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웅성거림, 발걸음 모두 작품이 되는…침묵하지 않는 미술관

입력 2026. 08. 13   16:14
업데이트 2026. 08. 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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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은 미술 8 소리

관객 움직임 따라 텔레비전의 소리 변화시킨 백남준
객석의 소음으로 무대 위 연주 완성한 존 케이지…
주변 요소였던 소리, 작품 의미 구성하는 핵심 감각으로
시각 넘어 공감각의 확장, 미술관람 경험 경계 넓혀

2014년 존 케이지 ‘4분 33초’ 공연 기록 사진. 출처=위키미디어
2014년 존 케이지 ‘4분 33초’ 공연 기록 사진. 출처=위키미디어

 

박현준, '연(緣)', 2018, 철, 250×250×450㎝. 필자제공
박현준, '연(緣)', 2018, 철, 250×250×450㎝. 필자제공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침묵이 흐르는 장소로 인식된다. 관람객은 속닥속닥 조용히 대화하고 발걸음은 조심스럽게 걸으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미술관의 규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 관람객에게 방해 요소가 되며 어디선가 휴대전화 벨소리와 같은 돌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면 순식간에 조용한 침묵이 깨지고 작품을 관리하는 직원이 주의를 준다. 관람객은 침묵이 유지되는 환경에서 온 신경을 시각에 집중하지만, 때로는 조용한 공간의 분위기가 미세한 소리를 더욱 예민하게 인식하게 한다.

사실 미술관은 완전한 침묵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동과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미술관에서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작품을 경험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하며, 전시 안에서 작품의 소리와 소음은 구별되기 시작한다.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의 반응을 차단한 채 눈앞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이 전통적인 미술 감상의 방식이었다면 현대미술이 비디오, 영상, 뉴미디어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적극 수용하면서 이러한 관람 방식은 변화하고 있다.

1952년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미술에서 소리를 주요한 탐구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4분 33초’는 제목 그대로 관람객을 4분 33초 동안 침묵 속에 놓이게 한 퍼포먼스로, 무대에 놓인 피아노 앞에서 연주자는 단 하나의 음도 연주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이 침묵의 행위 앞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의 소리를 더욱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케이지는 절대적인 침묵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관람객들의 숨소리, 웅성거림,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돌발적인 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음악적 경험으로 규정한다. 그는 고요한 침묵의 상태 대신 우연히 발생하는 온갖 형태의 소리를 통해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하나뿐인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또한 존 케이지와 함께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에 참여하며 예술의 규칙을 깨고 일상의 소리와 소음을 작품에 적극 활용했다. 특히 1963년 독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개최한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실험적 음악과 전자 매체로 시각예술의 경계를 흔든 실험이었다. 전시에 설치된 작품들은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했으며, 움직임에 따라 소리와 이미지가 변화하도록 구성됐다. 이를 통해 백남준은 피아노와 텔레비전을 매개로 소리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예술에서 소리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사유하는 실험을 보여줬다.

이처럼 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들에 의해 활용된다. 침묵을 통해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를 감지하게 하기도 하고,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이미 존재하는 주변의 소리를 채집해 눈으로 보는 풍경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경험하는 풍경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흔히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로 불리며, 청각을 통해 공간과 환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박현준 작가는 2018년 자신의 고향 제주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전시실에 송출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실에 설치된 커다랗고 육중한 철 구조물 안에는 제주의 5개 장소에서 송출되는 소리가 울린다. 이 소리 안에는 주변의 소음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있다. 소리들은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 전시실의 타인들에게 전달되며, 진동하는 소리의 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마치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의 경험이 하나의 청각적 장면으로 연결되고, 먼 거리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통해 서로를 인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만든다.

조용했던 미술관 공간은 작품에서 발생하는 소리로 채워지고, 때로는 소란스럽기까지 하며 관람객의 귀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미술 작품들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통해 경험되며, 소리는 작품 이해에서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나아가 일부 작품은 소리를 부차적 요소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리 자체를 작품의 핵심 소재로 삼거나 시각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비물질인 소리만 남기기도 한다. 현대미술에서 소리는 더 이상 주변적 요소가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는 핵심적 감각으로 재위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리는 관람 경험을 공감각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활용된다. 미술관에서는 전시의 분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배경 음악이나 사운드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소리는 작품을 둘러싼 정서적 분위기를 강화하고, 보다 다양한 감각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감정과 감각은 시각 중심의 감상 방식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다층적인 감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관람자의 감각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소리는 예술 경험을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며, 작품을 경험하는 순간의 모든 소리는 관람객에게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현대의 미술은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새롭게 경험하는 장소이자 시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미술과 소리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있다. 뉴질랜드 출신인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케일럽 켈리의 『갤러리 사운드』다. 저자는 동시대 미술에서 사운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여러 책을 출판해 왔고, 특히 2023년 국내에 번역돼 출간된 『갤러리 사운드』는 미술에서 소리의 의미를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소개한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텅 빈, 소리로 채워진 갤러리’에서는 1969년을 전후로 일어났던 실험적 활동들을 살펴보며 텅 빈 갤러리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운드와 그 체험에 주목한다. 2장 ‘갤러리의 소음’에서는 조용한 장소로 인식되던 미술관이 점차 다양한 소리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룬다. 3장 ‘음악의 갤러리’에서는 전시 공간에서 이뤄지는 음악 공연을 중심으로 미술 공간과 음악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특히 이 장에서는 음악 기관에서는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실험적인 음악들이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다양한 작가와 작품 사례를 소개하며 미술과 소리, 공간의 관계를 살피고, 시각예술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리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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