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평평하고 완만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제법 높은 언덕을 넘어 다시 내려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당연하다는 듯 평지를 택한다. 나 역시 평지를 택해 출퇴근하는 편인데, 가끔 일부러 언덕길로 발길을 돌릴 때가 있다. 오르막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가 묵직해지지만 정상에 올라 내리막으로 접어들면 평지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을 보게 된다. 힘겨운 오르막과 탁 트인 내리막.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모습과 참 닮았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매미는 종에 따라 땅속에서 수년, 때로는 십수 년을 유충으로 지낸 뒤 지상으로 올라와 비교적 짧은 삶을 산다. 우리가 듣는 힘찬 울음은 그렇게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견딘 시간 끝에 만나는 생의 한순간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낸 기다림이 있기에 짧은 여름의 울음은 더욱 뜨겁다. 그래서인지 계절의 끝에서 듣는 매미 소리는 단순한 곤충의 울음이라기보다는, 오래 참고 기다린 시간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소리처럼 들린다.
숨비소리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제주의 해녀에게는 ‘숨비소리’가 있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작업하던 해녀가 수면 위로 올라와 한꺼번에 길게 내쉬는 특유의 숨소리다. 깊이 내려가려면 숨을 참아야 하지만, 다시 살아 숨 쉬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반드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숨을 참는 법만 아는 사람은 오래 잠수하지 못한다. 언제 올라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더 깊이 내려간다. 견딜 때와 숨을 내쉴 때를 아는 것, 어쩌면 삶도 그러하다.
이렇듯 인생에는 기다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실력은 재촉한다고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노력의 결과도 김치나 장이 익듯 저마다의 숙성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이제 그만 잊자”고 마음먹는다고 곧바로 아물지 않는다. 진심도 말 몇 마디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오랜 시간 쌓인 행동이 대신 말해 준다. 인정 역시 그렇다. 늦게 오는 박수가 때로 더 오래간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뒤늦게 따라오는 것이 신뢰와 인정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깨달았다면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고마움을 느꼈다면 감사의 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이 곁에 있을 때에 닿는다.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는 ‘조금 더 두고 보자’며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나쁜 습관 역시 오늘 끊지 않으면 내일은 더 단단한 습관이 되어 돌아온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해결되는 일도 있다.
군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력과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힘든 훈련을 견디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우에게 잘못했다면 사과를 미룰 이유가 없고, 고마움을 느꼈다면 오늘 말해야 한다. 기다림과 미룸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삶의 지혜란 어쩌면 이 둘을 구별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 견뎌야 열리는 문 앞에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열어야 하는 문 앞에서는 머뭇거리지 않는 것.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는 묵묵히 발을 내딛고, 숨이 찼을 때는 숨비소리처럼 힘껏 숨을 내쉬는 것. 기다릴 것은 오래 기다리되, 해야 할 일은 오늘 하는 삶. 그렇게 살아갈 때 힘겨운 오르막 끝에서 비로소 평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만나게 된다.
누구에게나 제 몫의 언덕이 있다. 그 앞에 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숨이 차오르거든 잠시 멈춰 서도 좋다고. 다만 돌아서지는 말라고. 고갯마루를 넘어본 사람만이 자기 몫의 풍경을 얻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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