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진단
57. 이란전이 보여준 북핵 문제의 고착성
이란에 대한 핵 압박 강화될수록
타협보다 강경한 저항에 내몰려
北 핵전략 체제 생존 문제로 인식
핵사용 오판 줄이고 이익억제로 유도
국제기구·중·러 등과 협력 나서야
국방대 교수·연구원 등 전문가들이 국방안보진단을 통해 한반도 및 글로벌 최신 국방안보 이슈를 소개하고 분석한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충돌은 또 하나의 중동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국제분쟁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분쟁에서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군사 충돌이나 외교 실패의 표면적 양상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국가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다시 말해 국가정체성과 갈등의 서사가 위기를 얼마나 더 교착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다. 정리=최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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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능력 바라보는 시각차 존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서 휴전과 후속 협상이 모색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과 이란 핵 프로그램의 향후 처리는 핵심 쟁점으로 남는다. 군사행동과 일시적 소강이 반복되는 가운데 갈등의 근본 원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란은 핵기술 이용과 농축권을 주권의 문제로 보지만,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능력을 생존의 문제로 해석한다. 미국은 비확산, 동맹 신뢰, 중동 질서, 해상교통로와 에너지 공급망을 동시에 고려한다. 각자의 계산은 나름의 합리성을 갖지만, 합리성이 서로 맞물리면서 분쟁은 더 고착된다.
오늘날 다극화의 흐름이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미국 중심 질서의 규범적·제도적 영향력이 도전받고, 중국과 러시아는 각자의 영향권과 대안적 질서를 주장한다. 중견국과 지역 국가들은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선택지를 넓히려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강한 민족주의 서사를 가진 국가들이 외부 압박을 견뎌낼 공간도 커진다. 한쪽에서 제재받더라도 다른 쪽에서 외교적 완충이나 경제적 숨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가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지 않을수록 주권, 역사, 체제 생존, 민족적 자존의 언어는 더 강한 동원력을 갖는다. 그 결과 외부 압박은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신호가 아니라 자국을 굴복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다시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서사로 전환될 수 있다.
상대국 압박, 저항 정당성 강화할 수도
강압과 협상의 일반 논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압박은 상대의 선택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고, 협상은 당사자들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교착과 빠져나갈 출구를 동시에 인식할 때 가능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국가들이 비용을 모른다는 데 있지 않다. 경제가 압박받고 시설과 자원이 공격받아도 지도부가 그 고통을 타협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버텨야 할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때 압박은 양보를 이끌기보다 저항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 논리는 이란 핵 문제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란 핵 문제는 농축, 사찰, 검증 같은 기술적 의제로 구성돼 있지만 내면에는 혁명 이후 축적된 저항의 전략문화와 정치적 서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핵기술 이용과 농축권 주장은 에너지 정책인 동시에 서방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국가라는 자기 인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란 핵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타협보다 저항이 내부적으로 더 쉽게 정당화되는 정치·문화·서사 구조에 있다.
이란 사례, 북핵문제 분석 창 제공
이란 사례는 북한 핵 문제를 이해하는 하나의 분석적 창을 제공한다. 물론 두 사례는 다르다. 이란 핵 문제가 핵무기 보유 이전 단계에서 핵 프로그램의 허용과 검증을 다루는 문제라면 북한 핵 문제는 이미 무기화된 핵 능력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의 문제다. 북한은 사실상 핵 능력을 고도화했고, 핵 보유를 법률과 헌법, 당 노선과 선전담론 속에 정착시켰다.
북한 핵전략은 단순한 외부 위협 대응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반제국주의 정체성, 김정은 시대의 핵 성과 서사, 핵·미사일·군수 부문에 관여하는 당·군·국가 기관의 이해관계, 폐쇄적 정치경제 구조가 결합한 장기적 구조다. 북한에 핵은 이라크와 리비아 사례를 통해 각인된 체제 생존의 최후 보장 수단일 뿐만 아니라 주체 정체성을 실현하는 전략국가 이미지를 구현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담론은 2012년 이후 헌법과 법률, 당 노선을 통해 제도화됐다. 그 결과 핵 분야의 성과는 단순히 군사적 성취를 넘어 지도자 업적과 국가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가 됐다.
이와 함께 핵 성과는 핵·미사일·군수 부문의 우선적 지위와 자원 배분을 정당화한다. 북한 경제는 중공업 우선 노선, 선군경제, 핵·경제 병진 노선을 거치며 오랫동안 안보와 군수 부문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 왔다. 안보 위기가 고조될수록 핵·미사일 성과는 관련 기관이 정책적 자원을 우선 확보할 근거가 된다. 그 결과 경제관리와 민생은 뒷순위로 밀리기 쉽다. 이러한 구조는 경제 정상화의 지연, 외교적 고립, 위기 불안정성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억제력, 통치 정당성, 대외 협상 지렛대를 제공한다.
북한 핵 개발, 국제적 인정의 문 좁혀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북한을 완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핵 사용과 관련된 위기 안정성도 약화한다는 점이다. 그 출발점에는 안보 딜레마가 있다. 한미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확장억제, 미사일 방어, 연합훈련을 강화하면 북한은 이를 체제 위협으로 해석하고 전술핵, 단거리 미사일, 조기 핵사용 교리를 강조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제한적 군사행동을 선제공격의 신호로 오인하거나, 핵전력을 잃기 전에 먼저 사용해야 한다는 ‘use-or-lose’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유지하되 당장의 핵 사용, 핵확산, 핵 고도화, 오판 가능성을 먼저 줄여야 한다는 위협 감소 중심의 담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불안정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북핵이 초래하는 위기 불안정성은 안보 딜레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 개발은 억제력을 강화하고 김정은 정권의 권위를 높이지만 동시에 제재와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경제 정상화와 국제적 인정의 문을 좁힌다. 또한 핵은 주체성과 자율성의 상징으로 제시되지만 대외 고립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킨다. 내부 경제적 고통과 불만이 커질수록 북한 지도부는 위기와 긴장, 희생을 정당화하고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할 유인을 가질 수 있다. 핵·미사일·군수 부문에 관여하는 당·군·국가 기관의 이해관계도 도발과 긴장을 통해 자신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자원 배분을 정당화하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위기는 우발적 충돌의 산물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으며, 긴장 완화나 합의 이행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핵 관리, 국가 전략적 수준 문제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고착된 완고함의 구조를 다루는 방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이 다뤄야 할 것은 북한의 핵 능력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능력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보 인식, 정체성 서사, 내부 유인구조의 결합과 이에 따른 불안정성이다. 비핵화는 궁극적 목표로 유지하되 단기적으로는 핵 사용, 오판, 우발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제한, 전술핵 운용 억제, 핵·미사일 확산 방지, 위기관리 채널의 제도화는 최악의 경로를 늦추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확장억제는 동맹의 억제 신뢰성을 분명히 하되 북한의 오판을 줄이고 핵 사용과 확전의 이익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핵 협상이 진행된다면 제재완화 또는 면제 조치는 국제기구와 다자 감시체계 속에서 설계돼야 하며, 민생·인도주의와 비군사적 경제관리 부문에 우선적으로 성과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도 안정적 북핵 관리가 자국의 장기 이익과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최소한 핵확산 방지, 핵기술 이전 차단, 위기관리와 우발충돌 방지에는 협력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핵 관리는 특정 부처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적 수준의 문제다. 위기관리, 억제력 강화, 대외협력, 국제협력, 남북관계 개선이 하나의 국가적 방향 아래 연계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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