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국 대표단과의 차담에 통역으로 참여했다. 우리말은 영어로, 영어는 다시 상대국 언어로 옮겨졌고, 답변도 같은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하나의 질문이 세 개의 언어를 건너는 동안 차는 식었고, 대화의 호흡은 끊겼으며, 방금 하려던 되물음은 번번이 타이밍을 잃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에 있었다. 통역이 아무리 정확해도, 통역을 거치는 대화는 마주 보고 곧장 주고받는 대화만 못하다.
그런데 이것은 통역이 곁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날의 차담은 대화의 통로가 하나뿐이어서 통역 두 사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연합작전의 현장은 다르다. 지휘소와 참모부, 무전망과 현장에서 수많은 대화가 동시에 오간다. 그 접점은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접점마다 통역을 세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최선의 대안마저 늘 곁에 있을 수 없다면,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그 접점에 선 우리 자신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은 자연스럽게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위 시절 통역장교로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했을 때, 한미 장병들 사이를 오가며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정도 대화라면 통역 없이도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물론 단어 하나가 무게를 갖는 자리에서는 통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정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는 대화까지 통역을 기다리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이었다. 그런데도 통역이 곁에 없으면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간간이 있었다.
그들의 영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영어를 업으로 삼은 나조차 외국어로 입을 떼는 순간에는 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온다. 그 두려움 앞에서 통역은 언어의 다리가 아니라 마음의 방패가 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연합작전의 폭은 그때와 비할 수 없이 넓어졌으며, 우리 군이 감당해야 할 연합의 접점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오늘의 현장은 분명 그 시절보다 나아졌을 것이다. 곧 그 현장에 설 생도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군사영어 수업에 미군 장교가 특별 강사로 찾아오면 생도들은 어떻게든 자기 영어로 부딪쳐 보려 한다. 수업이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 곳곳을 안내한다. 통역을 기다리는 생도는 없다.
그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그들의 영어 실력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에 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의 연구에서 찾아낸 악순환의 출구 역시 학습자 실력이나 재능에 있지 않았다. 언어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 이른바 성장형 마인드셋을 지닌 학습자일수록 불안이 낮았고, 낮아진 불안은 실력이 자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결국 고리를 끊는 것은 유창함이 아니라 자기 영어에 대한 믿음이다. 틀리는 것을 실패가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방패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실력은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다.
완벽한 문장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틀릴 것을 알면서도 입을 떼는 한마디면 족하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꺼낼 당신의 영어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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