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청사 이전 마무리
국민의 군대, 자리 되찾다
국방의 정상화
안보 주춧돌, 굳건히 하다
정부 수립과 함께 탄생 78년 이름 지킨 ‘유이’한 부처
대통령실에 내줬던 옛 청사로 4년 만에 제자리로
남쪽 향해 우뚝 서서 국방 정책 매진할 수 있도록 박차
국방부 청사 이전이 14일 장관실 입주 등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된다. 2022년 합동참모본부(합참) 청사와 더부살이를 시작한 이후 4년 만에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 것이자, 1948년 8월 국방부 창설을 기점으로 일곱 번째 이전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태어난 부처 중 법무부와 함께 지금껏 이름을 바꾸지 않은 ‘유이’한 부처인 국방부 청사 이전은 대한민국의 굵직한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 과정에서 안보가 든든한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글=최한영/사진=한재호 기자·국방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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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명동 사옥 터에 처음 자리 잡아
국방부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 그 자체다. 광복 후 미 군정기부터 국방부 전신인 국방사령부·통위부 등이 옛 중앙청 별관, 서울 중구 남산동2가(현 퍼시픽호텔) 등을 오가며 건군의 토대를 닦았다.
국방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도 함께했다. 국방부는 대한민국 법률 1호인 정부조직법에 의거해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신한공사(현 하나금융그룹 명동 사옥)에 자리 잡았다. 신한공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와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1946년 설립된 조직이다. 신한공사 건물도 동척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국방부는 이 건물의 서쪽, 육군본부는 동쪽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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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6월 30일, 국방부는 현 용산우체국 뒤편에 있던 옛 수도여단 주둔지로 옮겼다. 수도여단은 1949년 1월 7일 창설한 7여단이 전신이다. 7여단이 그해 2월 1일 수도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얼마 후 사단으로 승격돼 주둔지를 이동하며 빈 곳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같이 사용했다.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군사령부였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정부가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옮기면서 국방부도 1950년 8월 18일 부산 수정국민학교(현 수정초등학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6·25전쟁 참전용사 수기 등에 따르면 수정국민학교에는 국방부 외에 헌병학교를 비롯한 관계기관도 함께 있었다. 국방부는 부산에 있는 동안 일선 장병들의 분투를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했다.
정전협정 체결 3일 후인 1953년 7월 30일, 정부가 서울로 복귀하며 국방부도 용산구 후암동(현 브라운스톤남산 자리)으로 이전했다. 1970년 9월 1일 새로운 청사(현 국방부 별관)로 옮기기 전까지 국방부는 17년간 후암동 시대를 유지했다. 국방부가 새 청사로 옮기며 빈자리에는 그해 8월 20일 대통령령 제5280호에 따라 창설된 병무청이 들어섰다.
1970년, 당시 최신 시설인 국방부 별관 신축
국방부 설치 후 다섯 번째 청사가 된 현 별관은 지금 봐도 위용을 자랑한다. 김광우 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은 책 『국방을 보면 대한민국이 보인다』에서 “주위보다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육중한 육면체의 위압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건물을 설계한 이호진 씨도 “시절이 시절인 만큼 국민을 호령하는 군부의 권위를 외형으로 표현해야 했다”고 말했다. 별관 청사는 1966년 터파기를 시작해 4년여 공사 기간을 거쳐 지하 1층~지상 10층 규모로 완공됐다. 종합건축사무소가 설계하고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이 시공을 맡은 청사는 건평 8300평, 공사비는 13억 원이었다. 비슷한 시기 완공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지하 3층~지상 19층)의 공사비 44억 원과 비교하면 독립 정부 청사로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건물을 시공한 대림산업의 『대림산업 60년사』에 따르면 국방부 별관은 고속 엘리베이터, 자가 발전설비, 냉난방·환기 시설, 전자동 제어장치, 화재경보장치 등을 갖춰 최고급 빌딩이라는 평을 들었다. 당시 보기 드문 ‘무량판(無梁板·대들보 없는 건물)’ 공법을 택한 것도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보(Beam)를 설치하기 위한 30~50㎝ 정도의 수직 공간을 별도로 확보하지 않아도 돼 층고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건물을 현대식으로 짓다 보니 완공 직후인 1970년 11월 26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최치환 공화당 의원이 “새 국방부 청사가 미국 펜타곤을 뺨칠 정도로 호화 청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별관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 예비역 장교는 “북한을 늘 바라보며 일해야 하는 국방부의 현실을 반영한 설계였다”고 설명했다. 정문 쪽에 크게 걸린 ‘자주국방’ 한글 동판도 별관 청사의 상징 중 하나다.
14일 현 국방부 청사로 이전 완료
건립 당시 최신식 건물이었던 별관도 시간이 흐르며 노후화했다. 국방부 조직이 점차 커지고, 합참과 건물을 함께 사용하면서 공간이 협소해지는 문제 등이 겹치며 새 청사 건축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3년 10월 13일 현 국방부 청사 부지에 새 건물을 올렸다. 북쪽을 바라보는 별관과 달리 새 청사는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앞에는 연병장도 조성했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정보·통신 서비스를 지원하고, 에너지 절감 등에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인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적용해 우리 군의 발전을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방부와 합참이 절반씩 사용하는 것으로 설계·시공해 지상 1~4층은 국방부, 5~9층은 합참이 입주했다. 공간 부족으로 인해 국방부는 장관실 등 전체 조직의 절반만 새 청사에 입주했고, 나머지는 별관에 잔류했다. 국방부 본부 조직이 나뉘어 있는 불편함, 합참의 독립청사 확보 필요성 등이 제기되며 2012년 합참 단독 청사가 준공되자 비로소 하나의 건물로 합치게 됐다.
국방부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다시 이사를 가게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이전하기로 하면서 국방부는 합참 청사와 국방부 별관 등으로 이전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합참 청사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형태가 됐다.
2025년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기기로 하면서 기존 대통령실 건물 활용방안 논의도 이어졌다. 3년 전까지 건물 주인이었던 국방부가 돌아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2026년 예산안에 복귀에 필요한 예산이 반영되면서 재이전 준비가 본격화했다.
내부 리모델링 등 준비를 끝내고 지난달 27일부터 시작한 국방부 이사는 14일 끝날 예정이다. 합참 청사 등으로 국방부가 흩어진 지 4년 만이자 현 청사를 건립하고 23년 만의 귀환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제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청사 이전을 계기로) 앞으로 국민의 군대로서 더욱 국방 정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 참고문헌
- 건군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저)
- 국방을 보면 대한민국이 보인다 (김광우 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저)
- 국방사연표 1945-1990 (국방군사연구소 저)
- 국방 100년의 역사 1919-2018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저)
- 군사 제50호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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