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 라이프
러브버그 출몰지역 알려줄 지도, 만 원의 행복 식당 찾아줄 지도…
돈가스 전문가의 전국 돈가스 지도 등 특정 주제 내걸어 세분화
취향 발견 재미 쏠쏠하고, 실시간 제보 즉각 반영해 정확도 ↑
AI 활용한 메뉴 주문 등 방문까지 전 과정 연결하는 플랫폼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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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더운 ‘입추(立秋)’였다. 전국 곳곳에서 40도가 넘는 기온이 관측되자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했다. 폭염 속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지도가 개발됐다. ‘그늘로- 뚜벅이의 여름길’이란 이름처럼 도보로 이동할 때 어떻게 해를 피해 그늘로 갈 수 있는지 경로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가려는 목적지를 입력하면 여타 길찾기 서비스처럼 경로를 추천해 주면서 동시에 시간대별 태양 위치와 건물 그림자를 고려해 그늘이 많은 길도 추천해준다. 중간에 버스 이동이 포함돼 있다면 ‘오른쪽 창가 추천’과 같은 식으로 해가 덜 드는 창가까지 안내한다. 대학생이 개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서비스는 더욱 유명해졌다.
지도가 진화하고 있다. 지도의 기본적인 역할은 지리, 지형을 단순하게 표현해 사람들이 장소를 쉽게 찾도록 하는 것. 그런데 지도에 온갖 정보가 더해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누구나 지도를 제작하고 참여한다. ‘그늘맵’처럼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김슐랭’ ‘이슐랭’ 리스트처럼 각자만의 맛집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도는 길을 찾는 도구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취향을 발견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콘텐츠 플랫폼이 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지도를 즐기는 방식, ‘맵 라이프’에 대해 알아보자.
맵 라이프의 첫 번째 변화는 지도가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함께 만드는 정보, 즉 ‘라이브’ 정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변화가 시차를 두고 지도에 반영되고 지도를 제공하는 기관이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팝업 스토어처럼 일시적인 장소에 대한 정보도 즉각 반영되고 누구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기존 지도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지도를 제작할 수 있다.
각종 ‘테마 지도’가 변화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일반인이 확산 경로를 표시한 ‘코로나 맵’을 만들어 화제가 됐고, 이후에는 러브버그 출몰 지역을 지도로 보여주는 ‘러브버그 맵’, 날씨가 좋은 틈을 타서 야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야장 맵’ 등 그 시기마다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해주는 지도들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테마지도는 사용자 참여형이다.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제보하면 해당 정보를 반영해 지도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풍성해진다. ‘거지 맵’도 그렇다. 물가가 오르면서 한 개발자가 1만 원 이하로 식사할 수 있는 식당 지도를 제작했다. 사용자들이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후기를 남기면서 한 달 만에 누적 이용자가 100만 명에 달하는 전국 단위 맛집 지도가 됐다.
맵 라이프의 두 번째 변화는 지도를 활용하는 방식이 ‘목적형’에서 ‘발견형’ 탐색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앞서 장소나 길 찾기라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지도를 이용했다면 이제는 누군가의 취향대로 만들어진 지도를 보며 정보를 발견한다. 즉, 큐레이션이 중요해졌다. 예를 들어 부산에 방문하는 관광객 사이에서는 ‘택슐랭(택시+미슐랭) 가이드’와 ‘우슐랭(우체국+미슐랭) 가이드’가 인기를 얻고 있다. ‘맛집’ 정보가 쏟아지는 만큼 부산을 오랫동안 누비고 다닌 베테랑 택시 기사, 우체국 집배원과 직원들이 보장하는 맛집이라는 엄선된 정보가 소비자들에게 큰 가치를 주는 것이다.
지역별 정보를 안내하는 로컬 큐레이션도 인기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제작한 지도도 인기를 끈다. 대구의 한 돈가스 전문점이 제작하고, 카츠 전문 크리에이터가 판매 중인 ‘한국식 돈가스 지도’는 일본식이 아닌 한국식 돈가스를 판매하는 점포를 엄선해 만든 전국단위 지도다.
세 번째 맵 라이프는 지도가 기능적 도구에서 즐기는 콘텐츠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도는 ‘거리뷰’ 서비스를 발전시켜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한다. 벚꽃 시즌을 맞이해 진해 군항제와 같은 주요 명소 거리뷰에 벚꽃잎 효과를 적용하는 식이다. 이는 기존 지도 서비스들이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길찾기라는 목적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자가 콘텐츠를 충분히 탐색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지도를 활용한 마케팅 이벤트도 활발하다. 최근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개봉을 맞이해 구글맵과의 협업으로 지도 곳곳에 이스터 에그를 숨겨놓았다. 소셜 미디어에서 단서를 제공하면 이용자들은 해당 단서에 따라 뉴욕 거리뷰를 살펴보며 다섯 가지 장면을 찾는 이벤트였다. 실제로 스파이더맨이 건물 위에 앉아 있거나 거리에서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이 발견돼 이용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오프라인 경험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지도는 더욱 중요한 플랫폼이 될 전망이다. 트렌드모니터가 만 13~59세 응답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55.6%)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기보다 지도 앱을 켜 주변 공간을 탐색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응답했다.
향후 지도 서비스는 경험의 탐색부터 실제 오프라인 방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을 꾀하고 있다. 구글맵에서는 대화형 AI 기능 ‘애스크 맵스(Ask Maps)’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장소를 탐색하는 것은 물론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메뉴 주문이나 예약 등 외부 서비스와 연계까지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주변 카페에서 디카페인 라테와 샌드위치를 아침 식사로 주문해줘’라고 요청만 하면 된다.
브랜드 입장에선 지도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오프라인 경험과 자사 브랜드의 경험을 연계하는 것이다. 한국코카콜라는 미식 가이드인 ‘블루리본 서베이’와 협업해 코카콜라 음료와 잘 어울리는 맛집을 엄선, 2024년부터 ‘레드리본’이라는 이름으로 맛집 지도를 선보였다. 어떤 페어링이 이상적인지 브랜드 경험을 제안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도장깨기 하듯 찾아가는 재미를 제공한다. 맵 라이프의 시대, 나만의 지도가 곧 경쟁력이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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