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전투력 되살린다
① 정신건강 좀먹는 ‘액정몰입’
② ‘뇌 건강 지키기’ 금지보다 회복
③ 쾌감 대신 전우애 ‘도파민 디톡스 병영현장’
④ 전문가 인터뷰
스크롤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전우의 환한 미소 그리고 나…
육군6보병사단 포병여단
스마트폰 내려놓고 밖으로…
철원 명소에서 ‘미션레이스’
머리 맞대 퀴즈 풀며 역사공부
매일 한 권씩 14주 ‘독서 마라톤’
느낀 점 정리하며 생각근육 단련
“폰만 보는 삭막한 모습에서
의욕 충만한 모습으로 바뀌어”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은 이제 군 생활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편리함이 커진 만큼 과의존과 집중력 저하, 온라인 도박 등 새로운 과제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방일보는 18일부터 4일간 특별기획 ‘디지털 디톡스, 전투력 되살린다’?를 게재하고 디지털 시대 병영이 마주한 현실을 진단하는 한편 건강한 디지털 이용 습관과 독서 등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 해법을 살펴봅니다.
병영이라고 ‘디지털 중독’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휴대전화는 사회소통과 자기계발이라는 긍정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자칫 ‘디지털 도파민’의 늪에 빠지는 도구로 오용될 수 있다. 육군6보병사단 포병여단이 ‘디지털 디톡스’에 주목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행하는 이유다. 여단은 장병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는 ‘미션레이스’와 ‘깊이 읽기’를 익히는 ‘독(讀)파민 마라톤’을 하면서 장병들의 온·오프라인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건전한 병영문화를 세우고 있다.
전우와 추억 쌓고 가까워지는 교육 ‘정신전력 미션레이스’
지난 12일 강원 철원군 한탄강 일대 주상절리길.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한탄강의 비경을 강 바로 위에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개장과 동시에 철원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강바람이 맞이하는 가운데 6사단 포병여단 장병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이곳에서는 부대의 ‘런닝맨식 정신전력 미션레이스’가 펼쳐졌다.
‘런닝맨식 정신전력 미션레이스’는 장병들이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면서 국가관·대적관·군인정신 가치를 체득하도록 만드는 활동형·참여형 정신전력교육이다. 제시어로 역사 속 인물을 맞히거나 빙고·윷놀이 등 전통놀이와 현대 스포츠를 접목한 미션을 빠르게 완료하는 만큼 점수를 얻는다.
여단은 이날 총 3.6㎞ 코스의 주상절리길을 따라 다양한 미션을 준비했다. 취재진이 현장에 다다랐을 때 김동윤·박지훈 상병과 이진환 일병의 팀 역시 미션 장소에 도착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스피드 정신전력 퀴즈. 한 명이 제시어를 몸으로 설명하면 다른 팀원들이 빠른 시간 내에 맞혀야 한다.
팀원들은 며칠 전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자료를 공부하면서 팀워크를 다지며 이날 교육을 준비해 왔다. 덕분에 실전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했고,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 때마다 서로를 향한 칭찬도 오갔다. 장병들의 환한 미소와 즐거운 웃음소리에 관광지를 찾은 일반시민들도 박수를 보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절벽을 배경으로 국군 장병들이 하나 되는 모습이 조화를 이뤘다.
모니터와 스마트폰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선 장병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김 상병은 “사실 선·후임, 동기 모두 대화할 일이 없어 서먹한 관계였다”며 “이번 교육 덕분에 이야깃거리와 추억이 많이 쌓여 레이스가 끝나고도 친하게 지낼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팀의 박 상병 역시 “레이스를 준비하면서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고, 오랜만에 바깥에서 시간도 보내면서 더 친해진 듯해 좋다”고 전했다.
여단은 단순히 외부 활동을 늘리기 위한 레이스가 아니라 장병들이 자율적으로 정신전력을 강화하고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화합·단결하는 병영문화를 만들려고 이번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박건(대위·진) 정보장교는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삭막한 모습에서 한결 의욕 충만한 모습으로 바뀌어 보기 좋다”며 “신병이 전입해도 이러한 활동을 하며 기존 인원과 라포(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성호신뢰관계)를 형성하면서 단결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으로도 도파민 터진다! 독파민 마라톤
같은 시간 여단 예하 화율대대 병영생활관 도서관.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이곳을 찾은 장병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여단에서 시행 중인 ‘청포 독(讀)파민 마라톤’ 참가자들이다.
여단은 지난 6월 15일부터 14주간 독파민 마라톤을 진행 중이다. 독파민 마라톤의 목표는 장병들의 일일 지력단련, 점심시간, 일과 후 개인 정비시간 등을 활용해 매주 한 권을 완독해 총 14권의 책을 읽게 하는 데 있다.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깊이 읽기’를 수행하면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고 마음의 크기를 키우자는 취지다.
독파민 마라톤이 시작된 이후 부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일과시간 이후와 휴일에 스마트폰보다 책 읽는 장병들의 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최근 읽은 독서량을 서로 자랑하면서 경쟁하기도 하고, 공통으로 읽은 책 내용으로 각자 생각을 공유하는 건전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
입대 전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채강현 병장은 군 생활 중 독서를 하면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채 병장은 “무의미하게 스마트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는 것보다 책 읽기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며 “짧은 길이의 쇼츠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독서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 활자를 봐야 해 집중력이 오르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 장병들을 살펴보니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단순히 책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용을 되짚어 보고 내면의 성장을 도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책을 읽은 뒤 매일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관찰), 그것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성찰), 그래서 무엇을 알게 됐는지(통찰)를 적는 ‘3찰 쓰기’로 활동을 마무리한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면 ‘나의 작은 소중한 생각’과 책을 통해 얻은 정신적 자산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장병에게는 완주인증서와 함께 포상휴가도 주어진다. 처음에는 휴가를 받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새 독서로 느끼는 ‘독파민’에 중독되기에 이른다.
전우석 상병은 “쇼츠나 SNS로 느끼는 나쁜 도파민 대신 좋은 도파민이 몸에 도는 걸 느낀다”며 “군 복무기간이 인생에서 보면 짧은 시간이 아닌데, 다른 장병들도 독서를 하면서 인내를 배우고 버티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인터뷰 정명식 육군6보병사단 포병여단장
“최근 면담을 신청하는 장병들과 만나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람을 대하면서 배워야 하는데, 스마트폰이나 디지털기기에만 익숙하니 인간관계를 쌓을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죠.”
정명식(대령) 육군6보병사단 포병여단장은 지난해 12월 부대에 온 이후 많은 것을 바꿔 놨다. 정신전력 미션레이스와 독파민 마라톤뿐만 아니라 군 생활의 지침이 되는 내용을 문제로 풀어 보는 ‘청포 일깨움 골든벨’, 장병들이 부대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노래하는 ‘쇼미더 청포’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이 모든 활동의 목적은 ‘디지털 디톡스’에 맞춰져 있다. 정 여단장은 “부끄럽지만 제 자녀부터 쇼츠 영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에 빠지면 각자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청소년기부터 디지털기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MZ세대 특성상 최근 입대하는 장병들은 책 한 권을 완독한 경우가 전무할 정도다. 정 여단장은 흥미로운 수치를 제시했다.
“MIT와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챗GPT나 제미나이 등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과도하게 사용한 집단은 업무 속도가 빠르지만, 결과물의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이 눈에 띄게 낮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게 버거워지면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칩니다. 생각하는 근육과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깊이 읽기’를 해야 합니다.”
여단장실 한쪽 벽면에는 ‘사람 중심 행복이 가득한 청성포병여단’이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부대는 앞으로도 꾸준한 교육훈련과 화합·단결의 시간을 마련해 상호존중과 사람 중심의 병영문화를 조성하고 여단만의 가치와 정신을 구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 여단장은 “군인과 군대에 최우선은 철저한 훈련과 빈틈없는 전투력”이라며 “그 부분은 장병들의 정신무장이 뒷받침됐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요소라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전술능력 키우는 육군본부 ‘워게임’
보드게임 교보재 교육효과 커
육군은 장병들의 디지털 몰입도를 줄이기 위한 교보재도 보급하고 있다. 육군본부 정훈실에서 개발해 지난해 보급한 정신전력교육용 워게임 교보재 ‘Will to fight’가 그것.
보드게임 형식의 워게임으로 팀당 3명씩 6명이 참여할 수 있다. 각 팀은 보드판에 분대·병력 타일을 배치하고 상황에 맞게 전투 지원, 정신전력 카드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지역을 점령하면 승리한다. 현재 육군본부 및 지상작전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등에 약 500개가 초도보급됐고, 추후 확대할 예정이다.
육군은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자연스럽게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 참여형 콘텐츠 개발 요청을 받고, 전투상황을 가정한 뒤 직간접 체험할 수 있는 교보재 마련을 추진해 왔다.
야전부대에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타일과 카드를 활용한 조합이 가능해 주입식 교육보다 몰입도가 높고 팀워크 강화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병들의 승부욕과 성취감을 자극하면서 유대감을 키우고 건전한 조직문화를 정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후문이다.
이지연(중령) 육군본부 정훈실 정신전력계획장교는 “장병들이 병영생활 속에서 싸우려는 의지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면서 재미와 교육이라는 2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했다”며 “특히 아날로그 교보재를 활용해 디지털에 익숙한 장병들이 잠시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면서 단결력도 함께 기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배지열 기자/사진=이윤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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