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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기 중령(진)
육군3보병사단 혜산진여단
육군3보병사단 혜산진여단은 1946년 2월 18일 제6연대로 창설돼 1949년 4월 15일 22연대로 개칭됐다. 이후 6·25전쟁에서는 1950년 11월 30일 한반도 최북단 혜산진에 국군 최선봉으로 입성하며 국군의 역사에 굵은 발자취를 남겼고, 지금까지 혜산진여단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은 혜산진여단은 2025년 12월 1일부로 105㎜ 자주포를 기반으로 한 포병대대를 창설했다. 그 창설부대의 초대 지휘관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창설부대 지휘관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단순히 조직을 편성하는 게 아니다. 언제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부대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포병은 한 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아야 하기에 기초와 기본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대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향한 곳도 화포가 있는 진지였다.
2010년 초임장교 시절 사용하던 화포를 다시 한번 마주하니 반가움이 앞섰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운용되는 화포가 과연 완벽한 성능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곧바로 확인으로 이어졌다. 상급부대 정비인력의 지원을 받아 일주일간 총 18문의 화포를 대상으로 정밀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 모든 화포가 운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적합 판정만으로 실사격의 안전을 담보할 순 없었다. 장비상태뿐만 아니라 운용절차와 사격통제, 안전조치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질 때 비로소 장병들이 안심하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지난 6월 17일 대대 창설 후 첫 포탄 사격이 실시됐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첫 발이 발사됐고, 포탄은 정확히 목표를 타격했다. 이어진 사격에서도 60발 모두 목표에 명중했다. 그 순간 사격장을 가득 메운 것은 단순한 폭음이 아니었다. 7개월 동안 장병들이 흘린 땀과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의 소리였으며 창설부대가 비로소 하나의 전투부대로 완성됐음을 알리는 첫 포성이었다. 이번 포탄 사격 때 ‘포구초속측정기’ 4대를 협조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돼 더욱 의미 있는 사격이었다.
부대 역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배 전우들이 지켜 온 전통 위에 오늘의 장병들이 새로운 기록을 더하며 이어지는 것이다. 창설부대의 첫 포성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이제 부대 역사의 첫 장을 넘겼을 뿐이다. 앞으로도 혜산진여단 포병대대는 첫 포성을 울리던 날의 초심을 잊지 않을 것이다. 즉각 대응이 가능한 전투준비태세를 바탕으로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하는 포병부대로 성장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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