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과 베트남』
앤드루 크레피네비치. 1986. 『육군과 베트남』. 존스홉킨스대 출판부. 344쪽.
Andrew F. Krepinevich. 1986. The Army and Vietnam. Johns Hopkins Univ. Press. p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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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개념’ 전쟁수행 방식 지배
재래전 집중·화력 집착 못벗어나
완벽한 교리보다 창의·혁신 중요
민첩한 변화 대응해야 유능한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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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화력과 항공력, 기동력과 군수지원 능력을 보유했고, 적에게 미군보다 훨씬 많은 인명 손실을 강요했다. 그런데도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 역설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치인이나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미 육군 자체로 향한다. 미 육군은 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도 베트남에서 승리할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미 육군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것은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도, 용기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육군의 조직문화가 자신이 직면한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육군 개념(army concep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육군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추상적인 관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육군의 부대 조직과 훈련에도 반영된다.
베트남 개전 당시 미 육군을 지배했던 개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중강도 또는 재래식 전쟁에 대한 집중이고, 다른 하나는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량의 화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피로 대가를 치르는 대신 가능한 모든 경우에 물질적 비용으로 대신한다”는 게 미군의 생각이었다.
육군 개념은 전체 논지를 이해하는 열쇠다. 미군의 베트남전 실패는 웨스트모어와 같은 지휘관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규모 부대의 기동, 결정적인 전투, 화력의 집중, 적 주력의 격멸이라는 재래전에 익숙한 부대로 조직화됐다. 냉전 시대 미군의 가장 큰 위협은 소련의 대규모 기갑군단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육군 개념이 정립되고 교육훈련을 통해 내면화됐다.
문제는 베트남전쟁은 달랐다는 점이다. 베트남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적군을 찾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을 보호하고 반군과 주민 사이의 연결을 차단하며 남베트남 정부의 통치력과 정당성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일종의 대반란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미 육군은 기존 전쟁수행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미군은 전쟁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전쟁을 자신에게 익숙한 형태로 바꾸려고 했다. 그 결과로 나온 전쟁방식이 수색-격멸에 기반한 소모전이었다. 미군의 기동력과 화력을 이용해 적 주력부대를 찾아 전투를 강요하고 지속적으로 높은 인명손실을 입히면 결국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화력에 대한 집착은 미군의 전쟁 방식을 잘 보여준다. 화력은 미군의 인명피해를 줄이고 적에게 압도적인 손실을 강요하는 합리적 수단으로 보였다. 실제 전술적 차원에서는 그 논리를 부정하기 어렵다. 적과 직접 접촉하기 전에 포병과 항공전력으로 타격할 수 있다면 미군 병사의 희생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전술적 합리성과 전략적 효과의 불일치다. 적을 많이 죽이는 것이 반드시 반란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란군의 힘은 단순한 병력 숫자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반군과 주민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군의 실패는 미군이 많은 적을 제거했음에도 적과 주민의 연결을 끊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결국 적을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보다 ‘누가 주민과 함께 하는가’가 대반란전에서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미군에서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 해병대의 CAP 운용이나 PROVN과 같이 주민 보호를 중시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육군의 주류 전략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중요한 점은 육군에 대반란전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기존 육군 개념과 충돌하는 지식이 조직의 교리와 전략을 바꾸는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육군과 베트남(The Army and Vietnam)』은 단순한 베트남전의 역사가 아니라 군사조직에 관한 연구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조직은 환경이 변하면 언제나 합리적으로 적응한다는 전제가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기존 교리와 부대구조, 교육, 인사제도와 조직의 자기 정체성이 새로운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잘하는가’가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를 결정하게 된다.
이 책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신랄한 비판 이상의 책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관료적 관성(bureaucratic inertia)’에 대한 통찰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장에서 요구되는 논리가 아니라 육군 개념과 관료적 관성이 이끌었다. 그 결과 미 육군은 비정규전의 환경에서 재래식 전쟁을 수행했다. 그들이 훈련받은 대로, 그들이 싸우고 싶은 방식으로 싸웠다. 대반란전을 주장한 장교들은 미 육군이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자기 이미지와 충돌했기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났다. 육군 개념에 부합하는 작전을 수행한 이들에게 진급 기회가 돌아갔다. 조직에서의 승리는 그들의 개념과 관성에 부합하는 이들이 차지했다.
저자가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미군이 베트남에서 그렇게 큰 고통을 겪었지만 ‘배운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베트남전쟁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훈 역시 자신들의 개념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찾기 때문이다. 그가 특히 비판한 것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태도다. 정치적 제약과 국내 여론이 베트남전에서 중요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만을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삼으면 육군 자신의 전쟁수행 방식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를 정치지도자들의 과도한 통제에서 찾는 설명과 대비된다.
이 책은 현대 군사전략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현대의 분쟁이 더욱 하이브리드화되고 사이버전, 정보전, 비정규적 대리세력을 활용하는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 교리만으로는 전장을 수행할 수 없다. 저자는 과거 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군사조직은 적응력이 뛰어난 적을 상대할 경우 이길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이를 확인해줬다. 미군은 여전히 재래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반란전 방식도 반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전쟁 방식이 더 우월할 것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변화하는 상황에 더 잘 적응해야 하고, 이러한 노력들이 보상받는 유인구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유능한 군대를 결정하는 것은 특정 작전개념이 아니라 빨리 적응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이 보상받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군도 예외가 아니다. 완벽한 교리 자체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목소리로 소통하고 인정받는 조직문화를 일궈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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