어의 명령이 전달됐다.

“흩어져라(Scatter).”

상선들을 분산하면 티르피츠가 한꺼번에 격침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흩어진 배들은 서로의 대공·대잠수함 방어망을 잃고 U보트와 독일 항공기의 먹잇감이 됐다.

상선 35척 가운데 24척이 침몰했다. 전차 430대와 항공기 210대, 차량 3350대가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승무원 153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련에 도착한 배는 11척뿐이었다.

 

 

노르웨이 오포트피오르에 정박한 독일 전함 티르피츠. 티르피츠는 북극 수송선단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도 존재만으로 영국 해군의 전함과 항공모함을 북극해에 묶어뒀다. 사진=독일 연방기록원
노르웨이 오포트피오르에 정박한 독일 전함 티르피츠. 티르피츠는 북극 수송선단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도 존재만으로 영국 해군의 전함과 항공모함을 북극해에 묶어뒀다. 사진=독일 연방기록원



명령과 생존 사이, 북극해의 선택

수평선에 점 하나가 나타난다. 점은 빠르게 커지더니 노르웨이 상선을 향해 선회한다. 독일군 항공기다. 경보가 울리고 선원들이 대공포로 달려간다. 기관총탄이 갑판을 훑고 폭탄이 바다를 갈라놓는다. 배에 불이 붙자 누군가는 대공포를 쏘고, 누군가는 부상자를 옮긴다. 기관실에서는 멈춰가는 엔진을 되살리려는 사투가 벌어진다. 영화 ‘아틱 콘보이’가 보여주는 북극해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하늘과 바닷속, 추위와 공포가 동시에 달려드는 거대한 전장이다.

영화는 1942년 여름, 군수물자를 싣고 소련으로 향하는 노르웨이 상선과 그 선원들을 따라간다. 그러나 독일이 점령한 노르웨이 해안을 지나는 순간부터 이들도 전장의 한복판에 놓인다.

선장 스카르는 배와 화물을 책임지는 노련한 지휘관이다. 새로 부임한 일등항해사 뫼르크는 앞서 자신이 지휘하던 배가 독일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같은 목적지를 향하지만,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항해 도중 이해하기 어려운 무전이 들어온다. 선단을 해산하고 흩어지라는 명령이다. 자신들을 지키던 영국 해군의 호위함들도 서쪽으로 사라진다. 그 순간 상선은 독일 잠수함과 항공기 앞에 홀로 남는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해양 전쟁물을 넘어 선택의 드라마로 바뀐다.

스카르는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기와 탄약이 소련에 도착하지 않으면 동부전선의 병사들이 죽는다. 뫼르크는 배를 돌려야 한다고 맞선다. 화물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눈앞의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책임인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책임인가. 공격이 거듭되고 스카르가 중상을 입자 뫼르크가 지휘권을 넘겨받는다. 그는 북쪽으로 항로를 바꾼다. 그러나 그 바다에는 유빙과 혹한이 기다리고 있다. 남쪽에는 적이 있고, 북쪽에는 얼음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죽음의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영화는 한 척의 낡은 상선과 그 안의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함교와 무전실, 기관실과 좁은 선실을 오가며 공포가 배 전체로 번지는 과정을 밀도 있게 따라간다. 스카르를 무모한 지휘관으로, 뫼르크를 겁에 질린 도망자로 단순화하지도 않는다. 전쟁에서는 용기와 무모함, 책임감과 집착의 경계가 쉽게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승리를 거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가 전선의 병사들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군인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항로를 오가며 목숨을 걸고 물자를 운반했다.


티르피츠, 싸우지 않고 연합군을 떨게 한 전함

기준 배수량 약 4만3000톤, 전장 251m, 15인치 주포 8문.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는 독일 해군이 건조한 군함 가운데 가장 컸다. 1941년 2월 취역한 티르피츠는 이듬해 노르웨이로 이동해 피오르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자매함 비스마르크가 영국 해군의 추격을 받아 침몰하자 히틀러가 대형 수상함의 손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르피츠는 항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언제 출격할지 몰랐던 영국 해군은 북극 수송선단이 출항할 때마다 전함과 순양함, 항공모함을 엄호부대로 배치해야 했다. 다른 전선에 투입할 함정과 항공기가 티르피츠 한 척을 견제하기 위해 북해와 북극해에 묶였다.

PQ-17 참사도 티르피츠가 불러온 공포에서 시작됐다. 영국 해군은 독일 수상함들이 선단을 공격할 것으로 판단해 호위부대 철수와 선단 분산을 명령했다. 티르피츠는 출격했지만 PQ-17을 공격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 사이 흩어진 상선 24척이 U보트와 독일 항공기에 격침됐다.

영국군은 골칫거리인 티르피츠를 제거하기 위해 집요한 작전을 펼쳤다. 1943년 9월 소형 잠수정 침투를 시작으로 1944년 4월과 9월에 공습을 감행했다. 최후의 작전은 1944년 11월 12일이었다. 영국 공군 제9·제617폭격대대의 랭커스터 폭격기들이 투하한 톨보이 폭탄 두 발이 명중했다. 포탑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선체가 전복됐고, 승조원 약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티르피츠가 주포를 실전에 사용한 것은 1943년 9월 스발바르제도의 연합군 시설과 수비대를 포격했을 때가 사실상 유일했다. 적 전함이나 수송선과 주포를 주고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영국군은 이 전함을 파괴하기 위해 소형 잠수정과 항공모함, 폭격기와 특수폭탄을 투입했다. ‘북방의 고독한 여왕’으로 불린 티르피츠는 직접 싸워 거둔 전과보다 언제든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 전함이었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있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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