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로 여름 휴가 어때?

입력 2026. 08. 14   16:18
업데이트 2026. 08. 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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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스타를 만나다 - 걸그룹 키키 미니앨범 ‘와이키키’

하와이 해변 모티프 콘셉트로 컴백
휴양지에서의 하루 여섯 곡에 담아
플립폰 등 Y2K 복고 감성 살리고
국내외 실력파 참여 다양성 부여

 

걸그룹 ‘키키’.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걸그룹 ‘키키’.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후반 중학생 때 휴대전화를 처음 가졌다. 이른바 피처폰 시대였다. 아이폰이 너무 비싸고 스마트폰의 위력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괴상한 디자인의 접고 여는 전화기가 인기였다. 그중 또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스타일이 있었다. 화면을 열지 않고 접은 채로 작은 불빛이 깜빡이는 LED 컬러 라이팅 제품이었다. 덮개 한가운데 그려진 동그란 원 사이로 휘황찬란한 불빛이 빙글빙글 돌았다. 시간과 문자 메시지가 매끈한 표면 위에 깜빡거렸다. 딱히 필요한 기능은 아니었다. 폰을 열면 다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럼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쁘고, 갖고 싶고, 어딘지 모르게 한발 앞서간다고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 시절 물건들은 대체로 쓸모 있기보다 반짝거렸다.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고 구매를 결정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필요했다. 미키 마우스 모양의 MP3 플레이어와 외장 LED 디스플레이 휴대전화는 유행의 첨단을 달렸다. 오로라, 롤리팝, 매직홀과 같은 거창한 이름은 부족한 기능을 가리고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는 효능감을 줬다.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인터넷에는 물방울 맺힌 유리 같은 광택의 아이콘이 반짝거렸다. 인터넷 창은 반투명하게 동글거렸다. 미니홈피에는 도트 그래픽으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아바타가 낭만과 행복, 슬픔의 정서를 한껏 담은 배경음악에 맞춰 표정을 바꿨다. 내가 경험하고 동경했던 그 시절은 분류와 정리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매직홀 폰이 출시될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신세대가 시간의 흔적으로부터 순수한 즐거움과 겪어보지 못한 추억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이유다.

지난 10일 발매된 키키(KiiiKiii)의 세 번째 미니 앨범 ‘와이키키(WhyKiiiKiii)’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올해 초 발표한 ‘델루루 팩(Delulu Pack)’과 타이틀곡 ‘404’를 통해 확고한 Y2K 복고 감성과 일렉트로 팝 노선을 정한 5인조 걸그룹은 그들만의 신나는 여름방학 계획을 세웠다. 인기 시리즈 ‘닥터후’의 주인공 닥터가 커다란 영국 경찰 전화 부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다면, 키키는 고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매직홀 휴대전화를 마법봉처럼 휘두르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녹여 버린다. 선공개곡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은 그 마법의 주문이다. 1000장 이상의 사진을 묶어 만든 스톱모션 뮤직비디오에서 폴더 폰이 접혔다가 열리면서 저화질과 고화질로 담아낸 키키가 어지럽게 교차한다.

타이틀곡 ‘팝 오프 팝 오프(Pop Off Pop Off)’는 그렇게 도달한 2010년대를 만끽하는 순간이다. 키키가 이번 컴백을 위해 제작한 여행사 테마의 웹사이트 지도로부터 인기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가 지도 로드뷰와 수많은 인터넷 창을 거쳐 이국적인 동네와 보트 위 축제 현장에 다다른다. 여행지의 순간은 순식간에 기록으로 남아 사진첩에서 슬라이드 쇼로 만들어지고, SNS 필터를 씌워 친구들을 위해 공유할 콘텐츠로 가공된다. 깊이 고민할 필요 없는 쾌감의 일렉트로 팝 위에서 건조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반복 청취를 유도하면서 노스탤지어라는 단어 자체를 잊게 한다. 변한 건 나일 뿐, 시대의 감각은 그대로다.

하와이섬의 유명한 해변에서 모티프를 얻은 ‘와이키키’는 가상의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는 하루를 여섯 곡에 나눠 담았다. 눈부신 아침 햇살과 낯선 장소에서의 첫날이라는 두근거림부터 아쉬움과 벅찬 감정이 공존하는 늦은 밤의 나른함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되어 있다. 대개 K팝 음악이 타이틀곡 중심으로 기획되고 기타 노래는 ‘수록곡’의 보조 역할에 충실한 경우가 많은데, ‘와이키키’에서는 ‘팝 오프 팝 오프’도 수록곡처럼 기능하며 앨범 전체가 한 곡처럼 다가온다. 경쾌한 일렉트로닉 신스 팝의 타이틀 말고도 하우스 리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에버투레이트(Ever2Late!)’, 블로그하우스 장르와 정서가 담겨 있는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 등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노래 한 곡보다 앨범 전체, 그리고 ‘미감’이라는 단어로 키키가 자주 회자하는 이유다.

키키의 구분 짓기 거부는 앨범에 참여한 작사가들의 이름에서도 분명해진다. 한국 대중음악의 팬이라면 이미 검증된 실력자들의 참여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에스파의 ‘아마겟돈’ 작곡에 참여하였으며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모두 혼자 해내는 음악가 수민이 ‘에버투레이트’와 ‘팝 오프 팝 오프’에 참여했다. 현재 훈련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이병 정의석, 오메가 사피엔도 ‘404’의 흥행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타이틀곡에 재치 있는 표현을 더했다.

한국에서 하이퍼 팝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꾸준히 세계 음악의 흐름에 동참했던 이소(iiso),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 소울 앨범의 주인공 윤다혜도 눈에 띈다.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의 주인공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대중음악 평론가 존 카라마니카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한 음악가 에피(Effie)다. 에피는 이 곡을 위해 기획한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와 데모 버전을 공개하며 왜 그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레트로 마니아이자 현재의 파티 걸인지를 증명했다. 이 외에도 릴 체리와 카모, 키키의 세계를 풍성하게 넓히는 작가 이슬아의 참여도 작품에 다양성을 부여했다.

키키가 ‘아이 두 미(I DO ME)’로 화제를 모으며 데뷔했을 때 나는 과거 칼럼에서 그들을 “끝 없는 처음과 최초의 발굴, 무한히 대체되는 젊음”이라 평했다. 키키를 만드는 프로덕션 팀은 예민한 감각으로 보편과 몰개성을 계속 의심하며 그룹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선명한 기획 의도를 이토록 다채로운 콘텐츠로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 걸그룹은 오늘날 아일릿과 키키 정도다. Y2K라는 키워드나 다양한 참여진은 키키라는 브랜드를 각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키키라는 그룹과 멤버들이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궁금해하는지, 신비로운 동그라미의 불빛에 관심을 가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예쁘고 반짝거린다. 오래 보고 갖고 싶어진다는 감각, 그거면 됐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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