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추상적이지만 행동은 구체적이다

입력 2026. 08. 19   15:30
업데이트 2026. 08. 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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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식 
육군정훈연구위원
예비역 육군준장

이순신 장군은 전투가 끝나면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에 부하들의 공로를 하나하나 기록했다고 한다. 자신의 공을 앞세우지 않았다. 장계 말미에 “신도 싸웠습니다”라고 썼을 뿐이다. 중국 전국시대 오기 장군은 병사의 종기를 직접 빨아 고름을 제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관은 유언으로 장군 묘역이 아닌 병사 묘역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했다. 이들이 군인으로서 존경받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군인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흔히 유명한 장군이나 지휘관을 떠올린다. 큰 업적을 남겼거나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들의 업적에 가려 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부하들의 희생을 잊곤 한다.

군인이 기억해야 할 영웅이 반드시 유명한 장군일 필요는 없다. 군의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라면 계급·보직과 관계없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2005년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소속 강지원 병장과 김희철 일병은 전술훈련 중 급류에 휩쓸린 전우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임진강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전우를 구하려다가 순직했다.

선효선 소령은 2008년 국군철정병원 간호장교로 근무하던 중 뇌출혈 환자가 발생하자 당직근무자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며 환자 이송헬기에 동승했다. 환자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긴 뒤 자대로 복귀하던 중 기상 악화로 헬기가 추락해 순직했다. 심정민 소령은 2022년 F-5E 전투기 비행 중 기체 이상이 발생하자 비상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지상의 민가를 발견한 뒤 민간인 피해를 막고자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고 기체를 야산으로 몰다가 순직했다.

영웅적 행동이 반드시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휴가 중이던 한 병사는 생면부지의 할머니가 끌던 폐지 수레가 강풍에 쓰러지려 하자 망설임 없이 달려가 수레를 붙잡고 목적지까지 함께 옮겼다.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자진입대해 병역의무를 선택한 젊은이도 적지 않다. 이들의 행동엔 거창한 명분이나 구호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군인의 희생과 헌신을 숭고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들의 행동을 개인 미담으로만 남겨 둬서는 안 된다. 군인의 일상과 임무 속에서 군인정신을 행동으로 보여 준 이들을 군의 본보기로 삼고 기억해야 한다. 군인이 같은 군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국민의 존중을 기대할 순 없다. 군 내부에서 먼저 그 가치를 인정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도 군인의 헌신과 희생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단지 과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군인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군인의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기 위해서다. 말은 추상적이지만 행동은 구체적이다. 군인정신을 실행한 사람을 기억할 때 군인정신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로 구체화된다. 이는 군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에서도 조직문화는 눈길을 끄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축적돼 형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군 조직문화도 일상에서 어떤 행동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웅을 기억한다는 것은 희생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보여 준 군인정신의 가치를 우리 군이 어떻게 기억하고 지켜 갈 것인지 내재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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